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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일 수 있다”

송두율씨 항소심 재판부 김용균 판사 “나는 보수… 자유정신과 동포애 고려한 판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일 수 있다”

“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일 수 있다”

지난 7월21일 집행유예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송씨(오른쪽 사진 왼쪽)와 부인 정정희 여사.22년간 묵묵히 판사의 길을 걸어 온 김용균 판사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나의 판결을 뒤에서 든든하게 지지해준 지인들과 특히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피고인(송두율)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우와! 짝~짝~짝.” “집어치워!” 7월21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309호 형사법정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한쪽에서는 판결을 열렬히 환영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격렬히 비난했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재독학자 송두율씨(60)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의 주인공은 무죄를 주장해온 송씨도, 유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여온 검찰(15년 구형)도 아닌 서울고법 형사6부 김용균 부장판사(50)였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에서 “우리의 숭고한 ‘자유정신’과 ‘동포애’로써 피고를 포용하는 쪽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막고 국민적 역량을 집결시켜 미래 지향적인 국가 발전과 평화적 통일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송씨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몸소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결 직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빨갱이 판사’라는 원색적인 비난과 ‘판사님에게 감동받았다’는 상반된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나는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처럼 김판사는 ‘보수적’ 인사라는 게 법원 안팎의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고법 민사부장판사로 재직할 때도, 그리고 올해 초 형사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는 언제나 ‘품위 있는’ 보수적 시각을 견지해왔다. 사법개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갈등 해소하는 실마리 되길”“서울 시내버스 개혁은 실패했더라도 수정과 보완작업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법개혁만큼은 신중하고 차분하게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실패한 사법개혁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차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기사는 불가하다고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남은 상황에서 그는 ‘나서는’ 모양새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런 그와 어렵게 대화가 이루어졌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민감한 판결의 경우 오보를 막기 위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판사는 판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판사 사회의 불문율입니다.”

“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일 수 있다”

송두율씨의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에 반발하는 보수우익 진영의 집회 모습

-판결 직후 주변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지인들에게서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습니다.”

-판결 전에 주위 여론을 청취하지 않으셨나요. 의외라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내 기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외였겠죠. 지난 3개월 동안 송두율 사건은 내 화두였습니다. 몇 군데 말을 꺼내봤지만 너무나 극단으로 치달아 순전히 나 혼자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의외’의 근거로는 실제 그가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예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한총련 사태로 기소된 학생들에게 실형을 선고했고, 2000년에는 8•15 범민족대회 추진 과정에서 북한 측과 팩스를 주고받은 진관 스님에게 1심보다 형이 줄었지만 역시 실형을 선고했다.



-어차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판결이었습니다. “이번 판결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이제야 내 입술이 터지기 시작했군요.” 그는 이번 판결을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MBC의 송씨 관련 프로그램이 대법원과 마찰을 빚자 자신은 방송을 시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판결 이틀 뒤인 23일에는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재향군인회에서 자택 앞 시위를 준비하고 있으니 가급적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우려했던 일은 10여명의 ‘노인’들이 찾아와서 유인물을 뿌린 사태로 일단락됐다. -법원 내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다른 재판부 판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 또한 법원의 불문율입니다. 대신 내가 스승으로 모시던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딴것 이야기할 건 없고 무슨 말 해줄까 고민했는데… 김부장은 좋은 시절에 판사를 하니 참 좋겠소’라고 말입니다.”

-이번 판결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 같은 판결은 몇 년 전이라면 나조차 생각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이번 판결을 위해 고민 끝에 내놓은 해답이 ‘자유정신’과 ‘동포애’라는 개념입니다. 송교수의 정상참작 사유들과 나라 안팎의 변화 사정을 고려해 피고인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사법 적극주의’인 셈이죠. 사법부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뒤치다꺼리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이른바 사법부가 미래지향적으로 사회를 해석해나가고 사회의 여러 관계를 이끌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는 수차례 “우리 내부의 남남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법은 사회통제 기능도 있지만, 사회통합도 할 수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은 사회통제 기능 외에 사회통합 구실도”

-흔히 말하는 ‘튀는 판결’이나 ‘치받는 판결’의 소중함을 일깨웠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표현이 어색하지만 사실 대단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판결 가운데 병역 거부를 양심의 자유와 직접 결부한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목소리도 판사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사회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합의를 통해 대체 입법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쇼맨십으로 폄하해선 곤란합니다.”

“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일 수 있다”

지난 7월 21일 집행유예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송씨(사진 왼쪽)과 부인 정정희 여사.

-그럼에도 부담이 적지 않으셨을 듯합니다. 게다가 앞으로 적잖은 진통까지 예상됩니다(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는 송씨 석방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더 많았다). “사실 국민적 관심사였고 모든 국민이 재판관일 텐데…. 결론에 앞서 이랬을 경우와 저랬을 경우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봤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용서가 더욱 강력한 처벌이라는 결론은 바뀔 수 없었습니다.” 대화 곳곳에서 김판사의 고민이 배어나왔다. 사실 송씨 귀국은 적잖은 국민, 특히 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그가 일찍이 남한을 버리고 북한에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비친’ 데다가, ‘김철수’라는 가명과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조차 감췄다가 뒤늦게 실토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는 북한체제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서방세계에 기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국내에 입국하면서 보수파가 요구한 ‘사죄’를 거부함으로써 남남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받았다.

-송씨 파문이 커진 이유로는 그가 대한민국 보수파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나도 법정에서 사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비슷한 발언을 기대했는데 끝내 나오지 않더군요. …만일 밖에 나가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내가 책임져야지. 허허.”

김판사는 법원 내부에서 “예술을 사랑하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시인을 꿈꿨을 정도로 문학에 대한 애정 또한 지대하다. 기자가 방문한 그의 서재에는 다양한 예술작품과 각종 서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상식적이기 때문에 진보적인 판결이 많았다. 99년 참전용사들이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표현했다고 고발한 사건에서는 최교수의 손을 들어줬고, KT와 주총회의장 입장을 거부당한 소액주주의 싸움에서는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제발 내가 주인공인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번 판결의 주인공은 누가 보더라도 변화한 사법부의 모습을 증명한 김판사임이 틀림없는데…. 판사 사회의 불문율이라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도 좋을 듯 싶다.



주간동아 446호 (p58~59)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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