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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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대우, 레조 리콜 ‘음모’

엔진오일 소비 과다 문제 이상한 대책 … 건교부 리콜 요구 응하면서 ‘뒤통수 치기’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02-12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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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 대우, 레조 리콜 ‘음모’

    GM대우차는 레조 엔진 결함 논란으로 회사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2002년 10월17일 GM대우차 출범식 장면.

    엔진 결함 논란이 제기돼왔던 레저용 차량(RV) 레조 LPG 차량에 대한 리콜 실시 여부를 두고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이하 GM대우)와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 간에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GM대우측은 “엔진 결함에 대한 회사 자체 및 건교부측의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소비자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콜 실시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화할 단계가 아니다”고 한발 뺐다.

    반면 건교부는 상당히 완강하다. 건교부 자동차관리과 관계자는 “레조 리콜을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면서 “현재는 GM대우측과 이해관계인에게 의견 제시 및 소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건교부는 자발적 리콜을 여러 차례 권고했으며 소송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해 GM대우측의 항변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했다.

    이런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구제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레조 엔진 결함 논란은 우리 자동차산업의 허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또 리콜제도 자체의 문제점 개선이나 시스템 보강 등에는 관심이 없고, ‘리콜 실적주의’에 빠져 밀어붙이려는 듯한 건교부의 그간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엔진 교체 땐 1500억원 비용 소요

    레조의 리콜 실시 여부는 그동안 자동차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리콜이 실시된다면 국내 리콜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이 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 2000년 1월 출시된 레조는 외환위기 이후의 LPG RV 붐을 타고 15만여대가 판매됐다. 이에 따라 엔진 교체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적어도 15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추산이다.



    레조의 엔진 결함은 지난해 초 일부 소비자들이 제기한 뒤 6월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대표 임기상)이 레조 운전자 80명의 서명을 받아 “레조 LPG 차량이 주행 중 엔진오일이 연소해 엔진을 파손시키고 있다”며 건교부에 리콜 조치를 내려줄 것을 건의하면서 문제가 됐다. 건교부는 이에 따라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 의뢰해 제작 결함 조사를 실시, 리콜이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레조의 엔진오일 소비(LOC) 과다 문제를 보자. 주행거리(대개 5만km 안팎)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엔진오일의 급격한 소모 현상이 나타난다는 게 소비자들의 주장이다. 레조 운전자들은 이로 인해 장거리 주행시 엔진오일이 부족한 사실을 모르고 주행하다 심한 경우 엔진 파손까지 경험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GM 대우, 레조 리콜 ‘음모’

    레조 운전자들이 지난해 6월21일 인천 부평구 GM대우차 정문 앞에 모여 레조 엔진 결함과 관련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통상 엔진오일 소모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자동차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빨라지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그만큼 불편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들로서는 시장에서 그런 차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도태시키는 것 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엔진오일이 과다하게 소모돼 엔진 윤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마저도 확보되지 않았을 때다. 이 경우 통상 계기판에 오일압력 경고등이 점등돼 엔진오일 부족현상을 미리 경고해주도록 돼 있다. 운전자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주행해 엔진이 파손됐다면 이는 운전자 과실일 수 있다. 그러나 경고등이 점등되지 않았다면 이는 리콜 대상이다.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관계자는 “엔진오일이 400~500㏄ 남아 있을 때 경고등이 들어오게 되는데, 운전자가 카센터를 찾기 어려운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주행 중 경고등이 점등된다면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계속 주행하면 엔진이 파손돼 자동차가 갑자기 서버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것만으로도 리콜 대상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운전자 과실이 더 많다고?

    GM 대우, 레조 리콜 ‘음모’

    엔진오일의 급격한 소모로 피스톤 링에 의해 마모된 실린더 블록(위). 엔진오일이 함께 연소하면서 실린더 헤드 안쪽 부분에 카본이 쌓여 있다.

