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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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최틀러 “반격 개시”

올인 전략으로 정면돌파 시도할 듯 … 당내에서도 “너무 늦은 결단” 효과는 의문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2-19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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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최틀러 “반격 개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가 책사 ‘윤여준’ 의원을 찾기 시작한 시점은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단일 후보로 추대된 직후인 2002년 12월 초. 당시 정형근 의원이 폭로한 국가정보원 도ㆍ감청 자료가 엄청난 역풍을 몰고 왔지만 믿었던 당 전략가들은 허둥대기만 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때였다. 보다못한 이후보가 “윤여준은 어디 있느냐”며 그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했고, “위기 있는 곳에 윤여준 있다”는 ‘한나라당 진리’에 따라 그는 이후보 앞에 섰다. 당 선거전략실을 차례로 순방, 자료와 정보를 검토한 윤의원은 12월10일경 “수(手)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명언을 남기고 사실상 책사로서의 역할을 그만뒀다. 그의 활동 중단은 대선 패배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석됐다.

    불법 대선자금과 당 공천 내분 등으로 좌초 위기에 직면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그런 윤의원을 찾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2월12일 오후. 홍사덕 원내총무와 박진 대변인이 당직을 사퇴하며 “당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최병렬 책임론을 제기한 직후였다. 위기를 느낀 최대표가 그를 불러 난국돌파와 관련 혜안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윤의원은 최대표의 ‘SOS’에 다소 냉정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출마 선언을 통해 최대표가 먼저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당 개혁을 훨씬 강도 높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표 2선 후퇴 극약처방론도 제기

    최대표의 2선 후퇴란 윤의원의 극약처방전은 최대표와 이너서클에 적잖은 당혹감을 안긴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파 한 인사는 “평소 윤의원은 우리와 같은 해법을 거론했다”고 말했다. “최대표가 윤의원을 찾았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윤의원은 한꺼번에 수십명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 등 무리를 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윤의원이 제갈공명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여건임을 말해준다.



    한나라당 사태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최대표는 17일 대표권한을 강화해 대선 불법자금 문제와 공천내분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기선대위 출범, 개혁공천 가속, 제2창당 프로그램 마련 등이 정면 돌파의 수단들. 한 관계자는 소장파의 반발 가능성에 대해 “모두를 안고 갈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대표는 전국구 후순위에 배수진을 칠 계획이다. 그는 “전쟁은 시작됐고, 전장터는 오직 명령과 복종만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장파는 이들의 정국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대표에게 정반대의 길을 주문한다.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 두 진영은 이번 싸움이 총선 판도는 물론 당의 내분 및 분열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 따라 모든 화력을 집중,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파워게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최틀러 “반격 개시”

    미래연대 주최로 2월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진로 관련 토론회에서 외부 초청 연사들은 한나라당의 수구 이미지 탈피를 강력히 주문했다(위). 2월13일 한나라당 김형태 포항 공천신청자 지지자들이 재심을 요구하며 대표실로 몰려들자 당직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

    문제는 최대표의 지도력이다. 누구도 그의 카리스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지도부의 방침에 반기와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이제 한나라당의 일상사다. 이런 아랫사람들의 반발에 최대표와 측근들은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다. “3김식 권위주의 정치를 지양한다”는 명분을 걸지만 국민들은 무질서로 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김정숙 의원은 2월13일 “이렇게 무책임하게 정치하는 남성들 처음 본다”며 한나라당 ‘남자’들을 성토했다. 홍사덕 원내총무가 탁자를 치는 거친 행동으로 ‘남성성’을 지키려 했지만 눈길을 준 사람은 없었다.

    분구 예상지역인 서울 노원구 출마를 노리는 미래연대 공동대표 권영진씨는 얼마 전까지 최대표의 ‘브레인’으로 통했다. 그런 그가 최근 지역을 돌면서 수집한 민심을 토대로 최대표에게 ‘독한’ 말을 했다. “(최대표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당과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는 ‘사즉생(死卽生)’이었다. 이 말을 들은 최대표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제 더 이상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

    권씨는 최대표의 위기감지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닥에 깔린 민심의 실체를 당지도부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 한 관계자는 “지지율이 한꺼번에 폭락하지 않고 조금씩 추락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꺼번에 곤두박질치면 위기감이 발동, 대응수단을 내겠지만 시나브로 민심이 이탈하니 긴장감이 덜하다는 것.

    대변인을 지냈던 박진 의원은 얼마 전 최대표에게 ‘총선 불출마’를 요청했다. 그러나 최대표는 이 말을 흘려들었다. 2월13일 중진의 K의원이 또다시 최대표에게 같은 건의를 했다. 이에 대해 최대표는 “나의 불출마 선언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당내에서는 이미 최대표의 불출마 등을 통한 정국반전은 효과가 반감됐다고 본다. 정치는 감동인데, 감동을 주기에는 이미 설왕설래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위기는 지난해 11월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지도부는 너무 여유를 부렸다. 최대표 진영은 비자금 문제가 터지자 ‘이회창 밟고 가기’란 단순한 전략으로 일관했고 공천개혁을 명분으로 친위세력을 포진시키는 악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즉각 사천(私薦)이란 지적이 터져나왔지만 최대표와 측근들은 개혁공천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대표의 지도력 부재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몇몇 이너서클에서 출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이방호 의원, 임태희 비서실장 등이 이너서클로 지목되는 인물들. 이들은 최근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조기선대위 출범, 개혁공천 가속, 제2창당 프로그램 마련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위기는 분명하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 근거를 숨어 있는 한나라당 지지표에서 찾는다. 그는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지만 8%를 전후한 한나라당 지지표심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이 워낙 ‘개판’을 쳐 이들이 물밑에 숨어 있지만 당이 정상화되면 돌아올 것이라는 게 이 인사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소장파 한 인사는 “원내1당은 고사하고 100석도 어려운 표밭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이 인사는 “지난 대선 때 숨은 표 운운한 그 사람들이 또 같은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여준 의원 등 당내 흐름을 꿰뚫고 있는 인사들은 최대표가 지도력을 회복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차세대론과 인큐베이터론’으로 무장했던 지난해 6월의 최병렬이 필요하다는 것. 당시 대표경선에 나섰던 최대표는 “정권창출을 위해 인큐베이터가 되겠다”고 말해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대표가 됐다. 이후 최대표는 상황에 따라 욕심을 내는 흔적들을 곳곳에서 노출해왔다.

    사실 현재 한나라당 내 차기 대선주자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불임정당’에 관심을 가질 국민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1월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이어 넘버 ‘3’에 불과했다. 그런 우리당이 차세대 주자 ‘정동영’ 카드를 꺼내든 뒤 달라졌다. 당 지지도가 급상승, 지금은 한나라당을 넉넉하게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늙은 보수(최병렬) 대신 젊은 비전(정동영)을 선택한 것.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명박-손학규-박근혜-강재섭 등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이들이 움직일 공간은 매우 좁다. 봉합과 와해, 과연 한나라당은 어느 길로 접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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