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2004.01.22

사랑 사과 ‘합환채’를 아십니까

팔레스타인 남부지역 주 생산지 … 정력 증강, 성욕 자극 후궁 1천여명 거느린 솔로몬 애용(?)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4-01-15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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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사과 ‘합환채’를 아십니까

    동생인 라헬에게 청혼하고 있는 야곱(왼쪽).우물가에서 재회한 라헬과 야곱.

    시기는 죽음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야곱의 아내들 중 레아와 라헬은 자매지간이었지만 야곱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시기 질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몸종까지 동원하여 낳은 아들들 이름이 두 사람의 시기 질투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야곱은 동생인 라헬과 연애하여 라헬의 아버지 라반 밑에서 묵묵히 7년간이나 일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을 속여 큰딸 레아를 먼저 아내로 주고 다시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주었다. 야곱은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라헬만을 사랑했다. 언니 레아는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여호와는 공평하셔서 레아에게 먼저 태기가 있도록 하셨다. 그래서 낳은 첫째 아들 이름이 르우벤이었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다’라는 뜻으로 레아의 억울함과 분함이 함축되어 있는 이름인 셈이다. 레아는 르우벤을 낳고 이렇게 소감을 피력했다.

    아들 합환채로 야곱 동침권 산 레아

    “여호와께서 내 괴로움을 돌아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이 한마디에서 레아가 그동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레아는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시므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뜻이다. 그때도 레아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여호와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아시고 나에게 이 아들을 주셨구나.”

    레아가 첫아들을 낳은 뒤 이제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주겠지 했는데 아직도 남편 야곱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모양이다. 셋째 아들을 낳고 레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으로 남편이 레아 자신과 이제부터는 연합하리라는 기대가 담긴 이름이다. 넷째 아들을 낳고 붙인 유다라는 이름은 ‘찬송’이라는 뜻으로 이제야 비로소 레아가 아들들을 주신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다.

    아들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레아의 마음이 조금씩 치료되고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레아가 연달아 아들을 넷이나 낳자 이번에는 아직 아들 하나도 두지 못한 라헬이 시기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야곱에게 이렇게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아이를 낳고 싶어요. 당신의 아이를 낳게 해줘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어요.”

    그러자 야곱이 평생 처음으로 라헬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인데 어떻게 나더러 하나님을 대신하라는 말이오?”

    결국 라헬은 몸종 빌하를 야곱에게 씨받이로 주어 단이라는 아들을 얻는다. 단은 ‘억울함을 풀다’라는 뜻이다. 그후 빌하가 또 아들을 낳자 라헬이 득의양양하여 “내가 언니와 경쟁하여 크게 이겼다”면서 납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납달리는 ‘경쟁하다’라는 뜻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레아가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각각 갓과 아셀이라는 아들들을 낳게 한다. 갓은 ‘복됨’, 아셀은 ‘기쁨’이라는 뜻이다. 레아에게 훨씬 여유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사랑 사과 ‘합환채’를 아십니까

    야곱이 라헬과 레아로부터 얻은 아들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레아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이를 갖기 힘들어진다. 맏아들 르우벤이 그러한 어머니의 사정을 알았는지 밀을 거둘 무렵 들에서 합환채(合歡菜)를 캐어 가지고 와서 레아에게 주었다. 합환채는 히브리어로 ‘뚜디’라고 하는데 감자류에 속하는 식물로 팔레스타인 남부지역에서 많이 난다. 여러 갈래로 난 뿌리는 인삼처럼 생겨 언뜻 보면 사람 다리들이 꼬인 형상이다. 사람 다리들이 꼬인 형상이니 그야말로 남녀가 교합하는 모양과 닮았다.

    그런 모양 탓인지 예로부터 그 식물은 남자의 양기를 살리고 여자의 임신을 돕는 데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꽃과 잎이 뿌리에 바짝 붙은 형태인 합환채는, 잎은 진한 녹색이고 꽃은 짙은 자색이며 열매는 토마토보다 약간 작고 노란색을 띤다. 특히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열매는 성욕을 자극하는 특성 때문에 ‘사랑 사과(love apple)’라고 불리기도 하고, 성욕이 지나치면 탈선할 우려도 있기 때문에 ‘마귀 사과(devil apple)’라고 불리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최음제인 셈이다.

    뿌리는 남녀 교합 형태, 열매는 최음 효과 탁월

    레아가 아들까지 동원하여 합환채를 구했다는 소식을 들은 라헬이 달려와 자기에게도 그것을 나눠달라고 하자 레아는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린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일이 어디 작은 일이냐. 그런데 감히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까지 빼앗으려 하느냐?”

    하지만 합환채를 주면 오늘밤 남편과 동침하게 해주겠다는 라헬의 제안에 그만 레아가 넘어가고 만다. 해가 저물어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자 레아가 달려가 남편을 맞이하며 말한다.

    “오늘밤은 나에게로 와서 자고 가야 해요.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거든요.”

    언니와 동생이 맺은 계약대로 야곱은 할 수 없이 그날 밤 레아의 방에서 동침을 한다. 아마도 레아가 라헬에게 합환채를 다 주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야곱과 동침하는 날 밤 야곱에게 주어 먹게 했을 것이다. 정력이 왕성해진 야곱이 레아를 오랜만에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잇사갈인데, ‘값’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남편을 값을 주고 사 낳은 아들이라는 말이다.

    합환채라는 말은 창세기에 다섯 번 나오고 아가서에 한 번 나온다. 아가서의 내용은 아무리 신학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해도 에로티시즘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장색이 만든 공교한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포도주를 가득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같구나. (중략)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중략)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 두루 구비되어 있구나.’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고 열매를 따듯, 여인의 몸을 타고 올라가 열매 송이 같은 유방을 만지겠다는 구절은 그야말로 성애 표현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노래다. 솔로몬은 1000여명의 후궁들을 거느렸지만 특히 술람미라는 여자에게 푹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인의 콧김조차 사과 냄새로 여길 지경이었다면 그 여자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지 알 만하다. 그 대목에서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은 성적 교합의 쾌감을 높이기 위해 합환채를 구해 복용했음이 틀림없다. 하긴 1000여명의 후궁들을 거느리려면 보통 정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합환채는 향기가 별로 없어 ‘향기를 토한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합환채 열매를 복용했을 경우는 그 자극적인 약리작용으로 인해 정말로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야곱, 솔로몬 같은 옛날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이나 정력을 증강하고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매한가지인 듯싶다. 도교가 성행한 중국 위진시대에는 여러 광물들을 배합하여 한식산(寒食散)이라는 최음제를 만들어 사대부나 서민 할 것 없이 모두 복용하고 그 부작용으로 폐인이 되기도 했다는데, 참으로 성적 욕구는 죽음보다도 더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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