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9

2004.06.17

쌓고 허물고 흥미진진 ‘블록 삼국지’

레고 옥스포드 메가블럭, 800억원 시장 놓고 혈투 … 업체마다 다른 시장점유율 치열함 방증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6-11 1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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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고 허물고 흥미진진 ‘블록 삼국지’

    한 대형마트에서 블록을 고르고 있는 어린이

    블록이오? 그게 뭔데요?”

    “아, 레고요? 그게 레고지 왜 블록이에요?”

    서울 상명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생 4명에게 “어떤 블록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들의 반응은 완구시장에서 ‘레고’가 갖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국내 소비자 인지도 98%(2000년 조사)를 자랑하는 브랜드답다.

    그런데 이렇듯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다국적기업 레고사와 10년째 혈투를 벌이고 있는 토종 브랜드가 있다. ‘경찰기동대’ ‘성’ ‘해적선’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옥스포드’다. 레고코리아 측은 옥스포드의 시장점유율이 레고의 60~70%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옥스포드 측은 “이미 레고를 이겼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옥스포드가 레고에 위협적 존재인 것만은 사실. 레고가 진출한 세계 125개국 중 토종 브랜드가 레고와 대등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캐나다 정도다.

    그런데 바로 캐나다에서 레고를 밀어낸 장본인인 ‘메가블럭’이 지난해 11월 국내시장에 진출, 6개월 만에 어엿한 ‘3대 블록 브랜드’의 하나로 자리잡는 파란이 일어났다. 메가블럭의 시장점유율에 대해 레고코리아 측은 “10%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메가블럭의 수입판매사인 게임개발업체 한빛소프트는 “25%는 족히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설사 레고코리아의 주장이 맞다 해도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완구시장 규모는 약 4000억원. 그중 블록시장은 20%인 8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완구회사 두세 곳이 나눠 갖기엔 벅차다 싶을 정도로 ‘큰 땅’이다. 이제 그 땅에 세계 유례없는 ‘삼국 쟁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토종 브랜드 막강 레고와 대등한 경쟁

    레고사는 7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덴마크의 대표 기업이다. 레고사가 플라스틱 소재의 블록 장난감을 처음 선보인 때는 1949년. 오래지 않아 레고는 ‘재미있고 안전하고 간단하면서도 무한한 창의력을 자극하는 지능개발 완구’의 대명사가 됐다. 레고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블록의 종류는 총 2800만 가지. 이중 상당수가 디자인 특허등록이 돼 있다. 레고블록은 제품 생산시기와 상관없이 서로 꼭 맞는다. 제품을 사출할 때 1000분의 2mm 오차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고가 국내시장에 진출한 것은 1984년이다. 한숨에 고급 완구시장을 석권했음은 물론,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경기 이천에 공장도 지었다.

    레고의 국내 블록시장 독식에 제동이 걸린 것은 1995년. 레고코리아의 밴드업체 중 하나였던 ㈜옥스포드가 레고와 호환 가능한 자체 블록 브랜드 ‘옥스포드’ 시리즈를 출시한 것이다. 61년 설립된 ㈜옥스포드는 탄탄한 판매망과 국내 완구시장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회사였다. 여기 한국적 정서에 맞는 제품이라는 장점이 더해지면서 빠른 속도로 블록시장을 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레고의 70~80%에 그친 가격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쌓고 허물고 흥미진진 ‘블록 삼국지’

    놀이학습방에서 블록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신구로초교 어린이들.

    ㈜옥스포드 강문환 과장은 “우리 시장점유율이 40% 이상, 레고는 그보다 조금 못한 것으로 안다”며 “특히 조사범위를 재래시장으로까지 확대하면 옥스포드가 확실히 우위다. 레고는 재래시장에서 아예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체 시장점유율에 대한 각 사의 주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옥스포드가 6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통블록(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큰 블록 세트)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완구매장 ‘토이월드’(www.toyworld.co.kr)의 김동구 사장도 “유아제품 중에는 옥스포드의 판매율이 부동의 1위다. 블록이 커 손에 잡기 쉽고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레고는 유아용 제품 수가 적은 데다 가격도 ‘일상적 장난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싸다”라고 말했다.

    새 제품 잇따라 출시 소비자 노크

    옥스포드의 가장 큰 단점은 제품 라인업이 빈약하다는 것. 옥스포드 시리즈는 총 140여종에 불과하지만 레고와 메가블럭은 1000여종을 헤아린다. 또 옥스포드 제품은 블록 자체에 여러 문양이 프린트돼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조각에 해당하는 스티커를 소비자가 직접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일부에서는 제품의 질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한다. 인터넷 레고동아리 ‘브릭인사이드’ 운영자인 김성완씨는 “레고에 비해 옥스포드는 사출이 매끄럽지 못하다. 너무 헐겁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옥스포드 측도 기술에서 레고에 못 미치는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옥스포드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완구업체는 없다. 또 비싼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중국 등 외국에서의 OEM 방식 생산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레고가 토종 브랜드에 매출이 깨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그것만으로도 레고사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레고코리아 측은 “우리나라 특유의 국산품 애용 정신이 빛을 발한 측면이 크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2강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메가블럭은 세계 블록시장 점유율 2위를 자랑하는 제품이다.

    메가블럭의 도전은 레고와 옥스포드에 모두 위협적이다. 메가블럭은 레고 못지않은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데다 가격은 옥스포드 수준이다. 유아용 제품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리모컨, 사운드, 모터 작동 등을 이용해 남다른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다양성에서 레고사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레고는 로봇 디자인의 ‘바이오니클’부터 블록마다 컴퓨터 칩, 첨단 센서 등을 부착한 ‘마인드스톰스’까지, ‘조각 끼워맞추기’의 개념 자체를 확장하는 새 제품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제품들이 소수 마니아의 환영을 받기는 하지만 어린이, 아동들에게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가지는 못한다는 점. 한빛소프트 이근희 부장은 “레고보다 메가블럭이 좀 헐겁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런데 이는 사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노는 것이니 잘 끼워지고 잘 빠져야 한다’는 게 메가블럭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 5월, 레고코리아의 사장단이 교체됐다. 이천공장의 노사분규도 한 원인이 됐지만 더 큰 이유는 실적 부진이었다. 레고코리아 측은 “지속되는 불경기가 고가 완구의 판매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취약 부분인 유아와 여아 제품 계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장인정신을 담은 레고, 한국 소비자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온 옥스포드, 미주의 스케일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메가블럭.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소비자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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