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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심리戰’ 사이버 공간서 활개

北, 효과 없어진 방송 중단 포기 후 전략 수정 … 구국전선 글 국내 사이트에 등장해 유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대남 심리戰’ 사이버 공간서 활개

‘대남 심리戰’ 사이버 공간서 활개

해외에 개설된 북한 또는 친북단체의 대남 심리전 사이트.

북한의 대남 심리전은 끝났는가. 6월12일 남북은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에서의 심리전 중단과 서해 NLL 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했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우리 측이 설치한 심리전 장비 철거 모습을 보여주며, 이 합의를 남북의 모든 심리전을 중단하는 계기로 발전시키려 했다. 그러나 북측은 약속과 달리 심리전 장비를 완전히 철거하지 않았고, 서해 NLL상에서 긴장을 일으킴으로써 장성급회담의 합의를 조롱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로 인해 북한을 믿고 심리전 장비 철거를 추진했던 세력과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해온 세력이 대립하는 ‘남남(南南) 갈등’이 일어날 지경이 되었다. 공안 관계자들은 “분계선에서의 선전수단 제거는 북측이 제의했던 것이다. 북한은 공작 차원에서 제의를 했는데, 우리는 북한이 항복한 것으로 안일하게 판단하고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렸다가 당황하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북한의 최근 대남 심리전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은 1964년 3월 주체사상을 따르는 한국인들이 만든 통일혁명당에서 시작되었다고 북한이 주장해온 유령 친북단체다. 85년 통일혁명당은 한민전으로 개명했는데, 북한은 지금도 한민전이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민전은 선전 수단으로 ‘구국의 소리’ 방송을 송출해왔다. 구국의 소리 전파는 개성에서 송출되지만, 북한과 한민전은 서울에서 나온다는 억지 주장을 펼쳐왔다.

심리전 장비 철거 약속 안 지켜

북한은 구국의 소리 방송을 미끼로 남남 갈등을 일으키는 대남 심리전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7월 서울에서 제1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렸을 때 북측의 김령성 단장은 “남측 사람들이 하는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할 테니 남측도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북한으로 돌아간 7월30일,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같은 내용의 전화 통지문을 보내왔다. 2003년 8월1일 구국의 소리는 방송을 중단했다. 8월13일자 노동신문에는 “한민전 평양지부의 조일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8월15일부터 구국의 소리를 내보내던 채널로 조선중앙방송(한국의 KBS와 비슷함)을 송출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실렸다. 8월15일이 되자 구국의 소리 채널에서는 조선중앙방송의 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한 데 대해 보수 세력은 “북한이 심리전 주무대를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옮긴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최근 이런 주장과 관련,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청 보안사이버분석계와 울산경찰청 보안수사대, 그리고 울산지검 김병현 검사가 수사해 7월2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A씨(52) 사건이 그것이다.

A씨는 1970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학•석•박사 학위를 딴 후 서독 리팅겐대학에서 유학한 인텔리다. 85년 A씨는 서울대 법대 공법학과 전임강사가 됐는데, 이때 김검사는 사법학과 재학생이었다. 학과가 달라 강의를 직접 듣지 않았지만 A씨와 김검사는 서울대 법대 사제간인 셈이다. 88년 A씨는 조교수로 승진했으나 94년 재임용에 탈락한 이후 무직으로 지내왔다. 올해 초 김검사는 울산지역 주요 노조의 사이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울산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김부자 찬양 글이 왜 노조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보안수사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라며 ‘반역처단구국’이라는 ID를 사용한 사람이 울산매일신문 게시판에 올려놓은 문건을 보여주며, “이 문건은 이적성이 아주 강하다. 다른 사이트에도 많이 올라가 있다”며 수사를 제의하자 김검사가 동의했다.



