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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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주사위 ‘민주당 구하기’

지지율 회복·30석 이상 확보 무거운 짐…, 잔 다르크 운명이냐 차기 주자 예약이냐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3-31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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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주사위 ‘민주당 구하기’

    추미애의원이 3월 28일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추미애 의원의 민주당 단독 선거대책위원장직 수락은 추의원 자신이나 민주당으로서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탄핵 역풍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민주당이 그나마 생존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추미애 카드 이외에는 대안은 없었다는 얘기다. 추의원이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3월28일 이후 민주당 안에서 잡음이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추위원장 체제의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까. 추위원장 진영의 한 관계자는 “탄핵사태 직전의 민주당 지지율 회복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목표는 추위원장 자신이 정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볼 때 탄핵 이전의 지지율만이라도 회복한다면 대성공이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독 선대위원장직 수락 불가피한 선택

    탄핵 이전에도 한-민 공조라는 어정쩡한 정치적 태도로 민주당 지지는 하락추세였다. 민주당의 노선에 실망한 호남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지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조순형 대표의 탄핵 강공은 이런 쏠림 현상을 막아보자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물론 조대표와 당권파가 주도한 승부수는 역풍을 맞았고 당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탄핵 직전 민주당의 지지율은 8~12%를 맴돌고 있었다. 10% 안팎의 당 지지율은 조대표가 당대표에 선출된 지난 연말 20%를 넘나들던 것에 비해서도 참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3~5%대의 지지를 얻고 있는 지금 상황과 비교한다면 탄핵 직전은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추위원장이 ‘각고의 노력’으로 평균 10%의 지지를 회복한다면 비례대표를 포함해 30석 정도를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 정도면 교섭단체 구성마저 못해 민주당 간판을 내려야 하는 극단적 상황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30석 확보를 위해 호남에서의 회복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5곳 이상에서 승리를 거둬야만 한다는 게 추위원장측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추위원장 자신이 출마하는 서울 광진을을 비롯해 김성순 의원의 서울 송파병, 김영환 의원이 나서는 경기 안산 상록갑, 심재권 의원의 서울 강동을, 그리고 임창열 전 경기지사가 나서는 경기 오산 등이 추위원장측에서 접전을 펼쳐볼 만한 곳으로 꼽는 선거구들이다.

    만약 호남 일부를 챙기고 수도권에서도 5곳 이상 당선자를 낸다면 추위원장의 도전은 일단 성공이라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 지지도를 탄핵 이전으로 끌어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

    정서적으로도 민주당을 떠나간 지지자를 되돌리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나라당 지지를 철회한 유권자와 달리 민주당을 떠나간 과거 지지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여진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은 탄핵사태로 당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탄핵사태로 민주당이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위원장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탄핵을 주도한 조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공천권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 과정을 거쳐 당의 정체성을 바로잡지 않고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당권파와의 막판 절충과정에서 추위원장은 당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대의명분 달성을 위한 권한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주사위 ‘민주당 구하기’

    민주당 당직자들도 조순형 대표 퇴진을 요구하면서 추미애 의원을 응원했다. 3월26일 민주당사 1층 로비에서 농성중인 당직자들.

    3월28일 기자회견에서 추위원장은 “탄핵 추진은 민주당 후보 전체의 총의나 전당대회를 개최해 전체의사를 묻고 결정한 것 아니었다. 지도부의 책임이고 후보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탄핵 철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조대표와 당권파의 정서와 달리 탄핵에 대해 사실상 대국민사과를 한 것도 당권파와의 권한 위임에 대한 절충의 결과였다.

    또 선대위 구성에서 “방향성을 실종시킨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나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민주당의 개혁성을 복원하고 햇볕정책을 계승해 ‘6ㆍ15’ 정신을 실천하는 적자정당에 걸맞도록 제가 발로 뛰어 그런 분들 모시겠다”고 한 것도 정체성 회복을 위한 뒤늦은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추위원장측은 “이런 각오로 뛰고 있지만, 솔직히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떠나간 민주당 지지자들을 확 끌어당길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탄핵과정에서 추위원장이 보여줬던 처신도 이런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3월26일 추위원장이 조대표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승희 대변인은 “탄핵발의안 작성에 열성적으로 임했던 추위원장이 이제 와서 탄핵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추위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조대표 부인 김금지씨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탄핵 의결 전 추위원장은 방송에까지 나가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탄핵을 주도한 조대표는 정작 그런 식으로 방송에 나와 말하지는 않았다”며 추위원장의 처신을 문제 삼았다.

    탄핵에 관한 한 추위원장도 원죄를 안고 있는 이상 그가 주장하는 ‘정체성 회복론’이 민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의 심정적 동의까지 얻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추위원장 체제의 출범은, 그 자체로 달리 해볼 도리가 없는 민주당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추위원장 체제 출범 직후 기자실을 찾은 장성민 전 의원은 “동교동계 의원이 추위원장에게 무게를 실었고, 동교동 비서 출신 의원들과 ‘DJ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연청까지 추위원장을 지지한 것이 당권파의 강경 입장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당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모두가 ‘이심전심’ 동의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인식이 당권을 장악하면서 추위원장이 받아 든 밑천의 전부인 셈이다.

    추위원장 등장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더 이상 낮아지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가 얼마나 반등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박근혜 대표체제 등장 이후 한나라당이 즉각 대구ㆍ경북(TK) 지역에서 지지율 반등을 이뤄낸 것처럼 민주당도 피부에 와닿는 지지율 반등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는 탄핵 이후 한동안 중립지역에 있다가 되돌아온 TK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달리 호남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대안을 찾아 우리당 지지로 옮겨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위원장의 별명은 ‘추다르크’다. 위기에 처한 조국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소녀의 몸으로 무기를 들었던 잔다르크를 빗댄 말이다. 잔다르크는 조국은 구했지만 그 자신은 영국군의 포로가 돼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면 ‘민주당 구하기’에 나선 추다르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다르크 역시 잔다르크 같은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총선 결과 탄핵 이전 지지율 회복과 30석 이상의 의석을 얻어낸다면 일단 추위원장의 민주당 구하기는 대성공이라는 평을 들을 만하다. 하지만 단독 선대위원장이 되기까지 당내 세력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은 결과 추위원장을 보는 주요 계파 리더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기가 센 중진들이 호락호락 추위원장에게 민주당을 통째로 안겨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추위원장의 앞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물론 총선에서 성과를 거두고 이후 이어질 당내 도전마저 잠재운다면 추위원장은 일약 차기 주자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독 선대위원장 취임은 추위원장에겐 정치생명을 건 대도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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