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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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애국심이 미국을 망친다”

이라크 전쟁 등 대외정책 미국 내부 거센 비난 …“테러 집단보다 위험한 것은 지도력 실패”

  •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입력2004-05-27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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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목적 애국심이 미국을 망친다”

    '반전'과 '부시의 탄핵'을 주장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시위장면.

    -사람들: 왜 ‘9ㆍ11 사태’가 터졌는가?

    =부시 대통령: 테러 때문이다.

    -사람들: 그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부시 대통령: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사람들: 잠깐만. 전쟁이라고?



    =부시 대통령: 어허. 9·11!

    -사람들: 오, 예. 유! 에스! 에이!

    포로학대 창피하다 VS 전쟁 중엔 어쩔 수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미국인의 높은 지지를 얻은 데 대해 미국의 한 비평가는 이런 표현으로 비꼬았다. 9ㆍ11 이후 미국인들이 맹목적인 애국심의 경향을 보이는데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로부터 점차 외면당해오면서도 큰소리를 쳐온 미국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학대 행위가 공개된 뒤 입을 다물었다. 미국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메달 세리머니를 할 때 성조기를 흔들지 말라”고 주의를 준 이유도 학대사건의 여파 때문이다. TV로 중계되는 성조기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적대감정을 불러일으켜 미국을 더욱 증오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5월11일 ‘USA투데이’와 CNN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70%가 넘는 응답자가 포로학대를 ‘중대한 사건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짓’이라는 인식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초 실시된 AP 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대해 국민의 51%가 반대, 46%가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 짓을 한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세계가 미국을 판단하지 말기만을 바랄 뿐이랍니다.” 한 뉴요커가 포로학대 사건과 관련해 일단 미군들을 비난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또 인디애나주에 사는 데이비드 바이럼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늘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처럼 악독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생각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뉴멕시코주에 사는 수 해먼드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인이라는 것이 창피하다”면서 “미국의 이름으로 벌인 전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포로학대 사건에 대한 많은 미국인들의 반응이 이와 비슷하게 나온다. “학대장면 사진을 보고 대통령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을 찍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더 큰 걱정은 미국의 체면이 깎였다는 점이다. 이라크인들의 인권에 관심이 닿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적다.

    반면 미군을 옹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스물한 살의 조시 매튜스는 “사람들이 포로학대 사건을 두고 울부짖지만 전쟁 중에 사망한 미군을 생각하면서 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전쟁 중엔 이와 같은 학대사건이 발생하게 마련이라는 시각도 많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극히 일부 사람에 의해 학대사건이 저질러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한걸음 더 나간 해럴드 존슨은 “팔루자 거리에서 끌려다니던 미국 민간인을 보면서 흥분하던 목소리는 어디 갔느냐”면서 “미국인들에게는 더 심한 일들도 많았다”고 외쳐댄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돼 미국의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제시카 린치는 20~30차례는 강간당했을 것”이라며 “그 내막을 우리는 자세히 모르지 않느냐”고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미군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기초로 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급속하게 확산되고 강화된 애국심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동력 중의 하나였다. 애국심의 확산은 눈으로도 보였다. 최근에는 많이 줄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성조기가 늘 걸려 있는 주택이 많았다. 차량이나 업소의 출입문 등은 성조기 스티커로 장식됐다. 9·11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노란 리본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도 성조기와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애국심 웹사이트’가 부쩍 늘어났다. 이 사이트들은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자는 내용에서부터 더 강력한 미국을 위해 부시 대통령과 전쟁을 지지하자는 취지의 글과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미국 언론들은 9·11 이후 애국심이 고취되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통해 알 카에다를 추적해온 미국의 태도가 아부그라이브에서의 포로학대와 같은 추문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수렁에 빠진 이라크 문제 눈높이 낮출까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인 2001년 10월7일. 이날 밤 폭격이 시작됐고 무인 프레데터 정찰기가 자동차 행렬을 발견했다. 미국 정보계통에서는 이 차에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타고 있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플로리다 탐파의 미 중앙지휘본부의 한 변호사가 이들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지 않았다. 공격 승인이 났을 때는 목표물을 찾을 수 없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난리를 쳤다. 11월에도 미 공군 조종사들은 알 카에다 간부와 탈레반들을 발견했으나 법적인 문제 때문에 제때 공격을 하지 못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바 있다. 미국 특수부대가 세계 각국에서 목표물을 발견했을 때 명령계통을 통해 현지 미국 대사 등에게 보고하는 절차를 밟느라 행동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럼스펠드 장관이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해 가치가 높은 목표를 발견했을 때는 이를 죽이거나 체포하거나 심문하는 데 사전승인을 해주는 비밀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럼스펠드 장관이 사건 초기에 말한 대로 ‘몇몇 군인들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 작전은 부시 행정부가 시간을 다투는 첩보에 대응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즉 특공대는 비자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고 관타나모 기지로 옮길 만큼 중요한 테러 용의자들을 먼저 심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유치장에서 필요한 경우 물리력을 써가면서 용의자들을 심문했다고 뉴욕의 시사주간지 ‘뉴요커’가 보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꼭 체포해야 할 사람은 체포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미국 내부에서도 비난이 거세다. 부시 행정부에서 테러대응 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클라크는 ‘모든 적들에 맞서’라는 책에서 “부시 대통령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급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강화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부시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프린스턴대학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위험한 것은 ‘악의 축’으로 불리는 외부의 테러집단이 아니라 미국의 지도력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인의 애국심을 활용해 자신의 잇속만 차리며 세계를 통치하려 하는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사태의 근본 문제”라며 부시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네오콘을 겨냥했다.

    이제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시간에 쫓기고 있다. 유엔이 이라크 문제를 떠안을지도 의문이고 이라크 치안확보 문제도 요원하다. 적당히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부시 대통령에게 목표를 낮추라고 권한다. 이라크 전쟁의 목표를 당초 내세웠던 ‘이라크의 민주화’가 아니라 ‘안정된 이라크’로 바꾸라는 것이다. 9·11 이후 빗장을 내걸고 폐쇄국가로 변해가는 ‘일방주의’의 미국이 아부 그라이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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