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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대형병원의 '사기'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양질 의료서비스 아닌 병원 수입 올리기로 악용 … 환자들 환불·제도 폐지 요구하고 나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선택진료 신청서를 쓰고 있는 환자들.

7월16일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울산대, 아주대 등 국내 최대 규모 대학부속병원 5곳의 병원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보건복지부가 비공개로 마련한 이날 간담회의 주제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선택진료제’. 이 자리에서 병원장들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일괄적 선택진료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선택진료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장 등 ‘일괄적 선택진료제’ 개편 공감

흔히 ‘특진’이라고 알려져 있는 선택진료제는 환자나 보호자가 특정한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고 추가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 원칙적으로 볼 때 환자는 경험 많고 실력이 검증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 측에서는 추가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 이에 따라 전국 대부분의 대형병원에서 선택진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 대형병원들이 선택진료제를 악용해 환자들에게 부당한 추가비용을 부담시켜왔으며, 특히 일부 병원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환자들에게 선택진료비를 환불해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형병원들은 선택진료제 폐지와 부당한 선택진료비 수입 환불을 요구하는 환자단체들의 집중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선택진료의 문제점이 처음 밝혀진 것은 만성 허리통증을 앓고 있는 김건식씨(57)가 2002년 10월 A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지나치게 많이 나온 진료비에 대해 항의하면서부터. 이 대학병원의 통증클리닉에서 선택진료를 받은 김씨는 진료비를 내다 평소 일반 병원에서 내던 금액의 3배가 넘는 병원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진을 받은 의사의 진찰료뿐 아니라 혈액검사와 방사선 진단, 주사료 등에도 특진비가 추가돼 있었던 것.



김씨는 진찰만 선택진료의가 담당했는데 모든 항목에 선택진료비가 붙은 것은 부당하다며 진찰비를 제외한 특진비의 환불을 요구했고, 병원 측이 이를 거부하자 결국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이 병원을 고발했다. 복지부의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이 대학병원 통증클리닉에서만 2000년 5월부터 3년 사이에 1000여명의 환자가 2900만원 정도의 특진비를 초과 지불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부당 청구된 특진비 2900여만원이 통증클리닉의 마취시술 한 항목에서만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학병원 전체에서 부당하게 받은 특진비 규모는 더욱 거대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이에 대해 환자권익 보호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강주성 대표는 “환자들이 몰라서 그렇지 조사대상을 전국 병원으로 넓히면 특진비를 과다 납부한 환자의 수는 수십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형병원들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퍼스트 클래스’가 80%인 비행기꼴

선택진료제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9년, 서울대병원 등 일부 국립대병원이 의사들의 상대적 저임금을 보충하고 근무 의욕을 높인다며 ‘특진’ 시스템을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이 제도는 여러 병원에 파급됐고 2000년 10월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전국 대부분의 병원에서 운영되기 시작했다.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김건식씨가 A병원에 제출한 선택진료 신청서와 영수증. 김씨는 통증클리닉에만 선택진료를 신청했는데 영수증에는 검사료, 방사선 및 핵의학료, 수술 및 처치료 등의 항목에도 선택진료비가 부과돼 있다.

문제는 선택진료 제도가 병원 수입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 갖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 부산에 있는 한 국립대병원의 경우 선택진료제를 본격 도입한 첫 해인 2001년 특진으로 올린 수입이 1999년에 비해 138.6%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국립대병원도 수입이 평균 45.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추가투자 없이 손쉽게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선택진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지금껏 전체 의사의 80%만 선택진료 의사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을 공공연히 위반하며 선택진료 확대에 열을 올려왔다. 한 대학병원의 경우 인턴, 레지던트를 제외한 전체 의사 146명 가운데 128명이 선택진료의다. 의사 전체의 88%에 달하는 수치다. 또 다른 대학병원도 의사 176명 가운에 157명이 선택진료 의사로 전체의 89%가 진찰료와 특진비를 동시에 받는다.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의료의 공공성 확보를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조원들.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선택진료의는 전문의 자격 인정을 받은 후 10년이 경과한 의사이거나 대학병원 또는 대학부속 한방병원의 조교수 이상인 의사. 대학병원들은 이 규정을 악용해 대부분의 의사에게 조교수 자격을 부여하는 형식으로 특진의 수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대학병원의 경우 한 과의 진료 의사 거의 모두가 조교수 이상의 보직을 받은 상태에서 선택진료의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능력 있는 의사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겠다는 선택의료제의 본래 취지가 현저히 퇴색된다는 점.

