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2004.02.19

‘집사변호사’ 인기 직종으로 떴다?

구속 중인 거물 의뢰인의 옥바라지 전담 … 전관 출신 많고 주위 눈총 탓 “쉬쉬”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2-12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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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변호사’ 인기 직종으로 떴다?

    내란·반란수괴죄로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사들이 집사변호사의 효시다. ‘이용호게이트’의 주범 이용호씨는 최근 집사변호사로 파문을 일으켰다. 1995년 체포돼 끌려가는 전 전 대통령(왼쪽)과 2001년 9월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 이씨.

    정·재계를 호령하던 거물들이 잇따라 구속되면서 이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집사변호사’들도 맹활약을 하고 있다. 집사변호사란 구속 중인 의뢰인을 거의 매일 접견해 같이 시간을 보내주고, 외부와의 연락도 대신해주는 등 일반적인 변호사의 조력 범위를 넘어 사실상 의뢰인의 옥바라지를 하는 변호사들을 가리킨다.

    법조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는 집사변호사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해 10월 ‘이용호게이트’의 주범 이용호씨와 그의 변호사 김모씨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알려지면서였다. 매일 구치소를 방문해 의뢰인을 접견해주고 매월 일정액의 수임료를 챙긴 변호사 김씨 사건은 집사변호사가 어디까지 악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지난해 5~10월 사이 이씨는 김씨를 통해 전달받은 증권 조회용 단말기 등으로 옥중에서 5개 기업을 인수했을 뿐 아니라 특정기업의 주가를 조작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수감자 이씨의 손발 역할을 해주고 김씨가 수임료 등으로 받은 돈은 무려 2억900만원.

    김씨는 업계에서 꽤 알려진 집사변호사였다. ‘고속철 로비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김인태 전 경남종합건설 회장과 ‘굿모닝게이트’에 연루된 권해옥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 나라종금 로비사건의 김호준 보성그룹 회장 등도 김씨의 고객이었다. 김씨는 구속 중인 이들에게 돈을 받고 휴대전화를 사용케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집사변호사 강모씨는 무선랜이 달린 노트북컴퓨터를 업무용인 것처럼 교도소 안으로 들여가 한 차례에 500만원씩 받고 수감자들이 마이크가 달린 이어폰으로 외부와 통화하도록 하는 수법으로 수억원의 부당 수임료를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옥중 업무 지원 등 과잉 서비스 펼치다 들통나기도



    이처럼 집사변호사라는 별난 직업인이 등장해 필요 이상의 ‘서비스’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지만 변호사들이 수감자 접견권 등 고유 권한을 활용해 의뢰인의 수감생활을 돕는 관행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법조계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호위하듯 함께 다녔던 변호사들을 집사변호사의 효시로 보고 있다. 1995년 전씨가 내란·반란수괴죄로 구속됐을 때 전씨의 변호인단은 전씨가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할 때도 배석했고, 구속 뒤에는 매일 구치소를 찾아가 몇 시간씩 함께 있으면서 수감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전씨의 변호인단처럼 의뢰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변호사는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정권 초기 사정 바람이 불 때마다 권력자와 재력가들이 옥에 갇히는 모습이 되풀이되면서 집사변호사를 찾는 수요도 늘어만 갔다.

    ‘집사변호사’ 인기 직종으로 떴다?

    법조계 불황도 집사변호사가 출현하게 된 이유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그 와중에 재력가의 집사를 하다 한몫을 잡은 변호사의 ‘성공담’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L그룹 계열사의 고용 변호사였던 K변호사의 성공기가 그 대표적 사례. 몇 해 전 K변호사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사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뒤 헌신적으로 옥바라지를 했고 소송에도 최선을 다했다. 결국 이 사장은 큰 고생 없이 석방됐다고 한다. 얼마 뒤 K변호사가 개업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자 이 사장은 고마움의 뜻으로 K변호사에게 개업사무실을 통째 선물했다는 것이다. 한 현직 변호사는 “이 얘기는 배고픈 변호사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집사변호사의 성공스토리에는 몇 가지 무대장치가 필요하다. 자부심 높은 전문직인 변호사를 ‘집사’ 부리듯 할 수 있는 재력가나 권력층 수감자가 많아야 한다. 또 집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변호사 업계가 불황이어야 하고 직업윤리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대형 비리사건으로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요즘을 집사변호사의 황금기로 보고 있다. 또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어 변호사 수가 폭증하면서 집사변호사가 활개 칠 주관적 여건도 무르익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구속된 서울구치소 주변에는 최근 고위층 수감자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변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집사변호사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서인지 드러내놓고 집사 역할을 하는 변호사는 드문 실정이라고 한다.

