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1

2004.04.22

老風 맞은 정동영 “죽어야 산다”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4-16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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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막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승부수는 ‘사즉생(死卽生)’이었다. 죽음으로 후일을 도모하는 병법이다. 전광석화처럼 터져나온 정의장의 승부수는 선거대책위원장직과 비례대표 후보 사퇴였다. 이 사퇴는 4월1일 ‘노인 폄하’ 발언 보도에서 비롯됐다. 그는 총선 기간 내내 “60, 70대는 투표 날 집에서 쉬어도 된다”는 발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 발언 후유증으로 당선 안정권에서 멀어진 대구·경북 등 영남권 인사들의 거친 항의가 수시로 의장실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박풍(朴風·박근혜 바람)도 부담스러운데 노풍(老風)은 왜 만들었느냐”는 반발과 항의로 정의장을 더욱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뜨렸다. 선거를 사흘 앞둔 12일 정의장은 결국 떨어지는 지지율과 당내 반발을 견디다 못해 결단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백의종군과 무한책임을 명분으로 한 그의 결단 이면에는 또 다른 정치적 복선과 함의도 엿보인다. 우선 전격 사퇴 뒷면에는 ‘사즉생’의 노림수가 어른거린다. 총선판을 흔든 노풍은 정의장에게 원죄나 다름없다. 이 원죄를 극복하기 위해 정의장은 일단 죽어야 했다. 죽어야 사는 사즉생의 냉정한 논리 앞에 선 정의장에게 다른 수는 의미가 없었다. “노풍이 불기 전 우리당의 예상 의석은 개헌선(200석)”이라고 말하는 개혁파 한 관계자의 지적은 “노풍이 이를 까먹었다”는 힐난인 셈이다. 정의장을 압박해온 요인은 또 있다. 당내 각 계파간의 갈등과 헤게모니 쟁탈전은 이미 총선 전 대승에 들떠 있던 당 주변을 감쌌다. 당내 몇몇 인사들은 이미 총선기간 동안 분당론을 제기하는 등 정의장의 행보를 어렵게 했다. 우리당 주변에서는 며칠 전부터 정의장의 결단설이 나돌았다. 추락하는 지지율을 재고하고 총선 후 부활을 위한 각종 조치 및 이벤트가 흘러다닌 것. 정의장도 “무한책임을 지겠다”며 바람을 잡다가 결국 실행에 옮겼다.

    단식농성에 돌입한 정의장은 홀가분한 몸으로 돌아왔다. 거센 흐름으로 정의장을 압박하던 노풍도 이제 더 이상의 세는 없어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춘 정의장의 처신은 막바지 우리당의 총선 위기감을 고조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총선 후 자신을 부정했던 지역과의 재회 여지도 만들었다. 우리당 내부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전격적으로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던 노무현-정몽준 러브샷과 같은 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반대로 한나라당 선대위 한 관계자는 “이벤트 정치의 백미”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배지’ 없는 정치인의 비애를 정의장이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심사다. 과연 정치인들의 변신은 어디까지가 무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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