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인터넷전화 “맞장 뜨자 유선전화”

저렴한 가격 다양한 서비스 상용화 … 하반기 식별번호 정리 땐 지각변동 예고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3-31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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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전화 “맞장 뜨자 유선전화”
    1999년 12월28일 도하 언론은 1면 머릿기사로 이듬해 1월부터 시내·외 전화는 물론 국제전화까지 무료로 쓸 수 있는 ‘21세기형 통신서비스’가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21세기형 통신서비스’는 새롬기술의 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를 가리킨 것. 당시 전문가들은 2000만명에 이르는 유선전화 가입자 중 상당수가 인터넷전화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이얼패드가 ‘통신혁명’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전화를 개발한 새롬기술은 코스닥시장에서 ‘돈벼락’을 맞았다. 2년 동안 1400만명의 인터넷전화 회원을 확보하면서 새롬기술의 주식은 3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을 넘나들며 ‘코스닥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였다. 가입자 수는 ‘규모의 경제’를 이뤘지만 수익모델 확보에 실패한 까닭이다. 인터넷전화는 결국 소비자들한테서 버림받았고, 다이얼패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다이얼패드의 실패는 불편함 탓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사이트에 접속해야 전화를 걸 수 있었으며 착신은 불가능했던 ‘반쪽 전화’였던 것. KT의 유선전화와는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스러진 인터넷전화의 꿈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더 ‘센놈’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011’ ‘010’ 같은 착신번호를 갖게 되며 전용단말기로 전화를 걸고 받는 이 ‘센놈’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KT 유선전화에 십자포화를 퍼부을 태세다.

    인터넷전화란?

    인터넷전화는 유선전화망 대신 초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해 음성·화상·이동 통화를 구현한다. 초기의 다이얼패드와 달리 착·발신이 모두 가능하며 인터넷망용 전화기를 구입해 이용하면 된다. 소리, 화상이 오가는 망만 다를 뿐 편의성에서 기존 유선전화보다 못할 게 없다는 것. 통화품질은 유선전화보다 아직 조금 떨어지나 이동전화에 비해선 뛰어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인터넷전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유선전화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하나로통신의 한 임원은 “시내, 시외전화의 가격 차이가 없는 데다 사무실과 사업장 간 무료통화는 기본이고, 인터넷상에서 메신저와 음성통화, 화상채팅, 휴대전화 통화도 저렴한 요금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가 관련 규정 정비를 미뤄 활성화가 되지 않았을 뿐 착·발신이 모두 가능한 인터넷전화는 이미 상용화됐다. 하나로통신을 비롯해 군소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하지만 소비자들은 관련 규정이 정비되는 올 하반기쯤에나 대중적인 인터넷전화 상품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인터넷전화 서비스업체 큰사람컴퓨터 강호정 상무는 “세계적 흐름이며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인데 정통부가 미적거리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싸면서도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인터넷전화를 손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KT를 비롯한 사업자들의 이해관계 탓에 정통부가 착신번호 부여,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KT가 인터넷전화 죽인다?

    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는 얼마 전 사무실에 인터넷전화기 3대를 설치했다. 정책을 입안하려면 직접 써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무자들은 인터넷전화가 설치된 날 ‘처음으로’ 인터넷전화를 사용해봤다고 한다.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처음 통화해봤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정책 실무자들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통부가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통부가 뭔가를 내놓을 거라는 기대를 포기한 지 오래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정통부는 법적 지위가 명확치 않은 인터넷전화의 제도화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040’ ‘070’ 등 식별번호 부여 여부 △하나로통신 등 시내전화 사업자의 기존 식별번호 사용 허가 여부 등을 검토만 하고 있는 것. 정통부 관계자는 “올 9월쯤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아직 인터넷전화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어 결과물이 나오는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관련 업체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며 하루빨리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도록 유도해야 할 정통부가,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규제 정비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기업들을 외면하고 있는 꼴이다. “제도가 정비되려면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게 서비스업체와 장비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업계에선 정통부가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KT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전화 “맞장 뜨자 유선전화”

    업그레이드된 인터넷 전화는 착신번호를 부여받으며, 기존 전화기 형태의 전용단말기 사용이 가능하다.

    식별번호 정리로 인터넷전화를 손쉽게 이용하게 되면 KT는 유선전화 사업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KT전화 대신 업그레이드된 인터넷전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KT는 인터넷전화 사업자들이 자사의 망을 사용하게 될 경우 망 이용료를 높게 물리는 등의 방식으로 기존 전화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전화 서비스업체의 한 관계자는 “KT는 인터넷전화의 사용 요금을 높여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 같다”면서 “KT가 인터넷전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것은 IT강국이라는 국가의 전략 목표를 도외시하는 동시에 시대의 흐름, 기술의 흐름을 거스르고 구식 전화사업에 안주하겠다는 자사 이기주의 아니냐”고 반문했다.

    KT와 ‘맞장’ 준비 끝

    정통부의 미적거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전화 사업자들은 활발하게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기존 전화사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하나로통신. 하나로통신의 인터넷전화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업그레이드된 인터넷전화에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나로통신 관계자는 “인터넷전화를 신규 수익 창출 및 음성전화 시장 점유율 제고를 위한 주력사업으로 정했다. 정부가 제도를 정비한다는 전제 아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반전화와 동일한 품질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하나로통신의 시내전화 번호를 그대로 인터넷전화번호로 이용할 수 있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로통신은 플러스전화(초고속인터넷+전화)라는 상품명으로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요금은 시내·시외 전화 구분 없이 전국 단일요금(39원/3분)을 적용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은 올 하반기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며 KT전화와의 정면승부에 나설 계획이다.

    큰사람컴퓨터 애니유저넷 코스모브리지 삼성네트웍스 등의 업체들도 시내·시외 전화의 구분 없이 3분에 39원에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관련 제도가 정비되면 무료 통화 비중도 높아질 전망이다. 정통부의 미적거림을 견디다 못한 이들 사업자들은 정부가 제도 정비를 계속 미루면 인터넷전화 사업자들이 각자 확보한 고객간 연동망을 구축해 독자적으로 사업을 벌이겠다면서 정통부를 압박하고 있다.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KT의 고민

    KT는 이상철 사장 시절 인터넷전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준비했다. 외부업체들과 팀을 꾸려 연구 개발에 나섰던 것. 하지만 이용경 사장 취임 직후 인터넷전화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현재는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준비는 하고 있으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전화가 시장에서 붐을 일으키면 KT의 기존 전화사업이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KT의 주력사업인 유선전화는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수년 내 SK텔레콤에 매출 1위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초고속 인터넷사업이 그럭저럭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 부가사업으로 시작한 신사업들은 사실 ‘푼돈을 버는’ 수준에 불과하다. 시장에서 KT와 KTF의 통합설이 퍼지는 이유도 KT가 이처럼 절박한 사정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세를 넓힐 인터넷전화는 KT 입장에선 ‘계륵’인 셈이다. 마음만 먹으면 KT의 망을 무기로 관련 시장을 석권할 수도 있지만 기존 전화사업의 축소로 인한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전화 사업과 관련해 “목하 고민 중이라고만 써달라”고 했다. 인터넷전화가 가뜩이나 고민 많은 ‘통신공룡’ KT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영수 박사는 “한국의 통신서비스도 전 세계 트렌드에 맞추어 신속히 전환되어야만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고 소비자 효용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전제한 뒤 “KT는 경쟁자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결국 수세적 차원에서 인터넷전화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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