이 글을 게시판에 올린 시간과 PC방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보안수사대는 곧 반역처단구국이란 ID를 사용한 사람이 이용한 여러 PC방의 주인을 만나 “몇 월 며칠 몇 시쯤 몇 번 PC를 사용한 사람의 특징과 인상착의를 기억하느냐”라고 물었다. 대부분의 PC방 주인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40, 50대 남자인데 김병지 골키퍼처럼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옷차림은 노숙자에 가까울 정도로 남루했지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그는 PC 작업을 끝낸 뒤 지문을 없애려는 듯 마우스 등을 깨끗이 닦았다. 인상착의와 행동이 매우 특이해 기억할 수 있다.”

수사대는 PC방 근처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최기문 경찰청장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북한의 대남 공작이 급증한다고 판단하고 경찰청에 보안사이버분석계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문제의 인물이 일본에 개설된 한민전의 구국전선 사이트에 있는 글을 퍼올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조사를 확대한 분석계는 이 인물이 울산매일신문뿐만 아니라 ‘기자 조갑제의 세계’ ‘국회의원 김용갑’ ‘미래한국신문’ 등 보수 성향의 사이트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남경필’ ‘국회의원 맹형규’ ‘국회의원 이강두’ ‘좋은 나라’ ‘전남대학교’ ‘경남일보’ ‘부산 영도구청’ ‘경기일보’ ‘전주시청’ 등 여러 사이트에 글을 퍼올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얼마 후 수사대는 한 PC방에서 꽁지머리에 안경을 쓴 남루한 40대 남자가 나타난 것을 포착해 추적했다.

수사대는 이 인물의 사진을 찍어 반역처단구국이라는 ID의 글이 올라간 PC방 주인에게 보여주니 그들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수사대가 A씨를 검거해 수사를 확대하자 그는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냈고, 가족이 없는 독신자이며, 서울에 있는 그의 아파트는 책을 비롯한 온갖 물품을 쌓아놓은 창고에 불과할 뿐 집에서는 거의 지내지 않았다는 것 등이 확인됐다. 그러나 A씨는 곧 묵비권을 행사해 더 이상 수사는 진척되지 못했다. A씨 검거는 언론에 짤막하게 보도됐다. 그러자 6월30일 구국전선 사이트에는 A씨의 구속을 비난하는 한민전 대변인의 논평이 실렸다. 검거될 당시 A씨는 약간의 현금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이 돈으로 모텔이나 여관을 전전하며 PC방에서 글을 퍼올렸다. A씨를 송치받은 김검사는 A씨가 북한 공작조직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 수사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A씨의 거듭된 묵비권으로 돈의 출처를 밝히지 못한 채 반국가단체 문서의 반포와 소지 등을 금지한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등을 위반한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이에 대해 A씨 변호인은 구국전선의 글을 퍼올린 것을 인정했으나 “A씨는 너무 머리가 좋아 가끔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좌익의 준동을 경고하기 위해 보수적인 사이트에 구국전선의 글을 퍼올렸다고 한다. 보안법은 반국가행동을 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 처벌하므로 A씨는 이 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제3국 사이트 폐쇄 요청 어려워

이유가 어떻든 국내에는 A씨처럼 북한이 제3국에 개설한 사이트의 글을 퍼올리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퍼올린 글은 많을 경우 하루에도 수만 번 조회가 이뤄지고 수십 개의 댓글이 따라붙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는 방송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할 수 있고, 호응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미국 중국 일본 등에 개설된 31개 친북 사이트 명단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사이트들은 중국이나 일본 미국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들 나라 공안 기관은 사이트 폐쇄를 명령할 수가 없다. 설사 한국의 공안 당국이 교묘히 국내 연결을 차단하더라도 다시 새로운 주소를 열면 그만이라 현재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자기들끼리의 인트라넷만 운영하고 있어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사이버 공작을 펼치려 해도 방법이 없다. 한 공안 관계자는 “북한이 심리전을 무한 공간인 사이버 세계로 옮기면서 쓸모가 없어진 방송을 도마뱀 꼬리 자르듯 내놓았는데, 우리는 이 꼬리를 쥐고 ‘이겼다’며 샴페인을 터뜨린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446호 (p60~6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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