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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원외교 채널 전면 수리 중

17대 총선 대폭 물갈이로 기존 라인 붕괴 … 미·일·중·러와의 창구 개설 본격 시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한국 의원외교 채널 전면 수리 중

한국 의원외교 채널 전면 수리 중

2003년 4월 국회 귀빈식당에서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합동회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때 박관용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하던 이성권씨(35)가 국회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때는 2000년 4월 총선 직후. “더 늦기 전에 희망을 찾아야 한다”며 내린 결단이었다. 그러나 결단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도쿄 생활 4개월 만에 몸무게가 16kg이나 빠졌다. 현해탄을 건널 당시 히라가나도 모를 정도로 ‘일본’을 몰랐던 그로서는 당연한 고통이었다.

1년 반 뒤, 어느 정도 도쿄 생활에 적응한 이씨는 일본 정치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먼저 인터넷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신상을 뒤졌다.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가능성과 국제감각, 아시아에 긍정적인가’ 여부가 선택의 기준. 고노타로(河野太郞) 의원이 보였다. 63년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그는 유학시절 미 상원의원의 인턴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국제파. 이력서를 제출했고, 얼마 후 이씨는 고노타로 사무실로 출근했다. 2년간의 인턴과 공부를 마친 것이 지난해.

이씨는 17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부산진을에서 당선됐다. 당선 직후 지역구로 고노타로 의원이 찾아와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 당선자가 의원 선서를 하기 전 찾은 곳은 한·일의원연맹. 고노타로의 부탁도 있었지만 이 당선자 역시 의원외교의 필요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찾아간 한·일의원연맹은 ‘중병’을 앓고 있었다.

미국 방문 의원 많아도 실속은 없어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허주(김윤환 전 의원의 호) 등 한국의 대표적인 ‘지일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연히 ‘채널’이 끊겼다. 17대 당선자 299명 중 62.5%에 해당하는 187명이 정치 신인으로 채워지면서 의원외교의 창구들이 사실상 붕괴됐는데, 직격탄을 한·일의원연맹이 맞은 것. 한·일의원연맹 소속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거의 제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아는 사람도 드물고 의원외교의 중요성을 인지한 사람도 드물다. 한국의 급격한 세대교체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누카가 후쿠지로 간사장 등 여전히 ‘JP’급 원로 중진들이 패권을 쥔 일본 정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의원의 설명이다.



“일본 측이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확인된 얘기는 아니지만 한국 총선 후 세대교체를 확인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나도 (한·일의원연맹 회장직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대차는 대화 단절이라는 2차 문제도 함께 가져왔다. 한·일의원연맹의 기능과 구실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만났지만 의회 차원의 ‘양탄자’ 깔기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한·일의원연맹 측은 최근 회장단을 새로 구성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자는 기치 아래 새 단장에 나섰다. 한국 측 회장은 문희상 국회 정보위원장. 권철현 이낙연 전여옥 의원 등이 그의 뒤를 받치고 나선 뉴페이스들. 이들은 8월21일부터 3일 동안 한·일의원연맹 모임을 통해 의원외교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세대차와 눈높이가 맞지 않은 한일 의원들의 주파수는 한동안 엇박자 행태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낙연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관계자들이 만났을 때 일본어가 ‘공용어’가 되는 것이 불만이다. 또 외교적 접근보다 친선, 인맥 확보에 비중을 두는 모습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일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고노타로 의원 등 일부 일본 소장파 인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초, 열린우리당 (이하 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미국을 찾았다. 그 뒤를 이어 우리당 유재건 의원 등 한미의원외교협회 소속 의원 7명은 10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했다. 7월과 8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거나 다녀온 의원들은 줄잡아 30여명.

한국 의원외교 채널 전면 수리 중

한·일의원연맹 문희상 회장

미 의회는 8월부터 여름 휴회에 들어가고, 9월부터는 민주 공화 양당이 대선 체제로 돌입한다. 때문에 의원들이 7월과 8월에 집중적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 당시 대미, 대러 의원외교의 대부로 통했던 정재문 전 의원은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이 의원외교를 강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한다.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장을 찾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 미 고위 정치인들을 사귈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대(對)아시아 전략과 대북 및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EU·남미, 민노당 의원외교에 관심

그러나 의원외교의 실상은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다. 수십명이 미국을 찾지만 제대로 된 코스에서 힘 있는 위정자를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물다는 것.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지만 외유 일정이 졸속으로 마련됐거나 구체적 스케줄 없이 ‘일단 나가고 보자’는 분위기도 많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 골프 관광 등 일정이 불투명한 경우도 있다.

17대 한미의원외교의 주축은 한미의원외교협의회 유재건 회장, 주미 공사 등을 지낸 정통 외교관 출신의 정의용 의원, 미 라이스대학 종신교수인 채수찬 의원 등. 한나라당에선 박진 의원이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유재건 의원은 “새로 의원이 된 사람들은 대체로 외교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고, 지도부 역시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정재문 전 의원은 “기존 라인을 가져가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17대 의원들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전통적 우방인 미국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386 운동권 출신 인사들 사이에 중국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당 임종석 송영길 의원 등은 대중 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할 예정이다. 오영식 윤호중 의원 등도 새롭게 한·중 의원외교 무대에 등장할 뉴페이스. 임채정 의원(우리당)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중의원외교협의회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들의 대중외교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구려사 문제 등 현안들이 있지만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급격한 ‘중화’ 중심적 사고에 제동을 거는 인사들도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대만 천수이볜 총통의 취임식에 참석하려 했을 때 중국 측이 참석을 만류한 것을 놓고서도 주권을 침해당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한국 의원외교 채널 전면 수리 중

4·15총선에서 당선된 이성권 의원을 찾은 고노타로 의원

4강 외교의 마지막 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러의원외교협의회도 세대교체 바람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한러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던 민주당 이협 의원이 낙선해 중심을 잃었다. 부회장단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의원은 한나라당 이강두 의원. 그렇지 않아도 원래 약한 라인이 초토화됐다. 최근 서울 삼성동 인근에 세워진 러시아 대사관저 완공 파티에 러시아 외무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반기문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지만 국회의원들은 한나라당 인사 2명만이 참석했다. 이날 초청장을 받고 참석했던 정재문 전 의원은 “8월 초 이임하는 부대사의 송별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권의 경우 16대 때는 미약하게나마 채널이 형성됐다. 한-이란(회장 박종웅 전 의원), 한-이집트(박상천 전 의원), 한-리비아(이규택 의원), 한-쿠웨이트(박상규 전 의원), 한-요르단(전용원 전 의원) 의원친선협회 등이 대표적 라인.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지난 4월 총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규택 의원이 유일하다. 아랍권 의원친선단체들은 새로운 회원을 영입, 라인업에 나섰지만 적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로 아랍을 상대로 한 의원외교의 한계를 설명한다.

반면 민주노동당의 의원외교 ‘청사진’은 눈부시다. 브라질의 노동자당(PT), 프랑스 사회당처럼 진보정당·노동당 계열의 정당들이 많은 유럽 및 남미 쪽과의 의원외교 영역을 새롭게 넓혀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민노당을 꽤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 446호 (p30~32)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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