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제주도 ‘동북아의 파나마’ 부푼 꿈

국적선 확보 ‘제주선박등록특구제’ 정착 … 해외 선박 유치 추가 제도 개선에 박차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5-27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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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박사고 보도를 보면 유난히 ‘파나마 국적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왜 파나마에는 배가 이렇게 많은 걸까’ 하고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거려볼 만도 하다. 파나마는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 제도를 채택한 국가다. 일종의 조세피난처로 등록세, 유지세만 내면 어떠한 규제도 없이 선박 국적을 등록할 수 있게 해놓은 것. 때문에 비용절감을 노린 많은 선주들이 파나마를 국적지로 택하고 있다. 라이베리아,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레바논, 키프로스, 소말리아, 오만 등도 편의치적을 공여한다. 외국선대를 끌어들여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세계 주요 선박보유국은 자국 편의치적선의 국적회복(Flagging Back) 및 해외선박의 자국유치(Flagging In)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국 건설을 꿈꾸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 교두보로 선택한 곳이 제주도. 2002년 4월 발효한 제주선박등록특구 제도(이하 제주등록제)가 신호탄이었다. 제주등록제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지금, 정부는 국적선 확보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도를 ‘동북아의 파나마’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책임연구원은 “국적선 확충은 운임 절감 등 수출에서의 편의는 물론이요, 물류 인프라 확충·제도정비·인력양성 등에 두루 큰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4000명이 넘는 해기사(선장·항해사·기관사)들이 육상 물류의 핵심인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적 대형선사가 있어야만 더 많은 전문인력 배출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비상사태 시 국적선사의 물류통제권 확보는 국가경제 존립의 필수요건”이라고 설명했다.

    해운사업하기 어려운 나라 ‘한국’



    하지만 우리나라가 보유한 상선 815척, 2540만t 중 편의치적선은 417척, 1804만t으로 전체의 약 71%에 이른다(2001년 12월 기준). ISL (Institute of Shipping Economics and Logistics)의 2003년 1월 기준 통계는 65.5%. 기준일이 다르다고는 하나 통계에 이렇듯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해외치적선의 경우 실제 국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주요 상선보유국의 편의치적선 평균 비율 또한 통계 주체에 따라 54.9~61.8%로 다양하게 제시돼 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자료를 기준으로 삼든 우리나라의 해외치적선 비율이 국제 평균보다 10%가량 높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은 ‘해운사업하기 좋은 나라’와 동떨어져 있는 것.

    한 지방해양수산청 선박계장은 “선사들은 자사가 보유한 편의치적 선박 수를 철저히 감춘다. 때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존재 자체를 아예 부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양법 전문 변호사인 한나라당 유기준 국회의원 당선자는 “편의치적은 사실상의 국내 선박을 해외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에 두는 것”이라며 “형법상 관세법 위반 등에 해당할 수 있어 선사들로선 소유주 등 구체적 내용을 감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선주협회 측은 편의치적선의 존재를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선주에게 편의치적은 확실히 유용한 제도다. 파나마 등에 편의치적을 하면 △재무상태, 거래내역 등을 보고하지 않아도 되며 기항지도 제약 받지 않는다 △고임금의 자국 선원을 승선시키지 않아도 된다 △등록세와 매년 징수하는 소액의 톤(t)세 외에 선주의 소득에 대해 조세를 일절 징수하지 않는다 △금융기관이 선박에 대한 유치권(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선박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기 편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선박의 건조 또는 구입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선박의 운항 및 안전기준 등을 규제하지 않아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등의 많은 장점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국적을 택하게 만들려면 전면적인 법적·제도적 개선이 불가피하다. 제주등록제는 그중 조세제도를 정비한 것이다. 국적선이나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용선한 외국선박)의 등기를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이전하면 등록세와 법인세를 제외한 재산세, 취득세, 공동시설세,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을 면제해주는 것이 골자다.

    제도 시행 2년이 지난 지금, 제주등록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480척의 대상 선박 중 90%에 달하는 434척이 제주지역에 등록을 마쳤다. 제주지방해양수산청 측은 “미등록한 선박은 노후로 인해 재산세 감면 효과가 적거나 외국인 선원 승선에 따른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은 선박으로 추정된다”며 “사실상 해당 선박 모두가 등록을 마쳤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등록제 실시를 통해 국적선사는 2003년까지 총 62억원의 세금을 감면받았다. 2004년부터는 매년 340억원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로서도 ‘남는 장사’다. 제주도 국제자유도시추진 기획단 이중환 사무관은 “한 해 3억~4억원의 세수 확충과 함께 등록선박마다 선미에 ‘제주’ 또는 ‘서귀포’라는 표기를 하게 돼 있어 국제적 홍보 효과가 적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해운·선박금융산업 유치 등의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금감면 정도로는 편의치적선의 국적 회복이나 해외선박 유치까지는 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가 올 12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인 것이 ‘선박톤(t)세법’ 도입이다. 경영실적 대신 운항선박의 t수와 운항일수, t당 세율을 고려해 법인세율에 따라 세금을 산출하는 것. 특정산업에만 부과되는 일종의 조세특혜로 이미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 독일, 스페인 등 해양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선박 톤(t)세법 실시 땐 가장 좋은 조건

    황진회 책임연구원은 “톤세법까지 실시할 경우 세금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문제는 금융과 선원채용 문제”라고 말했다.

    이 중 발등에 떨어진 불이 외국인선원 고용제한 문제다. 현행법상 국적선은 해기사의 경우 외국인선원 고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부원선원(일반선원)에 한해 외항선은 척당 6인 이내, 원양어선은 척당 55% 이내에서만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장 출신으로 부산에서 선원송출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요즘은 선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3D 업종이라며 기피하는 것이다. 게다가 임금도 매우 비싸다. 선주로서는 미얀마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선원을 고용하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선원 고용제한이 국적선 수를 늘리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수부는 한국선주협회, 전국해상산업노조연맹, 전문연구원 등과 함께 외국선원 고용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선원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여서 결론을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해수부 측은 “현재의 수급구조가 유지될 경우 2007년부터는 선원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해수부는 이와 함께 선박금융제도 개선과 선박등록제도 간소화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수출입은행이 주도해 설립한 국내 첫 선박펀드도 그 일환이다. 선박투자회사가 일반투자자의 투자자금 및 금융기관 차입자금으로 선박을 건조 또는 매입, 그 선박을 해운사에 대여해 얻은 수익으로 투자자 배당과 차입금 상환을 하는 투자금융기법이다.

    해수부 해운정책과 이정희 사무관은 “현재 4단계(등기-등록-국제선박 등록-제주선박특구 등록)로 돼 있는 선박등록제도도 최대한 간소화할 계획”이라며 “2005년까지 제반 제도가 정비되고 나면 새로 건조·구입하는 선박의 국적선 등록은 물론 해외선박 유치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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