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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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짱’ 강우석 감독이 사는 법

‘1등 파워맨’ & ‘과욕의 승부’ 엇갈린 평가 … 타고난 열정과 끼 전환기 한국영화사 주인공

  • 김영진/ 영화평론가 hawks1965@hanmail.net

    입력2004-02-12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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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행짱’ 강우석 감독이 사는 법

    강우석 감독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이며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의 수장인 강우석에게는 늘 ‘1등 파워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파워 1위에서 밀려나면 영화계를 떠나겠다”는 식의 패권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는 1960년대의 신상옥 감독에 버금갈 만한 권세를 누리며 21세기 초 한국영화 산업의 전체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십수년 동안 그 자신이 흥행 감독의 자리에서 한 번도 밀려나지 않은 괴력의 소유자다.

    강우석은 두주불사할 만큼 말술을 마시며 많은 비즈니스를 술자리에서 처리하지만 누구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하는 부지런한 사업가다. 그의 밑에서 조감독을 한 어느 영화감독의 얘기로는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다 귀가해 두 시간 뒤 영화 현장에 나타나도 끄떡하지 않는 그의 체력은 불가사의 그 자체라는 것이다. 주산 10단의 암산왕 출신인 그의 총기도 다른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이것저것 재며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가고 해결책도 늘 명쾌하다. 그가 보이는 패권주의적 행동에 관해 반감을 갖고 있던 이도 그를 실제로 만나면 매력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투캅스’의 감독답게 그는 적어도 5분마다 한 번씩은 좌중을 웃기는(!) 대단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강우석은 천운의 소유자다. 몇 차례 극적인 그의 회생 경력을 더듬다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일찌감치 충무로에서 흥행 영화를 만들던 그의 이름에 무게가 실린 것은 1993년에 개봉한 ‘투캅스’였다. 그때 좌석이 고작 30석 남짓한 충무로의 길시사실에서 평론가 시사회가 열렸을 때 그의 속내는 초조해 보였다. 그때 강우석은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자본으로 ‘투캅스’를 만들었다. 개봉 초기 한산했던 ‘투캅스’의 흥행성적 때문에 일주일간을 술로 지새던 강우석은 갑자기 극장 앞이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다. 끝없이 이어진 관객의 줄에 감격한 그는 근처 다방에 뛰어 들어가 소리쳤다. “저 사람들 앞에 커피 한 잔씩 돌리세요.”

    ‘투캅스’는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성공했고, 강우석에게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흥행감독의 명성이 따라붙었다. 그러자 그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전국에 가장 많은 체인을 소유하고 있던 서울극장 배급라인을 끌어안기 위해 노회한 흥행사 곽정환씨와 제휴했다. 충무로에선 젊은 강우석이 구세대의 영화 자본가와 결탁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그리고 강우석이 산전수전 다 겪은 곽정환씨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아마도 토사구팽당할 것이라는 비관도 나왔다.

    도전과 재기 연속 … ‘규모의 경제’ 선두 지휘



    ‘흥행짱’ 강우석 감독이 사는 법

    영화 ‘투캅스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우석의 브랜드인 시네마서비스는 확장일로를 거듭했다. 그는 제작과 배급을 지휘하는 절대 군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재수의 난’처럼 큰돈을 들인 영화가 망할 때마다 흔들린다는 소문이 새어나왔지만 강우석은 그때마다 극적으로 재기했다. ‘이재수의 난’이 망한 1998년 그해 여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되기 직전 밤 12시에 마련된 스태프들의 기술 시사회에 슬쩍 잠입했을 때 그는 한때 모 영화에 대한 비평 때문에 원수 보듯 하던 때가 언제냐는 투로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 왔어? 영화가 아직 믹싱이 시원찮거든. 그거 감안해서 봐줘야 한다구!” 그는 한시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대면서 영화의 최종 완성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가 배급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다시 공전의 흥행을 했고 시네마서비스는 재기했다. 이런 스토리가 한 보따리쯤은 된다. ‘실미도’는 그의 성공 스토리의 극적인 절정이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과욕의 승부사’라는 별명을 안고 사는 그는 전근대적인 한국영화계가 규모의 경제로 나아가게끔 이끈 장본인이다. 경쟁사의 영화를 제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자지만 아무도 모르게 영화계 이곳저곳을 도와 미담을 차곡차곡 쌓는 의리파이기도 하다. 후세에 그는 전환기의 한국영화계에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 여러 파장을 일으킨 인물로 거듭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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