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

‘閔펀드’ 653억원은 희망 목표액?

민경찬씨 불법모금 미스터리 … 빚더미 탈출 투자자 유인 언론 이용 자작극 가능성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2-12 15: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閔펀드’ 653억원은 희망 목표액?

    2월6일 사기혐의로 구속된 노무현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 불법펀드 모금여부로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다.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43)의 ‘653억원 펀드 모금’ 사건이 온 나라를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불법 모금이다’, ‘권력형 비리다’, ‘총선자금 또는 대선잔금이다’ 등 별별 추측이 난무하지만 정작 사실로 확인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당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회사를 차려 두 달 만에 653억원의 펀드를 모았다”고 말해 소란을 자초한 민씨는 경찰 조사 이틀째인 2월5일 오후부터 모금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1월30일 청와대의 하명을 받고 내사에 들어간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2월4일 민씨를 전격 연행하고 다음날 밤 긴급체포할 때까지, 그에게 붙은 혐의는 ‘원금과 수익에 대한 보장을 약속하고 수십명으로부터 수백억원의 돈을 불법 모금했다’는 것(유사 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 경찰이 민씨의 집과 병원, 사무실 등 5곳을 압수수색한 근거도 이 같은 혐의였다. 민씨도 2월4일 밤 자신이 직접 쓴 해명서를 통해 모금의 불법성은 부인했지만 모금 사실 자체만은 인정했다.

    그런데 민씨가 갑작스레 모금 사실을 부인하면서 경찰은 어안이벙벙해졌다. 언론 인터뷰와 그의 말만 믿고 수사를 하다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2월6일 구속된 민씨의 혐의는 불법모금이 아닌 신축 병원의 식당운영 이권을 둘러싼 사기 혐의(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였다. 1월30일부터 시작된 10여일간의 내사와 수사기간에 경찰은 민씨 주변 인물 20여명에 대한 계좌추적과 방증 수사를 펼쳤지만 모금 사실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모금의 ‘불법성’을 밝혀내기 위해 시작한 수사가 민씨의 개인비리만 파헤친 셈이다. 설사 뒤늦게 모금한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수익과 원금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쓰인 계약서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피해자의 진술이 없을 경우 경찰이 민씨에게 ‘불법모금’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모금 아닌 개인비리 혐의 구속

    ‘閔펀드’ 653억원은 희망 목표액?

    2월4일 민경찬씨의 서울시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있는 경찰.

    상황이 이쯤 되자 ‘대통령을 등에 업고 수백억원대의 불법자금을 모금했을 것’이라는 언론의 의혹도 민씨가 ‘자작극’을 벌였다는 쪽으로 급속히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매형인 노건평씨의 부동산(경남 김해시 진영읍 땅) 매입 문제로 자신이 대통령의 사돈임이 알려진 터라 언론을 통해 단시간에 653억원을 모은 사실이 알려지면 투자자가 줄을 이을 것이라는 게 민씨가 만든 자작극의 시나리오라는 분석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깜짝’ 언론플레이로 자신 소유의 김포 푸른솔병원 채무 80억원과 또 다른 신규사업(병원 신축)에 필요한 재원 550억원, 벤처 사이트 복구비용 20억원 등 총 650억원을 일거에 마련하겠다는 민씨의 ‘불순한’ 기도는 청와대의 ‘과민반응’으로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킨 꼴이 됐다. 고향인 마산과 부산, 그리고 서울에서 1998년까지 실패를 거듭하다 99년과 2000년 사이버 병원인 ‘아파요닷컴’과 ‘민경찬법의학사무소(사고 닷컴)’로 재기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그는 언론을 발판으로 삼는 재능을 발휘했다. 동료 의사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과 인터뷰, 소송으로 언론에 화려하게 등장한 그의 사이트와 사무실은 돈을 주고 상담과 처방을 받으려는 환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다. 민씨는 뉴스 가치가 있는 사람의 주변 문제라면 무조건 쓰고 보는 언론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閔펀드’ 653억원은 희망 목표액?

    민경찬씨가 김포에 지은 푸른솔 병원 전경.

    실제 2월6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된 사기혐의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민씨는 경찰조사에서 “기자 앞에서 과시욕에 친분을 내세우며 충동적으로 653억원을 모금했다고 말한 것이 상상외로 파장이 일자 겁이 나 당황스러워 계속 거짓으로 일관하게 되었다”고 실토했다는 것. 민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대통령까지 ‘열받게’ 한 대통령 인척 불법펀드 모금 사건은 한낱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는 셈이다.

    하지만 민씨 주변에 대한 확인 취재결과 실제 투자금이 모였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민씨가 신규사업을 위한 투자자 모집과 모금행위에 나선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가 주장한 653억원이라는 액수는 이미 모금한 액수가 아니라 앞으로 그에게 필요한 ‘희망액수’이자 ‘목표액수’일 뿐이라는 게 민씨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민씨는 당장 해결해야 할 채무 금액이 많았다. 반면 가진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탈출구는 신규사업을 통한 투자금 모집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포 푸른솔병원 공사를 한 뒤 공사비를 받지 못해 3년째 민씨를 쫓고 있는 시공업자 김모씨(60)는 “2002년 1월 병원이 완공되고 2월 말 문을 열었지만, 민씨는 공사비를 주지 못했고 병원 운영은 적자에 허덕였다. 그러자 민씨는 바로 다른 병원 신축지를 물색하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나 모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초부터 이천시의 병원 건만 잘 되면 공사비를 주겠다고 한 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2003년 1월부터 병원을 운영하지 않은 채 도망다녔던 그가 월세 400만원의 사무실을 빌리고 고급 외제차를 굴리면서 지금껏 먹고 산 것을 보면 투자자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고 전했다.