    GM대우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나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자동차 운전자들이 사이버에서 반(反)GM대우 운동을 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리콜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운전자 과실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LOC 과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상식 밖이긴 해도 운전자 과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물론 GM대우측의 항변이 이론상 일부 일리가 있다고 해서 레조 리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엔진오일이 연소실에서 과다하게 연소하면 엔진오일의 특정 성분이 배출가스를 정화하는 삼원촉매 등의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당연히 배출가스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배출가스 리콜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관계자는 “그 부분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행법에서 배출가스 리콜은 환경부 소관사항이기 때문이다.

    결국 레조 엔진 결함 논란은 건교부와 환경부가 합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부처 이기주의 때문인지 합동 대처는 고사하고 이를 위한 검토나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레조 엔진 결함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는 LOC 과다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판단이다. 이에 대해 GM대우측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GM대우측은 “엔진 점화시기가 정상보다 조금 빨라 연소실 내부 온도가 과도하게 높아지게 됐고, 이에 따라 실린더 내벽과 피스톤 링 사이의 엔진오일까지 연소시킴으로써 실린더 블록 마모 현상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LOC 과다 문제가 발생하면 맨 먼저 실린더 블록과 피스톤 링의 ‘궁합’을 점검한다”고 말했다. 실린더 블록과 피스톤 링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피스톤 링이 실린더 블록을 따라 상하운동을 하면서 실린더 블록이 일부 마모돼 실린더 블록과 피스톤 링 사이에 틈새가 생기고 이를 통해 엔진 오일이 연소실에 유입돼 LOC 과다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감독 당국인 건교부는 이런 논란을 검증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GM대우측의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LOC 평가시험 모드를 갖추고 있으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관계자는 “LOC 평가시험 모드를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한 채 “이론적으로만 원인을 추론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리콜제도가 자동차 메이커 쪽 의도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교부 자동차관리과 관계자가 “현재 레조에 대해 리콜 원인 및 해결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LOC 평가시험을 제대로 했다면 레조 엔진 결함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금방 나오게 마련인데 지금도 해결 대안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현재 건교부와 GM대우측이 물밑에서 타협점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관측하고 있다.

    이는 막대한 리콜 비용 때문이다. GM대우측 주장대로라면 레조를 리콜하더라도 점화시기를 조절하는 ECU(Engine Control Unit)만 교체해주면 된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대로라면 피스톤 링을 교체해주어야 하는데, 이는 작업 과정이 복잡해 차라리 엔진 전체를 교환해주는 게 낫다. ECU 교체 쪽이 훨씬 싸게 먹히는 셈. 따라서 “GM대우측은 건교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리콜 권고를 받아들이고 대신 건교부는 ECU 교체를 묵인하는 것으로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

    청산 중인 대우차 책임 곧 ‘국민 부담’

    한편 자동차 업계에서는 레조 엔진 결함 논란으로 GM대우측의 기술력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비웃고 있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자동차 엔진 개발에서 LOC 평가시험은 가장 기초적인 영역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LOC 과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레조의 엔진 결함과 비슷한 문제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음에도 대우자동차가(이하 대우차) 이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GM대우 관계자는 “레조 엔진과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LPG 택시측에서 수년 전부터 이런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통상 택시회사가 LPG 엔진을 일부 개조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로 무시해왔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남이 잘 되면 무조건 이를 뒤따라간 한국 재벌의 행태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아자동차가 LPG RV를 개발해 재미를 보자 김우중 당시 회장이 레조 개발을 밀어붙임으로써 충분한 개발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피해는 레조 운전자들뿐 아니라 전 국민도 보게 됐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과거 대우차가 개발한 차량에 대한 리콜 비용은 대우차가 부담하도록 계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청산 절차가 진행 중인 대우차가 레조 리콜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결국 그만큼 대우차 채권자들의 손실이 늘어나고 공적자금 회수도 감소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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