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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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끓는 실종자 가족

지난해 6만3834건 실종 신고 … “제발, 살아만 다오” 피눈물 흘리며 가족 찾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2-19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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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끓는 실종자 가족
    ”현정아, 사랑한다.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도 현정이를 사랑하고 아낀단다. 날이면 날마다 네가 밥은 먹었을까, 잠바도 안 입고 나갔는데 이 추위에 얼어죽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만 하고 있어. 현정아, 살아만 있어라. 엄마가 어떻게든 널 찾을 거니까. 엄마는 현정이가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리고 있을 거야. 현정아, 사랑해.”

    2003년 10월25일 경기 평택시에서 실종된 장현정양(당시 7세)의 어머니 김정숙씨는 현정이가 생각날 때마다 혼자 편지를 쓴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적어가다 보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지낸 날이 벌써 4개월째. 그러나 현정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부천과 포천에서 실종자들이 잇따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사라진 사람들’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경찰청에 접수된 실종신고는 모두 6만3834건. 하지만 이 가운데 수사가 진행된 사건은 235건에 불과하다. 매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경찰은 이들 대부분을 가출자로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가출한 줄 알았던 이들이 실은 범죄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잠재적 실종자의 가족’일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는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껏 이 문제를 방치해온 수사기관에 강한 불만을 터뜨린다.

    대부분 가출 처리 235건만 수사 진행

    김씨도 현정이가 실종되기 며칠 전의 일을 잊지 못한다.



    “같이 시장에 가자고 했더니, 현정이가 ‘엄마, 나 먼저 나가 있을게’ 하고 뛰어나가더라고요. 한 5분쯤 후 따라나섰는데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고 있는 거예요. 웬 남자가 현정이 손목을 잡아 끌고 있었고요. ‘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황급히 달아나더군요. 현정이는 ‘그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 했다’면서 계속 울고요.”

    불안한 예감을 느낀 김씨는 그 후 한시도 현정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등ㆍ하교를 같이 한 것은 물론이고 친구와 노는 것도 주의를 시켰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잠시 눈을 뗀 사이 현정이는 바로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집에 올라간다’며 친구와 헤어진 후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 얼굴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해요. 168cm 정도의 키에 통통한 체구를 한 남자였죠. 엄마가 범인을 마주치고도 아이를 잃었으니….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 남자가 아이를 데려갔다고 생각한 김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그 사람의 몽타주도 그리지 않고 ‘단순 가출’로 처리해버렸다. 아이를 납치했다면 협박전화가 와야 하는데 아무 조짐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끓는 실종자 가족

    2003년 10월 아파트 단지 안 엘리베이터 앞에서 실종된 장현정양. 당시의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장양의 어머니는 “딸만 살아 돌아온다면 모든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며 범인에게 딸을 돌려 보내줄 것을 호소했다.

    “신고를 접수하면서 경찰은 ‘집 주소를 외울 만한 나이니 오고 싶으면 돌아오지 않겠느냐. 집에서 기다려라’라고 말하더군요.”

    경찰의 무관심 앞에 김씨는 졸지에 아이가 집을 나가게 만든 문제 가정의 엄마, 제 아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인이 되어버렸다. 현정이를 잃은 충격과 죄책감에 정신을 잃은 그는 그날 손목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직도 후유증은 그를 괴롭힌다. 현정이를 찾는 전단지를 돌리러 나갔다가 쓰러져 입원하고, 퇴원하면 다시 거리로 나가는 게 요즘 김씨의 일상이다.

    “경찰이 나서지 않는다면 엄마가 직접 찾아야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이었던 우리 현정이를 찾을 때까지는 죽지도 못할 것 같아요.”

    사건 발생 후 넉 달이 흐른 2월19일 비로소 경찰이 집 근처를 수색하는 등 수사를 시작했지만, 김씨는 아직 이들을 믿지 못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부분 김씨처럼 경찰과 관련된 가슴 아픈 기억들을 갖고 있다.

    ‘전국 미아ㆍ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지금까지 경찰은 8세를 기준으로 삼아 그보다 어린 아이가 사라지면 미아, 그 이상은 무조건 가출로 처리해왔다. 어느 경우든 경찰이 할 일은 없는 거 아니냐. 협박전화가 오면 그제야 비로소 ‘사건’으로 접수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실종자가 정신장애인이라 해도 이 기준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남 마산의 박인숙씨는 2001년 1월29일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아들 김도연군(당시 17세)을 잃어버렸다. 사회적응 훈련을 보냈는데 보호교사가 실수로 아이를 놓친 것. 그러나 이 역시 경찰의 눈에는 ‘가출’이었다. 박씨는 집 주소는 물론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도연이가 가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연고가 없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자는 지방자치단체장. 이들을 병원에 입원시키면 병원비는 지자체 예산에서 나간다. 시설로서는 이들을 많이 데리고 있을수록 더 많은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정신장애인을 훔쳐다가 이들 시설에 머릿수대로 돈을 받고 파는 범죄조직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경찰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사진을 공개해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를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다.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끓는 실종자 가족

    정은식씨와 실종된 아내 이인선씨의 단란했던 시절 모습. 아내가 사라진 뒤 3년이 흘렀지만 정씨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3년간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의 시설을 돌아다닌 박씨는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 말이 ‘일정 인원수를 채워야 시설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이 있다 한들 이곳에서 알려줄 리 없다’더라”며 “내 아이가 물건처럼 돈에 팔려 감금돼 있는 것을 어느 부모가 참고 견딜 수 있겠느냐”고 절규했다.