A병원에서 추가 선택진료비를 돌려받은 김건식씨는 “강요된 선택진료는 부당하다”며 진찰료에 대한 선택진료비까지 환불받았다. 김씨에 따르면 그가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찾아간 날, A병원 통증클리닉에서 환자를 진찰하는 모든 의사가 선택진료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김씨의 주장에 대해 A병원은 “일반 진료의가 함께 진료하고 있었다. 김씨가 워낙 강력하게 선택진료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 돈을 환불해줬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김씨를 제외한 상당수의 환자들도 여러 병원에서 이 같은 경험을 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병원에서 ‘강요된 선택진료’를 받았다는 김영조씨(50·가명)는 “선택진료비가 부담돼 일반 의사의 진찰을 받고 싶다고 말했더니, 병원 직원이 이틀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당장 몸이 아픈 상태에서 ‘선택진료 의사는 즉시 만날 수 있지만, 일반의를 만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말할 수 있는 환자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지금의 선택진료제를 ‘퍼스트 클래스가 80%인 비행기’에 비유한다. 일반진료보다 나은 진료를 받기 위해 선택진료를 신청하지만 사실은 그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의사가 선택진료의인 현실을 풍자한 말이다. 선택진료를 피하기 위해 좁고 불편한 20%의 이코노미 클래스로 옮겨갈 수도 없는 환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막대한 선택진료비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땅 짚고 헤엄친 ‘특진’ 맛 좀 봐라

선택진료 의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명판. 대형병원 진료 의사 가운데 80% 이상이 선택진료 의사인 현실에서 환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합법적’이고 환자에게 부당하지 않은 운용을

선택진료 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이 수입이 병원의 편의에 의해 자의적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 2003년 서울대병원이 선택진료비로 벌어들인 수익은 308억원에 이르지만, 이 돈은 대부분 의사들의 성과급과 직원들의 회식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의사들은 경력과 환자 수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성과급을 지급받고, 일반 직원들 몫으로는 한 명당 2만5000원꼴로 계산된 선택진료비가 매달 각 과에 일괄 지급된다. 이 돈은 보통 부서 경비나 회식비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의 지난해 결산자료를 보면, 해마다 적자 운영에 시달린다고 강변하면서도 선택진료비 수입 가운데 일반 경비로 지출한 금액은 20%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들이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지출한 금액을 고스란히 병원 배 불리기 위한 예산으로 사용한 셈이다.

이처럼 흥청망청 쓰이고 있는 선택진료비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선택진료비가 환자부담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외과의 경우 선택진료비로 부담한 액수가 총액의 36.51%에 달하는 환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의 경우 16.64%, 감염내과는 8.56%를 부담한 환자가 있다. 선택진료제의 문제점을 뒤늦게 알게 된 환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혈병 환우회의 권성기 사무국장은 “오랜 기간 병원에 다녀야 하는 중환자들에게 선택진료비는 막대한 부담이 된다. 이제는 환자들이 나서서 선택진료제 피해 사례를 모아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 제도의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형병원들은 현재 선택진료비가 병원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만큼 수가를 높여주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선택진료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16일 회의에서 병원장들도 선택진료제에 일부 문제는 있지만 현상황에서 이를 폐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병원과 환자단체 사이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선택진료제 문제를 풀 수 있는 첫 번째 실마리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의료전문가들은 ‘합법적’이고 ‘환자들에게 부당하지 않은’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주간동아 446호 (p16~18)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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