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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부탁으로 16대 총선자금 지원

조흥은행 위성복 전 행장 등 직·간접 관여 … 당시 정권 ‘조직적 지원’ 여부 또 다른 의혹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청와대 부탁으로 16대 총선자금 지원

청와대 부탁으로 16대 총선자금 지원

1월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는 위성복 전 조흥은행장.

7월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노영보 부장판사)는 ‘국가안전기획부 예산 선거자금 유용 사건’(안풍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강삼재 전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지원된 문제의 1000여억원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기 때문에 강 전 의원 과 김 전 차장의 국고손실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결은 95년 15대 총선자금의 비밀을 일부 풀었다고 할 수 있다. 항소심 판결과 강삼재 전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김기섭 전 차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을 안기부 계좌에 입금해 관리하다가 빼내 김 전 대통령에게 줬고, 김 전 대통령이 그 돈을 다시 강 전 의원을 통해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셈이 된다.

거래하던 기업서 3000만원 받아

그렇다면 2000년 16대 총선은 어땠을까. 공적자금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올 1월 위성복 전 조흥은행장을 과거 거래 업체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로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돈 가운데 일부가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요청으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후보 3명에게 지원된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대중 정권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총선 자금 조성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당시 정권 핵심부에서 여당 후보에게 ‘조직적으로’ 총선 자금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당시 P수석이 금융계나 재계의 또 다른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여당 후보 지원을 요청했는지, 그리고 위성복 당시 행장이 여당 후보 지원 명목으로 또 다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아닌지 등이 관심의 초점이다.



당시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이 점에 유의해 위행장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검찰은 위성복 전 행장에게 ‘국민의 정부 시절 금융계 실세 구실을 하지 않았느냐’면서 다른 기업에서도 돈을 받은 일이 없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실제로도 16대 총선 지원을 위해 진흥기업 외 다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위성복 전 행장의 공판 기록에 따르면 위 전 행장은 검찰에서 “‘청와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여당 후보의 지원을 부탁한다’는 당시 청와대 P수석의 전화를 받고 건설업체인 진흥기업 박영준 회장에게서 3000만원을 받아 서울 강서와 경기 구리시, 그리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서울지역 한 후보 등 3곳에 300만원씩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충북지역 및 강원지역 후보 7명에게도 역시 각각 300만원씩 지원했다는 것.

청와대 P수석의 전화를 받고 위 전 행장이 지원한 후보는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과 김성호 전 의원 등이다. 이 가운데 윤호중 의원은 당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의 보좌관을 역임한 경력 때문에 지원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의원은 당시 민주당 후보로 경기 구리시에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가 17대 총선에서 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윤의원은 “당시 선거운동 기간 중 위성복 행장이 찾아와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면서 후원금을 내놓고 가기에 금액도 확인하지 않고 후원회 사무국장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나중에 사무국장이 영수증도 보내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윤의원은 이어 “위성복 전 행장은 그 전에 아는 사람 소개로 두 번 정도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후원해준 것으로 알았지 당시 P수석의 부탁으로 후원해주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부탁으로 16대 총선자금 지원

2003년 7월9일 신한지주 최영휘 사장(왼쪽)과 예금보험공사 류연수 이사가 조흥은행 매각을 위한 본계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김성호 전 의원은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여당 저격수’ 역할을 하던 당시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공천된 경우. 이 때문에 김 전 의원은 중앙당의 집중 지원을 받아 당선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 전 의원은 위성복 전 행장의 총선 자금 지원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이어 “처음부터 중앙당에서 지원해줘야 나갈 수 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혹시 중앙당을 통해 지원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위 전 행장에게서 받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시 청와대 P수석은 “위성복 전 행장과는 그가 행장직에서 물러난 후에 한 번 봤을 뿐이고 16대 총선 당시 그에게 전화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당시 검찰 수사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위 전 행장이 충청권 및 강원도 지역 여당 후보 7명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은 충북은행 및 강원은행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후문. 위 전 행장은 1998년 11월 경영개선 이행계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다음해 4월 충북은행을 합병해 새로 태어난 조흥은행의 행장으로 다시 선임됐다. 이어 강원은행까지 합병해 정부의 금융 구조조정 정책에 적극 협력했다.

그러나 이후 조흥은행 자체의 구조조정은 쉽지 않았다. 구 충북은행이나 강원은행의 지점 한 곳만 없애려고 해도 노조는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지역 의원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조흥은행 전직 고위 임원은 “이런 상황에서 의원들의 반발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기 위해 충북 및 강원지역 후보 7명에게 각각 300만원씩 지원하기로 임원들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임직원들 탄원서 제출도

조흥은행 관계자는 당시 부행장이었던 최동수 현 행장의 관련 여부에 대해 “최동수 부행장은 당시 위성복 행장이 영입하긴 했으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려움을 상의할 사이는 아니었다”면서 “당시 최 부행장은 일부 임원들 사이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는 것 자체도 몰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당시로서는 과거처럼 대출 커미션 등을 받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비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이때 위 전 행장이 당시 H비서실장에게 ‘사실은 얼마 전에 진흥기업 박영준 회장이 3000만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가져왔기에 거절하고 돌려보낸 일이 있다’고 말해주자 2000년 3월 말 H실장이 박회장을 찾아가 그 돈을 받아왔고, 이를 총선 후보 지원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이창복 전 우리당 의원은 유일하게 후원금을 반환했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대해 “그런 얘기가 어떻게 알려졌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은행에서 후원한다는 게 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돈 안쓰는 선거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부탁으로 16대 총선자금 지원

2004년 4월 16일 총선에 나선 한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어쨌든 이는 위성복 전 행장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돼버렸다. 검찰은 위 전 행장이 3000만원을 받은 것은 조흥은행이 보유 중인 2154억원어치의 진흥기업 부실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311억원에 매각하고, 이 채권을 다시 진흥기업이 383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편의를 봐준 대가로 해석해 위 전 행장을 올 1월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로 구속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김병운 부장판사)가 3월11일 위 전 행장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해 위 전 행장은 풀려날 수 있었다. 위 전 행장이 평소 자기에게 엄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조흥은행 임직원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은 검찰과 위 전 행장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된 상태.

재판 과정에서 위 전 행장의 변호인은 위 전 행장이 박영준 회장에게 돈을 받은 것은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이 없어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흥은행이 진흥기업의 주거래 은행으로서 향후 지속적인 대출 관계가 예상된다는 점 등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조흥은행 관계자들은 “위 전 행장으로선 ‘법리적으로는 비록 유죄를 받았다고 해도 도덕적으로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고 주장할 만하다”고 말한다. 진흥기업 부실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할 때는 행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편의를 봐주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위 전 행장 역시 평소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은 것이 드러난다면 개××”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여기에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이자까지 계산해 되갚은 은행의 책임자였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위 전 행장으로서는 비리에 연루된 금융인으로 몰렸던 것이 가장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조흥은행 임직원들의 얘기다.



주간동아 446호 (p34~36)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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