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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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위험 언론이 뻥튀기

‘홍콩 바이러스와 같다’ 줄줄이 오보 … 정부는 광우병 관련 미국산 소 유통경로도 파악 못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1-07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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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류독감 위험 언론이 뻥튀기
    ”닭고기 빼고 조리해주세요.”(손님)

    “익히면 다 죽는데 꼭 그래야 되나요?”(주인)

    요즘 음식점에서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다. ‘익혀 먹으면 조류독감에 감염될 위험이 전혀 없다’는 정부의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닭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03년 12월10일 처음 발견된 조류독감은 닭고기 가격과 음식점 매출을 바닥까지 떨어뜨렸고, 국내 오리·닭고기 가공업체들도 어려움에 처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각 소비자단체 등 민관이 함께 나서 닭고기 소비를 촉진해보지만 소비자들의 닭고기 경계심은 쉬 풀리지 않는다. 2003년 12월27일 이후 감염 의심신고가 전혀 없어 ‘조류독감이 진정국면에 들어갔다’는 정부 발표(1월2일) 이후에도 이런 불신은 여전하다. 도대체 이런 ‘근거 없는’ 불안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조류독감 인체 유해 여부 미국측에 의뢰 … 결과는 1월 말에나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쉬 믿지 않는 이유는 조류독감 발생 초기 언론에 보도된 잘못된 정보가 뇌리에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오보(誤報)는 “국내에서 발견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1997년 홍콩에서 6명의 환자를 사망케 한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동일하다”는 내용.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할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발견된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 유해 여부는 아직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은 국내 조류독감의 인체감염 가능성 자체를 희박하게 보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조류질병과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발견된 조류독감, 즉 조류 인플루엔자는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H5N1)의 ‘고병원성’ 가금 인플루엔자로 가축전염성 바이러스일 뿐”이라며 “홍콩에서 발견된 인플루엔자와 똑같은지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국내 14곳의 조류독감 발생지역에서 인플루엔자에 폭로된(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검사 결과, 신체적 이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현재로서는 이 인플루엔자가 인체 감염을 일으킬 확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역원의 설명. 실제 문제가 된 ‘H5N1’ 계열 바이러스는 홍콩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인체에는 무해하고 조류에게만 감염을 일으킨 종류가 더 많았다.

    국내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 여부와 그 피해 정도의 확인은 현재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 맡겨진 상태다. 국립보건원은 첫 조류독감 발병 확인 즉시 이곳으로 샘플을 보냈으나 그 결과는 1월 말에나 나올 예정. 그런데도 국내 일부 언론은 조류독감이 홍콩의 조류독감과 같은 계열이라는 사실만으로 조류 인플루엔자를 ‘홍콩의 조류독감과 똑같은 바이러스’라고 연일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국내 조류독감, 인체에 치명적’이라며 대놓고 오보를 남발했다. 정부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했다. ‘익혀 먹으면 전혀 해가 없다’는 홍보문구도 따지고 보면 국내 조류독감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체 유해 여부를 판가름하는 곳이 농림부 산하의 검역원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보건원(이하 보건원)이라는 사실이다. 보건원은 왜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일까?

    보건원이 나설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인체 유해 여부를 자체적으로 밝힐 시스템이나 인력, 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원 바이러스부 한 연구원은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 유해실험에는 인체와 비슷한 족제비를 이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실험에 쓸 족제비를 구하기도 어렵고, 연구시설과 인력도 확보돼 있지 않다”며 “전 세계적으로 이를 실험할 수 있는 기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CDC는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기관이라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CDC는 최근 광우병 파동을 일으킨 미국의 정부산하 기관인 만큼 한국의 닭고기 파동에 우리만큼 답답할 리 없다. 충북 음성군에서 처음 조류독감이 확인된 시점은 12월13일, 일반적으로 인체 유해 여부를 판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바이러스 배양기간 등을 포함해 길게 잡아도 한 달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CDC는 보건원에 “1월 말은 되어야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더 늦어질 수 있다”고 통보했다. 결국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 또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가 조류독감 바이러스 실험결과 통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류독감 위험 언론이 뻥튀기

    검역 당국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 회수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유통경로를 알지 못해 전량 회수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보건원측은 “발생률이 극히 낮은 전염 질병의 인체 감염여부 확인을 위해 고가의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것은 예산낭비”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조류독감은 비록 ‘약병원성’이지만 96년 첫 발생 이후 매년 발생 빈도가 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집중 발생지역이 홍콩과 중국 광둥성 등 우리나라 인근에 몰려 있다. 홍콩에서는 지난해 1명을 포함해 97년 이후 조류독감으로 7명이나 사망했다. 심지어 이들 지역의 조류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위험을 반영하듯 검역원에는 질병연구부 산하에 조류질병과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보건원은 ‘돈이 들고 희귀한 질병’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건강을 남의 나라 사람 손에 맡겨둔 셈이다.

    그렇다면 미국산(워싱턴 주) 소의 광우병(소해면상뇌증) 파동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먹는 사람의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광우병은 소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데다 죽은 후에도 두개골을 절단하고 뇌 속의 연수부를 꺼내 검사해야 하는데, 이미 가공된 상황에서는 연수부가 어디인지 식별하기 곤란하다. 때문에 국내 검역, 수입단계, 나아가 식품 유통과정에서 광우병 소를 골라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광우병의 인간 전염(인간광우병·VCJD)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수입 소의 부위별 유통경로를 정확히 확보해 더 이상의 유통을 금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 검역당국은 각 부위별 수입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검역원 검역검사과 한 관계자는 “소의 각 부위 중 직접 광우병을 일으키는 특정위험물질(SRM) 전체 수입량은 나와도 그 부위별 수입량은 따로 계측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부위별 유통경로를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광우병 파동을 치른 일본은 국산뿐만 아니라 수입 소의 각 부위별 유통상태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지 오래다. 이에 반해 우리 농림부는 현재 시스템 개발은커녕 최근 두 달간의 미국산 소의 수입업체를 찾는 데도 고역을 치르고 있다.

    문제는 미국산 수입 소의 부위 중 특정위험물질 각각의 유통 경로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살코기는 현재 국제수역사무국과 세계보건기구가 광우병에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논외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입 소의 부산물로, 소의 뼈와 골(뇌)을 포함해 소의 신경계가 거쳐가는 척추와 내장 전부를 가리키는 특정위험물질은 말 그대로 광우병을 직접 일으키는 위험 부위. 순대와 곱창전골, 내장탕, 수육 등으로 창자와 골을 즐겨 먹는 우리 국민의 식습관을 미루어볼 때, 또 시장과 음식점에서 팔리는 이들 식품의 대부분이 수입 소의 그것을 이용한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광우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프리온 담백질은 끓여서 제거되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특정위험물질에 속한 소의 부위를 취급하는 음식점들이 대부분 영세한 데다, 이를 공급하는 도매업소도 신고를 하고 소의 부산물을 취급하는 곳이 드문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림부는 수입업체가 보유 중이던 특정위험물질을 봉인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미 도매점과 소매점까지 유통된 물량은 거의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 워싱턴 주에서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쇠고기는 1만8856t에 달했고, 그중 최근 두 달간 수입된 특정위험물질은 985t이었다. 나머지 열 달치는 수입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과연 국민은 누구의 말을 듣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우리 국민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조류독감과 광우병 그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무지’와 ‘무대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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