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2004.03.11

‘조·추’ 응급조치로 추락 멈출까

민주당, 지지율 바닥 선거 코앞 위기 고조 … 공동 선대위 구성(?) 갈등 봉합 시도할 듯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3-04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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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추’ 응급조치로 추락 멈출까

    2월29일 상임중앙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조순형 대표(왼쪽)와 추미애 의원. 갈등 봉합에도 불구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입니다. 다 죽게 생겼는데 정통모임이니 소장파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을 살리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언론도 제발 도와주세요.”

    2월28일 민주당 설훈 의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는 “조순형 대표가 서울을 떠나 대구에 출마하겠다고 했던 그 자세를 나머지 지도부도 보여줘야 한다. 지도부 스스로 살신성인하겠다는 자세가 돼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부로 정균환 박상천 의원 등 정통모임을 이끌었던 중진들을 가리키느냐는 질문에 설의원은 “내 입으로 딱히 누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며 “하지만 서울 호남 할 것 없이 민주당 구성원 모두의 밥그릇이 깨질 상황에서 누구라도 기득권을 고집할 처지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2월19일 추미애 의원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민주당 내분 사태는 소장파가 가세하면서 당내 세력간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당초 추의원과 장성민 청년위원장이 문제 제기를 했을 때만 해도 민주당 주류의 비난 화살은 이들에게 집중됐다. 추의원에게 우호적인 인사조차 그의 발언이 지나쳤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소장파가 당 개혁과 공천혁명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추다르크’만의 전쟁이 아니라 그의 비판에 공감하는 당내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주당 개혁론은 힘을 받았다.



    2월28일 저녁 조대표와 추의원은 시내모처에서 만나 2시간 30분간 총선대책과 당 개혁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29일에는 추의원 등이 요구한 공천 자격조건 강화 등 선거대책을 조대표가 수용하는 조건으로 상임중앙위에 참석함으로써 당무에도 복귀했다. 이로써 민주당 사태는 주류와 소장파 간의 정면충돌을 피한 채 봉합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갈등의 두 당사자가 대화의 문을 연 데에는 소장파로 불리는 민주당 개혁파의 행동이 결정적이었다. 한 관계자는 “추의원 홀로 당과 맞서다가 이들이 분명한 세력으로서 몸집을 드러내면서 당내 여론도 달라졌고 조대표도 더 이상 이들의 변화 요구를 거절할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조·추’ 응급조치로 추락 멈출까

    설훈 의원은 민주당의 상황이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말했다.

    이번에 그 실체를 드러냈지만 당의 체질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당 소장파 모임은 오래 전부터 세를 모으고 나름의 활동을 해왔다. 모임의 한 관계자는 “한 달 전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미 한 차례 모임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당 개혁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내친김에 소장파는 조대표를 만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장파의 움직임에도 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설훈 의원은 “한 달 전 우리는 분명히 조대표에게 당 개혁방안에 대한 소장파의 요구가 담긴 문건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나 물어보니 조대표는 그 문건을 못 봤다고 하더라. 실무자 누군가 그 문건을 분실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설의원은 해프닝이라고 했지만, 만약 한 달 전 조대표가 소장파의 요구안을 분실하지 않고 꼼꼼히 챙겨보고 소장파의 요구대로 당을 정비했다면 지금 같은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대부분 민주당 인사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기에는 조대표를 중심으로 한 견고한 당 주류의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는 민주당 분란의 원인은 10% 전후를 오르내리는 민주당 지지율이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서울에서 당선을 기대해볼 만한 곳은 추의원의 광진을과 조대표가 떠난 강북을 정도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이대로라면 현재의 60석은커녕 교섭단체도 어렵다는 비관적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두고 해석은 정반대다. 소장파는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석방동의안 통과에서 보여준 한나라당과 공조, 즉 ‘한ㆍ민공조’가 당의 정체성에 혼돈을 주고 지지자 이탈을 불러온 결정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한ㆍ민공조를 파기하고 열린우리당과 개혁경쟁을 벌이는 것이 당이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재선의원도 “열린우리당과 개혁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나라당의 부패상과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을 함께 비판하는 전략을 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보는 시각 차이가 있지만 소장파 대부분은 “한ㆍ민공조 탓에 당의 지지율이 하락했고, 이런 당의 노선을 주도한 인물들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총선 이후 결별’ 성급한 전망도

    그렇다고 소장파가 견고한 내부 결속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성준 설훈 함승희 정범구 박병윤 김성순 이희규 송훈석 조한천 박금자 안상현 의원처럼 수도권, 또는 중부권 출신 의원들의 처지는 절박하다. 지금 이대로 총선을 치른다면 누구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함께 당 개혁을 요구했지만 배기운 김효석 정철기 전갑길 의원 같은 호남 출신 소장파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이처럼 서로의 처지가 다른 까닭에 개혁 요구의 수위도 편차를 드러낸다. 한 관계자는 “추의원을 당의 얼굴로 해서 선거를 치르자는 의견에 대해 소장파 전체가 의견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소장파 내부에서도 추의원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이 있다”며 “이런 느슨한 연대 때문에 소장파의 단체행동이 더 큰 파괴력을 갖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아무튼 ‘소장파의 반란’으로 민주당 구성원 사이에 적어도 변해야 산다는 공감대는 마련됐다는 평이다. 하지만 소장파의 바람대로 당이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건의 두 당사자인 조대표와 추의원이 한목소리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는 했지만 응어리마저 푼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월 말 같은 분란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장파 모임의 한 관계자는 “양측이 사생결단으로 맞붙기에는 시간도 없고 대안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조순형 추미애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동선대위 구성에 합의하는 수준에서 갈등이 봉합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소장파 의원들도 지역구를 누비느라 당 개혁이라는 중앙당 차원의 논의를 짊어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바로 여기에 민주당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문제는 있지만 해결할 주체도 능력도 시간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가 지금의 민주당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경우 총선 뒤 민주당은 분당, 또는 해체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현재 민주당 안팎에서는 총선 후 진로와 관련해 두 가지 상반된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하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전제로 한나라당과 보수대연합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약진하든 패배하든 우리당과 재통합을 하는 것이다. 전자는 정통모임과 후단협 출신 일부 중진들 사이에 논의되는 정계개편 방안이고, 후자는 소장파 사이에서 지지를 얻는 방안이다. 이처럼 총선 이후 당의 진로가 극과 극으로 나뉘자 당 일각에서는 “총선이 끝나면 소장파와 정통모임, 후단협의 결별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4월15일은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이다. 하지만 민주당 주변에선 4월15일이 ‘민주당 해체’라는 시한폭탄이 터지는 날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높아가고 있다. 과연 총선은 민주당에 어떤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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