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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총선 그 이후

경제 물줄기 급류 타지 않는다

우리당 ‘성장과 분배의 조화’ 기조 유지 … 진보 개혁 민노당 등장 재계 긴장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경제 물줄기 급류 타지 않는다

경제 물줄기 급류 타지 않는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신용회복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민노당원들.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진 4월15일 저녁. 각 기업 정보담당 임직원들은 집이 아닌 사무실에 모여 개표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음날 아침 CEO 등 최상위층에 올릴 총선 결과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였다. 한 대기업 대외협력 파트 임원은 “일주일 전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130~150석, 한나라당 115~130석,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10석 내외가 예상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실제 결과가 비슷하게 나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판을 읽기가 어렵지 않았던 까닭에 웬만한 정보력을 갖춘 기업들은 이미 대동소이한 결과를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특히 가장 우려했던 ‘우리당·한나라당 과반수 미달, 민노당 캐스팅 보트 보유’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데 대해 크게 안도하는 눈치다. “어쨌거나 한쪽에 힘이 몰려 있어야 한다. 비슷한 양쪽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그 틈을 민노당이 파고드는 구도가 됐다면 (일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뻔했다”며 노골적 만족을 표시하는 정보맨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민노당의 국회 진출은 정계뿐 아니라 재계에도 엄청난 사건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물론 재벌개혁 등을 외쳐온 시민단체에도 새로운 국면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개혁세력을 표방하는 우리당의 국회 의석 과반수 확보, 민노당의 국회 진출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일단 우리당과 민노당이 내세운 경제 관련 총선 공약의 기조를 살펴보자. 우리당의 경제공약 화두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다. 참여정부 1년 동안 추진해온 경제정책 모토와 일맥상통한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정책 기조에서 크게 바뀔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보수화, 또는 ‘신자유주의화’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가 경제전문가로서 새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우리당 인사들의 면면이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변재일 전 정보통신부 차관, 이계안 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회장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미 당 경제정책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도 재선 고지를 넘었다. 이들은 앞으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나 정무위원회, 당 정책위원회 등에 포진해 우리당의 경제정책을 생산하고 추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야말로 가장 친(親)시장적 정당”이라는 정동영 의장의 말이며, 공약에는 빠져 있으나 대기업 출자총액제 완화 등을 정책 방향으로 잡고 있는 점 또한 예사롭지 않다.



우리-민노당 경제정책 공조 ‘불가근 불가원’

경제 물줄기 급류 타지 않는다

2003년 6월 재벌 그룹 회장단과 오찬 중인 노무현 대통령(위). 2003년 11월 민주노총의 시위 장면.

참여연대의 한 인사는 “참여정부는 대기업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경기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재벌에 기댄 산업정책으로 난국을 타개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헌재 경제부총리 취임 후 기업친화적 정책을 쏟아내놓고 있지 않나. 우리당이 과반수가 됐다 해서, 또 당 내부에 김근태 원내대표 정세균 정책위의장 같은 중도파, 유시민 의원 같은 개혁파가 있다 해서 그 기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 정치자금 수사는 오히려 참여정부와 재벌 사이에 일종의 ‘묵계’를 형성케 한 것으로 보인다. 양자의 안녕을 위해서는 서로를 심하게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재벌의 사보타지가 계속되는 한 외형적 경제 성공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당과 비교할 때 민노당의 정책은 한결 선명하다. 특히 노동자 경영 참여 확대, 출자총액제한제 강화, 산업·금융자본 분리 강화 등 재벌들이 줄기차게 반대해온 규제 정책들을 대거 채택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노당의 뒤에는 민주노총이 있다. 권영길 대표는 3월16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지금껏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를 냈고, 정치권에 거부당했기에 (국회 진출이라는)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 문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우리당뿐 아니라 다른 당과도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 단위라면 몰라도 우리당-민노당 간의 전면적 경제정책 공조는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의 한 당료는 “그렇지 않아도 좌편향이라는 일부의 평가 때문에 곤혹스러운데 민노당과 손잡기가 쉽겠느냐. 거대여당이 독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 공조는 가능하나 큰 줄기에서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가근 불가원’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민노당이 선결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만 해도 우리당은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 물줄기 급류 타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중 경제전문가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 변재일 전 정통부 차관, 이계안 전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회장(위부터).

민노당이 ‘큰 힘’을 쓸 수 없는 이유를 내부적 상황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민노당의 정책 정강을 잘 아는 한 진보적 경제학자는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민노당도 수많은 계파의 연합체다. 권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유럽식 사민주의를 주창하지만 단병호, 심상정 비례대표 당선자 등은 그보다 좀더 강하다. 여기에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빈민운동, 농민운동 세력까지 연합해 있어 정책에 미묘한 불안정성이 도사리고 있다. 재벌정책만 해도 개혁이냐 해체냐 하는 용어 정의조차 완벽하게 이뤄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오히려 자본의 국적성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인해 재벌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갈 위험성조차 없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노당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재벌해체를 재벌개혁의 방편으로 보는 것이 민노당의 관점”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재벌 총수가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 불투명한 경영과 지배구조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소유·경영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는 동시에 초국적 투기자본으로부터 기업을 지키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단기 펀드로 대표되는 투기성 해외자본의 배제야말로 노동자 권익 향상과 더불어 민노당 경제정책의 양대 핵인 셈이다.

이 같은 시각은 경제개혁 세력의 대표로 인식돼온 참여연대의 그것과 미묘한 차이를 나타낸다. 이선근 본부장도 “참여연대의 경제정책은 주주 위주이나 우리는 주주와 노동자를 다 같이 본다. 주주는 노동자만큼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재계는 아직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라면서도 연일 “우려된다,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 뵌다. 여러 이유로 민노당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 짐작하는 때문이다.

“국정책임자로서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당이 민노당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나. 경영 승계 문제는 좀 그렇지만 경영권 안정과 관련한 부분에선 오히려 (재계와 민노당이) 서로 통하는 부분도 없지 않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민노총이 민노당을 통해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이전 같은 극단적이고 과격한 방식의 의사 표현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한다.” 한 4대그룹 임원의 말이다.

그럼에도 재계가 긴장을 완전히 풀 수 없는 건 민노당 의원들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활동과 민노당을 중심으로 각 당의 젊고 진보적인 개혁 세력이 사안별 연대를 이루게 됐을 때의 파괴력 때문이다. 모 그룹 구조조정본부 임원은 “경제 관련 상임위에 포진한 민노당 의원들이 서민 중심의 ‘급진적’ 정책을 입안하고, 여기 각 당 개혁인사들간의 선명성 경쟁이 덧붙여지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전혀 다른 시각의 접근도 있다. 한 통신업체 임원은 “KT처럼 민노총에서 큰 세력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이 경영진과 뜻을 같이할 경우 민노당 의원들을 움직여 경쟁사에 불리한 정책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지 않은가. ‘노조 권력’이 산업적,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40~42)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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