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2004.01.15

C등급 서청원 ‘죽기 아니면 … ’?

“당무감사 음모 물갈이 공천 보이콧” … 反 최병렬 세규합 투쟁 수위 올리기 고심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1-08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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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등급 서청원 ‘죽기 아니면 … ’?

    2003년 6월27일 새 대표에 당선된 최병렬 의원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있는 서청원 의원(오른쪽).

    2003년 12월31일 오전 11시35분경.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들이 하나 둘 대표실로 들어섰다. 당무감사 자료 공개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한 비상회의였다. 회의장 분위기는 무거웠다. 최병렬 대표가 “긴급하게 연락을 드려 (위원들이) 늦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종하 의원이 “(그렇지 않아도) 어딜 가다 연락을 받고 되돌아왔다”고 말을 받았다. 김의원 말이 끝나자 최대표는 “점심약속이 깨졌으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의원이 “D등급이 뭐…”라며 최대표를 빤히 쳐다봤다. 당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김의원은 D등급에 속해 있다. “D등급인데 점심은 먹어 뭐하겠느냐”는 항의인 셈이다. 최대표가 행간을 읽고 “D등급은 식사도 안 하나요”라고 되받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재오 전 사무총장이 일격을 날렸다. “D등급은…, 자장면이나 먹지.”

    “도대체 등급 나눈 저의가 뭐냐”

    총선 3개월여를 앞둔 한나라당이 시끄럽다. 동아일보가 공개한 당무감사 자료가 원인을 제공했다. 당무감사에서 A-B등급으로 분류된 인사들은 은연중 표정관리를 하며 느긋하다. 반면 C-D등급으로 분류된 인사들은 ‘서열화’를 매긴 당지도부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린다. 물갈이 공포 속에 자조 섞인 반응도 심심찮게 터져나온다.

    C등급 서청원 ‘죽기 아니면 … ’?

    2003년 12월31일 이재오 사무총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D등급으로 분류된 박희태 전 대표는 1월 초 “서울대 법대를 다니고, 고시공부까지 해봤지만 D학점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청원 전 대표측도 냉소적이기는 마찬가지. 한 측근은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C등급 의원을 모시는 사람이 뭘…”이라고 말을 받는다. “도대체 A-B-C-D로 나눈 저의가 뭐냐”는 불만이다. 당지도부는 왜 A-B-C-D로 나누었을까. 이 작품은 전적으로 이 전 총장의 아이디어였다. 오랫동안 재야활동을 했던 그는 어떤 사안이든 틀을 만들어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의 캐릭터를 알 수 있는 사례 한 토막. 15대 국회에 첫 등원한 이 전 총장은 즉시 보좌진을 불러 “국회의원 전원을 ‘나이대’별로 분류하라”고 지시했다. 보좌진은 고민 끝에 나이가 많은 원로들을 A그룹, 동년배 그룹을 B그룹, 후배의원들은 C그룹 등 세 그룹으로 나누어 정리, 이 전 총장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자료를 받은 이 전 총장은 즉시 A그룹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선배님, 이재오입니다”라며 후배로서의 예를 갖추었고 동년배들에게는 말을 트며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무감사 결과가 서열화된 것도 이 전 총장의 이런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당초 당무감사 실무책임자인 이재환 조직국장은 당무감사 결과를 포괄적 ‘점수’로 정리했다. 공천 가능한 점수의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정치적 접근의 ‘여지’가 많은 자료였다. 이국장은 한 보따리가 넘는 이 당무감사 자료를 박승국 전 부총장과 이 전 총장에게 넘겼다. 이를 받아 본 이 전 총장이 “알기 쉽게 A-B-C-D로 간략하게 나누어 보고하라”고 지시, 서열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몇몇 지구당의 당무감사 결과가 흘러나와 당사자들의 격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구·경북 지역 한 인사는 당무감사에 나섰던 관계자들로부터 자신이 경선 또는 물갈이 대상으로 분류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실무진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등급변경을 요청했다는 것. 이 인사의 경우 공개된 당무감사 결과 당초보다 훨씬 여유 있는 등급을 받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C등급 서청원 ‘죽기 아니면 … ’?

    2003년 12월31일 한나라당 종무식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최병렬 대표.