    1987년 정신지체장애인 언니 성은희씨(당시 18세)를 잃어버린 숙희씨도 16년째 전국을 뒤지고 있다. 그가 돌리는 전단지에는 “은희야! 은희야! 보고 싶어 눈물난다. 엄마한테 전화해라. 엄마 찾아오너라” “은희 만나게 해주시면 2000만원 드립니다” 등 가슴 절절한 문구가 가득 차 있다. 당시 단발머리 여고생이었던 은희씨는 살아 있다면 이미 35세의 중년이 됐을 나이. 그러나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그는 여전히 애틋하고 그리운 가족일 뿐이다.

    최근 실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찰은 정신병원 등 시설에 대한 일제 단속을 실시해 불과 열흘 만에 19명의 실종자를 발견했다. 길게는 7년 이상 ‘무연고 행려환자’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던 이들이다.

    이 같은 경찰의 무대응에 지친 가족들은 직접 ‘수사’에 나서기까지 한다.

    2001년 3월24일 실종된 아내 이인선씨(당시 45세)를 기다리고 있는 정은식씨(57)는 “기도원에 다녀온다”며 차를 몰고 나간 후 행방이 묘연해진 아내를 찾기 위해 자비로 잠수부를 동원, 북한강 바닥을 네 번이나 훑었다.

    “실종 당일에도 아내와 세 번 통화를 했을 정도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경찰은 무조건 가출이라는 겁니다. 바로 차적을 조회해 범죄에 희생된 건 아닌지 확인만 해줬더라도 이렇게 한이 남지는 않을 거예요.”

    정씨는 ‘민원사건 처리결과 통지’라고 쓰여진 2001년 6월28일자 공문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귀하께서 진정하신 내용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진전 없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단 내사 중지했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딱딱한 설명. 정씨가 사건을 신고한 후 불과 석 달 만에 수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문서다.

    “성인 가출은 수사를 안 한다기에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어요. 그제야 경찰서에서 수사 들어간다는 전화가 오더군요. 하지만 해준 일이라고는 통화 내역 추적하고 ‘수사에 진전이 없다’는 공문을 보낸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씨 부부는 1979년 결혼 후 목소리를 높여 싸운 적이 단 한 번뿐이었다고 정씨가 기억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씨가 사라진 것은 입대한 외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올 무렵. 부인이 범죄에 희생됐거나 사고를 당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부인과 단란했던 시절의 사진들을 꺼내 보이며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 속에서 아내와 아들을 양팔에 끌어안은 채 웃고 있는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중년 남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부인 없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홀로 강남의 한 보습학원에 기거하며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끓는 실종자 가족

    납치·실종 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은 뒤늦게 ‘미아·실종자 찾기’ 전담팀 구성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아내가 타고 나간 차는 ‘경기 54다 4671’ 은색 소나타 2 차량입니다. 누가 이 차만이라도 찾아준다면, 정말 내게 있는 돈을 다 드릴 겁니다.”

    2000년 4월4일 딸 최준원양(당시 6세)을 잃은 최용진씨도 그새 모은 수사기록만 대학노트 5~6권 분량인 ‘수사 전문가’가 되었다.

    “지방에서 제보전화가 왔다고 경찰에 신고하면 ‘그거 장난입니다’ 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예요. 제가 직접 내려가서 찾아보면 우리 준원이와 꼭 닮은 아이가 살고 있는데 말이죠. 제보하는 이들은 다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하는데 경찰은 왜 그걸 무시합니까.”

    이에 대해 경찰은 한해 수만건씩 접수되는 실종사건을 모두 수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특히 며칠 후 실종자가 집에 돌아올 가능성이 많은 사건에 경찰이 매달리다 보면 다른 강력사건에 소홀해져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2년 5월28일 충북 진천에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강송이양을 잃어버린 아버지 강동원씨는 “경찰이라면 사건을 접수하면서 정황을 파악해 범죄인지 단순 가출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집 근처에서 사라진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의 경우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범죄에 희생된다는 거죠. 주위에서 낯선 사람을 보았다는 등의 정황증거가 있는데도 집주소를 외운다는 이유만으로 ‘가출’이라고 하는 것은 남은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닙니까.”

    이런 현실에서 결국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경찰과 함께 정부와 일반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 미아ㆍ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정당 유인물 뒤에 38명의 실종 어린이 사진을 실었는데 그 가운데 4명이 가족을 찾았다. 부모가 전단지를 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높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라며 “정부는 각종 간행물에 실종자 사진을 싣고 시민들은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잠재적 실종자를 줄이고 소중한 가족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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