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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변신하는 ‘카리스마의 여왕’ 엄정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날마다 변신하는 ‘카리스마의 여왕’ 엄정화

날마다 변신하는 ‘카리스마의 여왕’ 엄정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92년, 당시 최진실의 매니저이자 연예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고 배병수씨가 엄정화를 “최진실을 이을 스타”라고 소개했을 때 그의 말을 의례적 PR 이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최진실은 지금 ‘효리’나 ‘비’와 비교할 수 없는 ‘국민’ 스타였고, 불과 세 살 어린 엄정화는 커다란 눈망울에 볼살이 빠지지 않아 너무 순진해 보이기만 하는 가수 지망생이었기 때문이다.

엄정화가 1집 앨범 ‘눈동자’를 히트시켰을 때도 그녀는 그저 운 좋게 데뷔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같은 해 영화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감독 유하)가 실패하는 바람에 빛이 바랜 탓도 있었다.

이후 엄정화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1998년 4집 ‘포이즌’을 히트시키던 무렵, 그녀는 누구보다 빨리 노래보다 ‘비주얼’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6집 ‘퀸 오브 카리스마’가 상징하듯 가장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가수가 되었다. 덕분에 그녀는 선·후배 여가수들과 경쟁하여 대한민국 영상대상과 음악전문 케이블에서 수여하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방송 3사에서 수여하는 10대 가수상 시상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노래·연기 넘나들며 10년 넘게 인기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에 출연함으로써 엄정화는 그녀의 바이오그래피에 새로운 장을 추가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최진실의 주가는 급락했다. 10년 만에 엄정화를 다시 스크린으로 부른 유하 감독은 “투자자를 모을 만한 여배우 중에서 영화가 요구하는 노출 신의 수위를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마침 감우성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메디컬센터’를 보고 그녀를 떠올렸다. 사실 ‘바람부는 날…’이 실패했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했고…. 가수를 쓴다고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었다. 머리도 좋고 연기력도 있는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엄정화가 ‘결혼은, 미친짓이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여배우 기근 현상’을 우려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영화평론가들은 시사회가 끝난 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엄정화는 ‘확실한 베팅’으로 의사 남편을 선택하고 결혼 후 가난한 대학강사와 연애를 계속하는 연희 역을 맡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선명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연희는 ‘불륜’ 유부녀였지만 그전의 여자 주인공들처럼 갈등하지도, 칙칙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출근한 뒤 매일 대학강사의 옥탑방으로 ‘출근’하면서 ‘남보다 좀 바쁠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워서, 그렇다면 결혼이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평론가들은 앞다퉈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여자 주인공과 영화의 현실을 분석했고, 특히 페미니즘 진영의 평론가들은 엄정화라는 배우가 보여준 신성모독적이랄까, 혹은 발칙해 보이는 연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놓고 엄정화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보기에 그녀는 여전히 너무나 섹시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엄정화는 다음 작품으로 남편 대신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29살 싱글족의 삶을 그린 ‘싱글즈’란 영화를 선택했다. 기자들과 팬들은 그녀가 새로운 전략을 가진 ‘팜므 파탈’인지 또는 ‘아마조네스’인지를 물었다. 엄정화는 “‘싱글즈’의 주인공처럼 남자친구와 동거할 수 있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몇 차례 구설에 오른 뒤 “영화 주인공 입장에서 말한 것을 거두절미하고 내 인생으로 보도해 참 곤란하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새 영화 ‘홍반장’을 찍으며 “즉흥적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야’라는 대사를 집어넣었다”고 고백했다. 엄정화의 결혼관, 그리고 ‘결혼은, 미친짓이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날마다 변신하는 ‘카리스마의 여왕’ 엄정화

로맨틱 영화 ‘홍반장’에서 귀여운 이미지로 나오는 엄정화.

2004년 엄정화는 새 영화 ‘홍반장’과 새 음반 ‘셀프 콘트롤’을 동시에 내놓았다. ‘홍반장’의 주인공은 타이틀 롤인 남자주인공 김주혁이지만, 엄정화는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남자로 인해 기뻐하고, 낙담하고, 초조해하고, 행복해하는 다양한 피드백으로 영화의 톤을 만들어간다.

‘홍반장’이 ‘싱글즈’를 이어간 듯 보인다면 ‘셀프 콘트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더 밀고 간 듯한 작품이다. 달랑 음반 한 장을 낸 가수들이 대부분인 연예계에서 무려 8번째(!)가 된 ‘셀프 콘트롤’은 ‘셀프’와 ‘콘트롤’의 더블 음반이다. ‘셀프’에서 엄정화는 전혀 대중적인 가수가 아니다. 단조로운 라운지뮤직, 일렉트로니카의 비타협적인 음반을 만들기 위해 엄정화는 인디 진영에서 활동하는 정재형, 달파란 등을 직접 수소문해 다니며 이들과 ‘담판’을 지었다. ‘콘트롤’은 말 그대로 ‘에고(ego)’를 ‘콘트롤’한 곡들인데, 그동안 그녀에게 수많은 히트곡을 안겨다 준 주영훈의 감각이 드러난다. 엄정화는 개인적으로 ‘셀프’에 애정을 보이고 있고 이미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음반사에서는 TV에서 ‘셀프’를 밀 것인지, 쉬운 ‘콘트롤’을 밀 것인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더 이상 엄정화는 ‘군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 ‘대중적인 노선을 잘 찾아온 댄스 가수’로 불리지 않는다. 2004년 그녀는 ‘연기와 노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유일한 엔터테이너’, 여성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한국의 마돈나’이다.

엄정화는 잘 만들어진 기획상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정화란 상품을 기획하고 빈틈없이 연출한 사람도 엄정화, 그녀였다. 철이 들고 시골에서 상경해 아버지 대신 가장으로 살아온 책임감, 성공하기 위해 꼭 그만큼이 필요했던 자기 희생, 예명 대신 ‘엄정화’란 소박한 이름을 고수한 자존심, 트렌드에 대한 동물적 감각과 웬만한 남자들도 나가떨어지는 주량.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카리스마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엄정화처럼 ‘스스로 빛나는 별’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 그것이 그녀를 짝사랑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다.







주간동아 425호 (p72~7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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