    당무감사 결과 최대의 피해자로 부각되고 있는 서 전 대표가 “음모가 있다”며 들고 일어난 배경이다. C-D급 인사들은 “최대표가 사당화를 꾀하고 있다”며 그 정지작업으로 반최(反崔)라인을 무더기로 C-D그룹으로 분류, 물갈이의 제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서 전 대표는 이번 파동이 터지기 전 최대표와 비밀회동을 가졌다. 최대표가 “공천 문제를 논의하자”며 식사를 제의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22일. 이날 회동에서 최대표는 서 전 대표에게 공천 물갈이에 대한 당의 입장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서 전 대표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서 전 대표는 최대표의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 물갈이의 선봉에 서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불행한 사태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서 전 대표는 공신력 있는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 공천문제를 맡기자는 원론적 입장을 전달했다. 결국 이날 회동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서 전 대표측이 12월29일 동아일보의 당무감사 자료 공개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이 비밀회동이 있은 지 정확히 일주일 후 당무감사 자료가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서 전 대표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최대표측과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본인이 C급으로 분류됐고, 지난해 6월 대표경선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인사들 상당수가 C-D급에 포진, 수장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다. 그의 주변에서는 대의원을 규합해 최대표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리자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주류인 서 전 대표가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란 애초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분당론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C등급 서청원 ‘죽기 아니면 … ’?

    2003년 10월30일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 한나라당사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

    서 전 대표측이 아직 구체적 동선을 그리지 않고 있지만 그 언저리에 이회창 전 총재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서 전 대표측은 1월4일 “최대표가 이회창 측근과 서청원계 인사들을 대거 몰살시켰다”며 이 전 총재를 ‘최-서 전쟁’에 개입시켰다. 지난해 연말 서 전 대표의 밀명을 받은 ‘파발’이 비밀리에 ‘옥인동’을 방문한 사실도 감지되고 있다. 서 전 대표측은 지난 12월 이 전 총재가 검찰에 출두한 후 영남권에서 이 전 총재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물갈이의 주된 대상이 바로 영남권 중진들이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전 총재는 1월1일 고향인 충남 예산을 방문, 2002년 대선 당시 측근으로 활동했던 H씨에게 “과거 정을 잊지 않고 있다”는 덕담을 건넸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나라당 분당파와 자민련이 연대, 보수정당을 기치로 한 연대설이 탄력을 받으며 부상하고 있다. 매개는 내각제다.

    문제는 서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가 창당을 할 정도로 실질적인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분당을 해 독자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서 전 대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여기서 서 전 대표의 고민이 시작된다. 일단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썬앤문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과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도 부담이다. 그를 따르는 대다수 인사들은 5·6공 출신이다. 그들은 대부분 당무감사에서 C-D급으로 분류된 인사들이다. 잘못하면 ‘반개혁’ 세력으로 몰려 몰살당하기 십상이다.

    최대표측도 이런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 주류측이 이들의 탈당설에 대해 냉소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대표의 측근 K씨는 “신당은 명분도, 구심점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비주류가 당을 박차고 나가면 제2의 민국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 전 대표측은 “1985년 신민당 돌풍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부담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서 전 대표측은 일단 당내 투쟁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서 전 대표측은 의원과 지구당위원장 5분의 1의 서명을 받아 연석회의를 소집, 집단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독자적인 연석회의 개최는 원내ㆍ외 지구당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양분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비주류 의원은 “최대표가 연석회의를 거부하면 대표직무정치 가처분신청을 내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주류가 지도부 퇴진을 전제로 조기 전당대회를 소집하면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럼에도 최대표측은 물갈이 방침을 확고하게 밀고 나갈 계획이다. 김문수 당 외부인사영입위원장은 1월4일 통화에서 “그동안 내세울 만한 거물급 인사들이 입당을 보류했지만 이제는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며 물갈이 공천에 자신감을 보였다. 최대표도 비주류 각개격파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최대표는 일부 공천심사위원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교체하거나 중립적 인사들을 충원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또 이회창-서청원 직계 라인과 영남 출신 등 비주류 내 다양한 세력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표는 이 전 총재가 1일 예산에서 만난 H씨에게 3일 두 차례 전화를 걸어 “공천파문 진화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H씨는 4일 귀경한 뒤 운영위원들을 차례로 만나 집단행동을 자제해달라며 파문 진화에 적극 나섰다. 당권을 놓고 벌이는 전·현직 대표 간 한판승부가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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