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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피에르&쥘’ 展

관습과 인습 건너 상상의 세계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관습과 인습 건너 상상의 세계로

관습과 인습 건너 상상의 세계로

Legend(전설), 1995, 모델은 마돈나.쥲 Parfum de Femme(여인의 향기), 2002, 모델은 서니 뷔익. Le Pecheur de Perles(진주조개잡이), 1992, 모델은 토마. Les Maries (신랑 신부), 1992, 작가 피에르와 쥘이 직접 모델이 되어 결혼식을 연출했다.(왼쪽부터)

영어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상대어로 흔히 ‘스트레이트(straight)’라는 단어를 쓴다. 스트레이트라는 말은 원래 ‘곧은’, ‘정돈된’, ‘인습적인’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의 감각은 쭉 뻗은 직선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모호한, 이성애자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나선형의 세계에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현대 서구에선 이런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하며, 프랑스의 게이 아티스트 커플 ‘피에르&쥘’은 그 증거처럼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트렌드를 이룬 1980~90년대 프랑스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피에르&쥘’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16일까지 열리고 있다. 마돈나, 장 폴 고티에, 카트린느 드뇌브처럼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스타들이 모델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평일에도 적잖은 관람객이 몰리고 있는 전시다.

1970년대 감각적인 인물 사진으로 패션과 광고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진작가 피에르와 회화 작가인 쥘은 일본인 디자이너 겐조의 파티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30년 넘게 함께 산 이들은 이제 사이 좋게 늙어가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다.

이들의 작업은 대개 피에르가 사진을 찍고, 그 위에 쥘이 회화 작업을 더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사진의 특성은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나 쥘의 덧칠로 인해 ‘피에르&쥘’의 작품은 유일성을 얻는다.



30년 함께한 게이 아티스트 커플

그러나 이들의 독창성은 이 같은 형식에 있다기보다 그들이 보는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표현하는 과정에 있다. 이들은 마돈나나 이기 팝, 장 폴 고티에 같은 세계적 스타(그들의 작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톱스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단지 사진 촬영을 위해 파리의 스튜디오까지 찾아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피에르&쥘’은 “배우에게 전화를 해서 ‘사진 찍자’고 하면 ‘아, 좋아요’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를 요정이나 신, 성자와 신화의 영웅으로 연출한다.

모델은 작가들이 디자인한 이교도적인 옷을 입고,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한다. 각종 소품이 동원되고, 빛이 마술을 부린다. 그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과 같다. 피에르와 쥘은 공동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를 지어내며, 스케치를 한다. 목수들에게 세트를 짓게 하고 직접 페인트칠을 한다.

파리에 있는 그들의 집 겸 스튜디오에는 그들이 수집한 온갖 종교의 신상(神像)과 신물(神物)들이 모여 있고, 전 세계의 잡동사니들이 나름의 질서를 이루고 있어 그 자체가 거대한 설치작품이기도 하다.

쥘은 사진 위에 부서지는 달빛을 물감으로 찍어넣기도 하고, 흩날리는 꽃잎을 그려넣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바로크적으로 요란하고, 포스트모던하게 국적이 불분명한 액자에 끼워진다.

그것은 도대체 미술의 어느 장르에도 끼워넣을 수 없는 ‘피에르&쥘’의 세계다.

별이 산산이 부서져내리는 하늘, 심해의 물거품 사이로 알록달록한 나무와 물고기들이 어른거리는데 사진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마돈나라는 식이다. 그들은 대중 스타인 마돈나라는 인물 뒤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유치한 장난감을 통해 다른 차원의 메시지를 읽는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하늘을 보고 ‘파란색’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파란색의 색 번호표에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속의 ‘남성’ 모델은 우리가 아는 ‘남성’으로 정돈되지 않는다.

‘피에르&쥘’의 작품은 관습적인 인간의 상상력이 가 닿지 못하는 세계라서, ‘스트레이트’한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보고 느끼고 만지는 세계다. 그들의 작품이 슬픔을 자아낸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 지점일 것이다. 그들의 ‘리얼리티’가 대중에게는 그저 예쁘거나 그로테스크한 ‘허구’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피에르&쥘’은 전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들이 기꺼이 수용하고 싶어하는 스타급 작가가 되었다. 게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도 늘어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성애자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세상의 진실이 아니라는 이들의 주장은 지금도 얼마나 놀라운가. 그런 관점에서 ‘피에르&쥘’의 작품은 여전히 새롭고 혁명적이다.

전시장은 작가들의 뜻대로 ‘동양적인’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전시벽이 빨갛게 변하니 벽면에 뚫린 화재 진압용 금속관들이 더욱 번쩍거려 반짝거리는 ‘피에르&쥘’의 작품과 충돌해 감상에 큰 방해가 되고 있었다. 시민의 돈으로 새로 지은 미술관, 좋은 기획전에 유감스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90~9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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