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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뭐~ 베스트셀러가 禁書라고?

고리키의 ‘어머니’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등 판매 중인 수많은 책들 아직도 ‘이적표현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뭐~ 베스트셀러가 禁書라고?

뭐~ 베스트셀러가 禁書라고?

6월4일 서울국제도서전의 세계금서특별전에 국내외 400여종의 금서가 출품돼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놀랍군요. 고리키의 ‘어머니’, 백기완 선생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는 얼마 전에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책들이 금서라니….”

6월4일부터 9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세계금서특별전’에서 만난 회사원 한모씨(24)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막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의아해했다.

이뿐 아니다. 지금도 서점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강만길 상지대 총장의 ‘한국근대사/ 현대사’,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박세길씨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동녘출판사의 ‘철학에세이’ 같은 책들도 ‘읽어선 안 되는’ 금서다. 이 책들은 모두 대검찰청이 관리하고 있는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 1220종(2003년 자료)에 속한다.

따라서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책을 갖고 있는 이를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체포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야 이런 일을 당할 가능성이 낮지만 학생운동가나 노조 지도자들이 이런 책을 갖고 있다면 유죄의 직접 증거가 돼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수많은 금서가 있다. 유신과 5공화국을 거치며 수많은 도서가 ‘체제를 위협하는’ 금서로 낙인찍혔고, 아직도 그 올가미를 벗지 못하고 있는 책이 많다. 예컨대 군대나 교도소 등지에 반입이 금지된 도서가 이에 해당한다.



도서전에서 만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시대 변했는데도 금서 기준은 ‘5共’

뭐~ 베스트셀러가 禁書라고?

세계금서특별전을 준비한 대한출판문화협회 김인기 과장, 출판평론가 표정훈 박천홍씨(왼쪽부터).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성을 인정받은 책들조차 아직도 ‘이적표현물’로 묶여 있는 것은 독서와 사상, 양심의 자유를 난폭하게 유린하는 일입니다. 또 어떤 이는 이를 갖고 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하고, 어떤 이는 내버려두는 모순적인 상황은 근대 시민국가의 기본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생활의 예측 가능성’을 무시하는 행태입니다.”

금서는 당대에 발간 보급이 금지되거나 제약당한 책을 말한다. 법률로 금서라고 낙인찍히는 게 아니라 발간 보급 유통할 경우 처벌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책이다. 국내의 경우 금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죄나 형법의 내란과 선전선동, 간첩죄에 의거해 조치되거나 음란문서로 처리되는 경우다. 둘째 개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한 도서다.

정부기관이 금서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에는 대부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이적표현물 여부를 판단하는 곳은 경찰의 공안문제연구소와 대검찰청의 민주이념연구소. 이곳에서 도서와 유인물 등을 용공성, 좌익성, 친북 용공성향, 반정부적 성향, 문제없음 등으로 나눈다. 그러나 이런 개념 자체가 학술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고 근거나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검·경찰은 이곳의 판단을 이적표현물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로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은 이를 증거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물론 ‘이적표현물 목록’ 가운데에는 명백히 북한정권을 찬양하는 유인물이나 도서들이 있다. 또한 북한사람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은 북한 원전도 많다. 그러나 한위원장은 “표현물 자체보다 그것을 빌미로 사람이나 조직을 단속하고 처벌하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사실 ‘공산당선언’이나 북한 원전을 읽은 사람을 곧바로 처벌하는 행위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어긋난다. 이것은 근대국가의 기본원리가 된 칼 슈미트의 ‘중성국가의 원리’에 근거한다. 즉 ‘국가는 특정한 가치체계나 이데올로기를 규제하거나 진리의 심판자 노릇을 하기보다 질서유지, 공공안정의 기능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뭐~ 베스트셀러가 禁書라고?

‘열하일기’ ‘정감록’ ‘신동엽 전집’ ‘철학에세이’ ‘우상과 이성’(왼쪽부터).

군사정권 이래 도서 발간과 수입에 대한 사전·사후 규제기구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안보나 공공질서, 청소년, 성풍속 등에 ‘유해성’이 인정되면 발행인과 수입업자에게 심의결과를 통고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장치다.

이런 제도와 기관에 의해 유신과 5공화국을 거치며 수많은 금서들이 양산됐지만 한 번 금서라는 올가미가 씌워진 책들은 좀체 그것을 벗어 던질 수 없었다. 5공화국 말기 1987년 ‘출판활성화 조치’가 취해졌는데 그동안 판매금지됐던 650종 가운데 431종이 해제됐다. 그러나 당시 미해금된 책들 가운데 양서로 꼽히는 ‘겨레와 어린이’(이오덕 지음), ‘실천교육학’(프레이리 지음),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프란츠 파농 지음) 등은 여전히 금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서 관련 자료도 제대로 정리 안 돼

6공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에는 북한 원전 출간 붐이 일어 138종이 쏟아져나왔다. 정부는 북한 원전 출간 열기에 당황해 다시 5공 시절의 금서정책으로 돌아갔다. 대대적인 북한서적 단속을 통해 출판인들을 구속하고 책 1만4205권을 압수했다.

당시 북한 원전 등을 출간했던 출판인들은 그것이 북한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주체사상의 형성과정’ 등을 펴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을 살았던 한 변호사는 “그 책은 북한사람의 글과 주장을 그대로 실은 것일 뿐 북한을 찬양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북한자료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더 왜곡되는 점들이 있어 사실 그대로를 보고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취지에서 출간했다”고 말했다. 또 “이적표현물이라는 기준이 자의적이고 근거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적표현물 목록에 올라 있는 책들이 정말 이적표현물이고 이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면 지금도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서에 대한 탄압이 잦아들기 시작한 시점은 민주화와 더불어 복사기와 팩스, 타자기 등이 일상화되고 인터넷의 보급이 가속화되면서였다. 공공연하게 금서들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고, 당국도 그것을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았다.

수많은 금서들이 후대에 고전으로 바뀌었듯 권위주의 시대의 금서들도 그런 전철을 밟아갔다. 주자의 ‘소학’,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태준의 ‘쏘련기행’, 현채의 ‘월남망국사’, 신채호의 ‘을지문덕전’, 톨스토이의 ‘인생론’, 다윈의 ‘종의 기원’ 등처럼 금서목록에서 고전목록으로 자리를 바꿔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길사는 1979년 나왔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을 25년 만에 재출간했다. 이 책은 1979년 10·26사태 직후 금서로 분류됐다. 87년 해금됐지만, 이후 10년간 6권이 나오기까지 판매금지와 출판사의 영업정지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됐다.

결국 이적표현물이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재의 모순된 상황을 풀기 위해선 국가보안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상범 위원장은 “대안은 국가보안법을 개폐하거나 법조문을 해석하는 데 구체적이고 명확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금서에 대한 자료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게 없는 실정이다. 출판평론가 박천홍씨는 “금서는 베스트셀러와 또 다른 의미에서 한 시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므로 이에 대한 현황 파악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교황청의 경우 구교회법에 근거해 금서 여부를 판단했고, 마찬가지로 해제하는 것도 특정한 절차를 밟아 풀었다”며 “우리 사회도 과거 어떤 형태로든 금서를 만들었다면 바뀐 시대에 맞게 풀 것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439호 (p86~8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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