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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北 당숙과의 실망스런 만남

  • 이태동 / 서강대 교수·영문학

北 당숙과의 실망스런 만남

北 당숙과의 실망스런 만남
산골아이였던 나는 유년시절을 오늘날과 같이 핵가족이 아닌 대가족 속에서 보냈다. 그래서 도시에 살고 있던 당숙이 형도 삼촌도 없는 나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당숙은 D시에 살고 있었는데 방학 때만 되면 큰집이 있는 시골로 내려와서 여름이나 겨울 한철을 함께 보내면서 나에게 형이나 다름없는 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나는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욱이라는 이름의 큰 당숙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분이 시냇가에서 동생인 작은 당숙과 함께 내게 개구리헤엄을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갈색 바윗돌 위에 앉아 여운형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혁명가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 D시의 K중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던 그분은 우리 가문의 우상이자 영웅이었고, 내게는 언제나 피를 끓게 하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내가 소년으로 자라서 D시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 갔을 때 당숙은 서울로 가고 없었다. 그후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 신비스런 모습은 간데없고 체제 선전뿐인 노학자

지금 생각하면 조숙했던 당숙은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좌익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에 그분은 내게 결코 공산주의자는 될 수 없었고, 다만 황홀하고 위대한 존재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당숙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북으로 갔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분의 어머니는 얼마나 아들을 그리워하셨는지, 돌아가실 때 둘째아들에게 남겨놓은 당신의 목걸이 상자 속에는 열아홉 살 때 찍은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당숙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던지, 북으로 갔던 당숙은 죽지 않고 살아 계셨다. 지난 늦은 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북한에서 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그분의 동생과 두 자매, 그리고 큰집 조카인 나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나는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빗속을 뚫고 대한적십자사로 달려갔다.

그러나 평양에서 온 당숙을 금강산 기슭 장전항 부근의 한 휴게소에서 만났을 때, 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칠순이 넘은 당숙에게는 내가 유년시절부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는 낯선 ‘북에서 온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서울을 떠나 속초까지 와서 하룻밤을 보내고 배멀미까지 해가며 하루 종일 뱃길을 따라 자신을 찾아온 우리들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기보다 북한에서 받은 박사학위증과 훈장을 내보이며 김정일 장군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당숙의 변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체제 선전에 전력을 다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너무나 당황했다. 북으로 가서 지금까지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온 결과 얻은 불감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감상(感傷)에 물들지 않으려는 사회주의 학자의 위엄과 근엄성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당숙이 불과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북으로 가서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과학원 교수가 됐다는 사실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숙이 생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갖기보다는 경직된 이념의 도구로 얼룩져 있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더욱이 우리가 금강산에서 욱이 당숙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우리는 욱이 당숙을 세 차례 만났다) 칠순이 넘은 당숙은 주먹을 쥐고 팔을 흔들며 북에서 온 다른 노인들과 함께 통일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차마 지켜보고 있기 딱하고 서글픈 모습이었다.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기계적으로 팔을 흔들어대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어릴 때 내게 혁명가를 가르쳐주며 어린 내가슴을 그토록 알 수 없는 흥분 속으로 몰아넣었던 감동적인 욱이 당숙의 모습이 아니었다.

만일 당숙의 어머니가 살아서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셨다면, 겉으로는 좋아하셨을지 모르지만 아들의 변한 모습으로 인해 속으로는 꽤나 절망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욱이 당숙은 분명히 그분의 어머니의 목걸이에 담고 다녔던 그 옛날의 순수했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그리움과 만남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욱이 당숙과의 만남은 나에게 너무나 큰 절망이고 좌절이었다.



주간동아 413호 (p100~100)

이태동 / 서강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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