    큰소리 ‘뻥뻥’ 채무자 달래기

    당초 무일푼 상태에서 70억원 상당의 김포 푸른솔병원 건물(의료기 포함)을 은행 빚과 사채로만 지은 민씨는 병원 운영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임금 체불까지 늘어나자(10억여원), 이른바 ‘돌려막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새로 신축하는 병원을 인수한 후 그곳을 담보로 또 돈을 빌려 김포 병원의 공사대금과 36억원에 이르는 은행 빚 그리고 밀린 임금까지 한꺼번에 막으려 했다는 것. 이때가 바로 2002년 초로 민씨에게 36억원을 빌려준 모 은행이 병원 건물을 경매에 붙이고, 뒤이어 2차 금융기관과 채무자들의 경매신청이 잇따르던 시기였다.

    당시 민씨가 병원 신축지로 지목한 곳이 경기 이천시 부발읍의 지상 5층 건물이다. 민씨는 이곳에 지하 3층, 지상 10층, 연면적 8100평의 종합병원을 새로 짓기로 하고, 2002년 1월 초 건물주 이모씨(43)를 설득해 매각 허락을 받아냈다. 이 건물 관리실 관계자는 “2002년 1월 매매계약을 맺었으나 계약금과 중도금을 제때 내지 않아 9월에 계약이 해지됐다”며 “계약 체결 이후 매각을 위해 임대점포까지 모두 비워주었는데 계약이 취소돼 수억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건물을 놀려둘수 없었던 건물주 이씨는 2003년 10월 민씨가 구상했던 그대로 종합병원 건축허가를 이천시청에 냈으나 교통영향평가 미비 등 무려 12가지 보완사항이 지적되면서 반려돼 올 1월 말 병원 신축을 완전히 포기했다. 민씨 주변에서는 건물주 이씨가 종합병원 신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건축허가를 넣은 이유도 “병원을 다 지어놓으면 인수하겠다”는 민씨의 약속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김포 푸른솔병원 공사에 참여했던 K사의 관계자는 “민씨가 최근까지도 ‘이천병원 건물을 450억원에 인수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그는 “민씨가 ‘의료기기 구입비와 전산시스템 설비치 등 병원 시스템 구입비 100억원을 합해 550억원만 있으면 이 병원을 굴릴 수 있다’며 채무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이야기해왔다”고 덧붙였다. 민씨는 여기에다 100억원만 더 있으면 김포 푸른솔병원의 모든 채무를 해결하고(80억원 소요), 자신이 예전에 운영하다 그만둔 사이버 병원 ‘아파요닷컴’도 다시 운영할 수 있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민씨가 채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던 금액을 모두 합하면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653억원’과 대충 맞아 들어간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지만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민씨는 당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첨 후의 돈 배분을 먼저 고민하는 ‘로또 마니아’들처럼 자신이 빚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새로 태어날 수 있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매일 상기하고 다녔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천시의 병원건물을 설계했던 L건축측은 “당초 병원의 설계는 민씨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그는 우리보다 공사비를 산정하는 데 더 밝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민씨가 매매계약이 파기된 이후에도 이 병원 신축이 계속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심지어는 짓지도 않은 병원의 원장인 것처럼 하고 다녔다. 민씨가 구속된 것도 병원 부지 매매계약이 깨지기 한 달 전인 2003년 5월 말, 병원 신축은커녕 부지도 인수하지 못한 채로 병원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주겠다고 속여 박모씨(60)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는 등 9월까지 8회에 걸쳐 5억305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때문이다.

    민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동문 주소록에는 그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는 세워지지도 않은 병원의 그것이었다.

    대통령 사돈 홀딱 믿은 풍토 씁쓸

    이러저러한 정황으로 미뤄볼 때 김포 푸른솔병원의 파산으로 빚더미에 오른 민씨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병원의 신축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금하다 여의치 않자 ‘언론 플레이’로 이를 돌파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민씨의 한 지인은 “민씨는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것 때문에 얻는 것도 없이 매형(노건평)의 부동산 인수건으로 야당과 언론의 공세에 시달린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며 “청와대와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자작극’이라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도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의 특이한 반항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민씨의 병원 공사를 담당했던 한 시공업체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형수의 동생인 민씨에게 꼭 손해만 입힌 것은 아니었다.

    “2001년 8월쯤 발주처의 파산으로 공사가 중단된 푸른솔병원을 무일푼의 민씨가 전격 인수했을 때 업자들이 안심하고 공사를 재개한 이유는, 병원 2차 기공식 때 날아온 화환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노무현 민주당 고문’이라고 쓰여 있었죠. 다음해 1월 완공됐지만 8월까지 공사비가 나오지 않아도 업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땐 이미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회창 후보와 2파전을 치를 때였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채권자들이 병원에 상주하고, 환자가 줄어드는 시점인데도 모 은행은 이 병원의 은행 부채 36억원을 모두 대환 처리해줬다는 점입니다. 담보에 이상이 없다면서 말입니다. 2003년 초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민씨 곁에는 브로커와 ‘어깨’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민씨가 이천시에 다른 병원을 짓는다고 난리를 친 게 그때였습니다.

    사실 푸른솔병원을 지을 때도 병원 브로커가 끼어서 일을 다 했지, 민씨는 허수아비였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고 모두 그들이 바람을 잡고 다녔어요. 아마 이천시의 건물주도 우리처럼 민씨의 됨됨이를 보지 않고, 그의 배경만을 보고 매매계약을 맺어 손해를 본 것이 아닐까요.”

    세상이 바뀌었어도 대통령의 친인척을 사칭하는 브로커와 사기꾼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대통령 사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653억원이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아무런 사업계획과 조건 없이, 그것도 단 두 달 만에 모았다”는 민씨의 말을 당연한 듯 그대로 믿는 사회풍토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