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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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울고 갈 열정 ‘이론 박사’

  • 이조년/ 골프칼럼니스트 huskylee1226@yahoo.co.kr

    입력2004-01-09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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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도 울고 갈 열정 ‘이론 박사’

    박학기의 골프 지식은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다.

    오랜만에 라이브 콘서트를 보러 갔다. 2003년 연말 서울 대학로는 20대들의 차지였다. 우리 세대가 이곳에서 문학을 얘기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도 옛추억을 되새기며 라이브 콘서트를 본다는 게 무척 즐거웠다. 콘서트의 주인공은 국내 최고의 미성 가수 박학기. 그는 김광석 이후 최고의 라이브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박학기의 콘서트장에는 1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팬들이 자리했다. 그 가운데 특히 30대 중반의 일본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준코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얼마 전 일본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에 삽입된 박학기의 노래에 반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대학로 콘서트장을 찾았다고 했다.

    준코는 ‘한국인 가수’ 박학기에 미쳐 있었다. 그는 ‘겨울연가’를 본 후 박학기에게 푹 빠져 그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질과 양의 방대함은 박학기마저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박학기의 2∼6집 앨범, 베스트앨범을 비롯해 박학기 본인에게도 없는 스타 사진집을 보관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았다. “1집 CD가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박학기는 준코란 일본팬의 정성과 열정을 골프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형, 저 모습을 보면 난 아직 멀었어. 무늬만 골퍼였다니까.”



    박학기는 골프와 관련해 대단한 집념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골프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전문가마저 주눅들게 할 정도다. 그의 이런 열정에 대해 동료가수 강은철은 “아마 박학기처럼 연구하고 골프 쳤으면 박사가 됐거나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학기는 왜글을 줄이기 위해 세탁소의 하얀 옷걸이를 이용한 보조기구를 직접 만들어 연습하고, 군용 모포와 카펫을 이용해 퍼팅 연습을 하는 등 골프를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과학으로서 접근해왔다. 그런 박학기가 한 일본인 팬을 보고 “난 골프를 제대로 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렇듯 박학기에게도 골프는 쉽지 않은 스포츠다. 구력 4년에 베스트스코어 83타. 꽤 괜찮은 기록이지만 그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싱글을 꿈꾸는 그의 골프 지식은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는 공연을 마치고 밤늦게 대학로를 빠져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광석이가 골프를 배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프로도 울고 갈 열정 ‘이론 박사’
    박학기와 김광석은 둘도 없는 죽마고우이자 언더그라운드 가요계의 라이벌이었다. 박학기가 좀더 일찍 골프를 시작했더라면 김광석도 그를 따라 골프를 배웠을 것이다. 김광석이 골프를 쳤다면 그를 좀더 오래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골프에 대한 열정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랬다. TV드라마 속의 노래에 반해 대한해협을 건너온 준코를 통해 박학기는 집념과 열정, 그리고 김광석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단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일본에서 한국까지 찾아온 준코의 정성과 열정이라면 못할 게 없다”면서 “내 열정은 아직 멀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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