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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진보, 국회 벽을 허물다

초선들의 국회 ‘기대반 우려반’

전체 60% 넘는 187명 당선 … “구태 벗어나 정치판에 활력” “경험부족 증후군 빠질 수도”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초선들의 국회 ‘기대반 우려반’

초선들의 국회 ‘기대반 우려반’

초선 당선은 물론 최연소 여성 의원이된 한나라당 김희정 당선자.

국회의원 선거는 국가를 경영할 인재 충원의 통로다. 총선이 높은 국민적 관심 속에 치러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존 의원을 배척하고 신인에게 표를 주는 것은 국회에 실망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의회 견제행위이다. 선거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은 걸러내고 ‘새 피’를 수혈하는 정치적 ‘사육제’의 결과 4년 간격의 총선이 끝나면 권력 핵심에 있던 구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적지 않은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모습을 나타내는 게 관례였다.

“투명한 선거과정 덕에 눈치 볼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이번 총선만큼 대규모로 정치신인을 배출한 선거도 드물다. 이번에 처음으로 의정단상에 오르게 된 초선 의원은 여야를 합쳐 187명으로 전체 299명 당선자의 62.5%에 이른다. 역대 선거결과 초선 의원 비율은 14대 국회가 39.1%, 15대가 45.8%, 16대가 40.6%였다. 매번 총선이 끝나면 ‘물갈이가 이뤄졌다’느니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했다’느니 하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번 총선처럼 초선 의원 비율이 전체의 60%가 넘는 급속한 세대교체는 없었다. 초선 의원의 수를 정당별로 보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이 108명, 한나라당이 62명,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이 10명이다. 3당 가운데 우리당이 가장 많은 초선 의원을 배출해 명실상부한 ‘초선 중심 정당’이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나라당에서도 초선 그룹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당내 세력으로 자리잡을 듯하다.

그 수에서도 과거 총선 결과를 압도하지만 17대 초선 의원들의 입문 방식도 역대 총선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백원우 당선자(우리당 경기 시흥갑)는 “16대 이전에 입문한 초선 의원의 경우 기존 정당 지도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돼 이들 지도부의 치밀한 배려하에 선거를 치렀다. 그러다 보니 초선 의원 개인의 성향은 개혁적임에도 의정활동에선 구 정치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당의 초선 당선자인 A씨는 총선을 앞둔 3월 개혁성향 선배 의원과의 술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선배 의원은 자신의 선거운동 경험을 얘기하면서 동별로 일당 10만원의 유급 운동원을 몇 명 두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그렇게 준비를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그 선배는 운동원 일당만으로 7억원 가까이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 선거조직 가동 비용이 그 정도라는 것이고 홍보비니 나머지 비용을 합치면 이 선배는 10억원 이상의 돈을 쓴 셈이다. 그런데 그 돈이 어디서 났겠는가. 누군가 뒤를 봐주는 사람에게서 나왔을 것이고 그 배경에는 기업의 비자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선배가 4년 내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구태정치에 침묵하고 지낸 속사정을 알 것 같았다.”

A씨는 “이번 초선은 과거와 달리 지역의 유권자 외에 ‘신세 진 사람’이 없다. 이 점은 과거 초선과 구별되는 17대 초선의 특징이다. 나 역시 그렇다. 누구한테서도 뭉칫돈을 받은 적이 없고 조직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나는 17대 내내 지역구 유권자만 보고 살 것이다. 지역구 유권자들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할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많은 초선 당선자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당선자(한나라당 부산 수영)는 “돈 문제에 관한 한 이번 선거는 투명했다. 내 돈을 썼고 일부 후원금도 받았지만 법정선거비용에도 못 미칠 정도의 돈만 썼다”고 말했다. 그는 “출발부터 구태에서 자유로운 17대 초선들이 분명 국회에서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두 당 초선들의 부푼 기대와 달리 소속 당선자가 전원이 초선인 민노당은 초선의 역할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노회찬 비례대표 당선자는 “초선 의원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초선이 많다는 것 자체가 정치판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기존 정당과 국회 운영시스템이 바뀌지 않고서는 초선의 신선함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부패하는 정치판의 관행을 막기 위해 민노당은 상시적으로 당을 ‘초선 정당’으로 꾸려나갈 작정이다. 노당선자는 “당선 횟수가 많아지고 상임위 경험이 많아지면 자연 부패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민노당은 ‘국회의원 3선 연임 불가제’를 도입해 당내에서 실천하고, 나아가 이를 법제화하는 노력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선들의 국회 ‘기대반 우려반’

민노당은 당선자 전원이 초선인 정당이다. 4월16일 당선 인사를 하는 민노당 당선자들.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재선 이상 당선자 사이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초선 바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물론 초선이 많아 정치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나 초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회 전체가 경험 부족이라는 증후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경험 부족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겠지만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으로 첫발을 내딛는 우리당의 경우 소속 의원의 절대다수가 초선이라는 점은 앞으로 적지 않은 골칫거리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 초선을 중심으로 파병문제 등에 대해 과거 우리당의 당론과 다른 목소리가 우후죽순 튀어나오자 우리당 일각에서는 “17대 출범 전에 초선들의 군기를 바짝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도 “특히 우리당의 경우 검증 안 된 초선이 많은 것 같다. 이들이 다수인 것이 국회 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경계의 빛을 나타냈다.

일부의 우려가 있지만 초선 파워가 돋보이는 17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초선이 ‘호령’하는 17대 국회는 이전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일까.

많은 당선자들은 “당리당략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보스가 신인의 당 공천은 물론 돈과 조직까지 붙여줘가며 도와줬던 과거 선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로를 밟아 국회의원이 된 만큼, 정책에 관한 한 당론과 상관없이 제 목소리를 내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에서 정당생활을 거친 한 초선 당선자는 “과거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도장을 원내총무실에서 보관했다. 당이 결정하면 입법 발의안에 원내총무가 소속 의원들의 도장을 찍고 나중에 이를 통보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관행은 사라질 것이다. 당론도 ‘권고적 당론’일 뿐, 소신에 따른 크로스보팅(교차투표)도 일상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형준 당선자는 “크로스보팅이 일반화되려면 국회가 정책 대결의 장이 돼야 하는데 한나라당의 경우 초선 가운데 정책전문가가 많아 이들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초선이지만 학계나 정계에서 이미 전문성을 인정받은 소장그룹을 중심으로 정책정당으로 가기 위한 나름의 고민과 연구가 있어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주목하는 초선 중심 소장그룹으로는 박근혜 노선을 사실상 창안한 ‘제2창당준비위원회’를 꼽을 수 있다. 박세일 당선자(비례대표)를 비롯해 박형준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이혜훈(서초갑) 등이 그 주역들. 또 이종구(강남갑) 공성진(강남을) 유승민(비례대표) 당선자 등도 당의 신보수 정책을 만들고 이끌어갈 막강 초선 그룹으로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우리당 초선의 경우 시민운동단체, 개혁국민정당, 경제계, 법조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지만 한나라당과 같은 특징을 잡을 만한 초선 의원간의 네트워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재선 이상 정치인과의 인간적 정치적 인연으로 흩어져 있어 아직 세력화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서갑원 이광재 당선자 등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진 출신을 중심으로 ‘연구모임’ 발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초선 국회’. 과연 세대교체 원년의 국회로 새바람을 일으킬지, 아니면 의욕 과잉과 경험 부족으로 또 다른 근심거리가 될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26~28)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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