    재력가 의뢰인의 경우 수임료 2억~3억원 ‘짭짤’

    실제 집사변호사 경험이 있다는 한 변호사는 “집사변호사가 사회문제화 되면서 과거처럼 한 명의 변호사가 특정 수감자를 전담해 뒷바라지하는 관행은 사라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2~3명의 변호사가 번갈아가며 변호인 접견을 신청하는 방식을 써 특정 변호사가 특정 수감자의 집사변호사라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집사변호사가 사회문제화된 이후 몇 명의 변호사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접견하든가, 아니면 여러 변호사가 함께 접견하면서 대표 변호사의 이름을 바꾸는 식으로 접견신청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접견 자료를 봐선 누가 누구의 집사변호사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집사변호사가 반드시 소송을 잘하는 유능한 변호사일 필요는 없었다. 소송을 지휘하는 변호사는 따로 있고 집사변호사는 수감자와 외부를 연결해주고 수감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면 됐다. 그래서 주로 나이가 많아 일선에서 은퇴한 변호사들이 소일 삼아 맡기도 했다. 한 달 200만~300만원의 ‘저렴한’ 수임료로도 얼마든지 집사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호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집사변호사가 되기 위한 경쟁도 만만치 않다는 전언이다. 능력이 부족하면 거물급 고객의 집사변호사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 한 현직 변호사는 “재력가나 고위직 수감자들의 집사변호사로 의심이 가는 변호사를 보면 전관 출신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법원과 검찰 고위직에 있다가 최근 개업한 변호사들이 많은데 평균 연령은 50대 중반”이라고 말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구속된 국회의원의 한 측근은 “당의 변호사 출신 의원을 포함해 1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실제 소송을 책임지는 변호사는 능력을 인정받은 전관 출신 변호사인데, 우리뿐 아니라 다른 구속 의원들도 비슷한 생각에서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수감자의 재력에 따라 집사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의 규모도 물론 다르다. 법조계 한 인사는 “서울구치소에는 정치인은 물론 비자금 문제로 구속된 기업인도 있다. 그런데 기업인이 채용한 변호인단은 양이나 질에서 정치인의 변호인단과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한마디로 기업인들이 사단 규모의 변호인단을 활용한다면, 정치인의 변호인은 소대 규모도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 집사변호사들의 수임료는 얼마나 될까. 이용호씨의 집사변호사였던 김씨의 경우 검찰 조사 결과 2억원이 넘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실제 재력가를 고객으로 둘 경우 2억~3억원의 수임료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보통 변호사들이 사건 단위로 수임을 하는 데 반해 집사변호사는 기간을 정해놓고 수임료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변호사는 “집사변호사의 경우 수감자가 구속돼 재판을 받는 한 달 내지 두 달, 즉 구속돼 있는 기간 동안을 기한으로 계약하면서 이 기간 접견과 변론, 그리고 검찰이나 재판부를 상대로 한 로비활동 등 모든 법률 서비스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수임계약을 맺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집사변호사가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분야로 떠오르면서 대형 로펌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법조계 한 인사는 “국내 굴지의 로펌들도 최근 팀을 구성해 재력가나 유명인 수감자들을 상대로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법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수감자의 말벗을 해주는 접견 변호사 역할을 하는 고령의 변호사를 별도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구치소가 ‘범털’ 수감자로 넘쳐나면서 이들을 상대하는 변호사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오늘도 구치소를 일터 삼아 드나드는 변호사들의 행렬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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