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2003.10.09

‘182개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0-02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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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개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다
    지구를 입양한다고? 웬 뚱딴지 같은 소리. 그러나 ‘지구 입양 프로젝트’는 1990년대 영국에서 지구의 일부분, 특히 땅의 일부분을 공동구입(입양)해 지속적으로 돌보고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자연 및 문화유산 보호운동)이 퍼져 나가고 있지만 지구 입양 프로젝트는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엉뚱하지만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이런 아이디어는 또 있다. 자갈 가루로 지구를 구한다(땅의 광물성을 회복시킨다), 인생을 포트폴리오형으로 산다(예컨대 1년에 100일은 돈 버는 데, 100일은 글 쓰는 데, 50일은 좋은 일 하는 데 쓰고, 나머지 100일은 아내와 함께 보낸다), 무차별적인 선행과 넋 놓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행동을 한다(예컨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뒤에 오는 차 7대분의 요금을 내고 간다), 괴짜로 산다(1100명의 괴짜들을 인터뷰한 결과 보통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5~10년 더 오래 산다), 정치인에게 후원자들의 로고를 새긴 옷을 입으라고 한다(그러면 누가 정치인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 감 잡았을 것이다. ‘지구를 입양하다’라는 책에 실린 이 아이디어들은 모두 사소해 보이지만 실천이 뒤따른다면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혁신적인 것들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 완벽한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전략을 제시하며 누구라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사례별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온갖 뉴스가 주로 나쁜 소식만 전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긍정적이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주장들을 놓치고 산 건 아닐까.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일이 잘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었던 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182개의 아이디어는 새삼 그런 생각에 젖게 한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들이 반갑고, 신통해 보인다.

    이 아이디어들은 문화, 건강, 자기 다스리기, 공동체, 경제, 정치 등 거의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이 아이디어들을 창안한 사람도 이 책을 엮은 니콜라스 앨버리에서부터 이름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복잡한 문제들을 겪으면서 찾은 나름의 해법을 담은 것이다. 개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사소한 아이디어에서부터 지구의 운명을 바꿔놓을 전 지구적 차원의 아이디어까지 기발하기 짝이 없는 이 아이디어들은 순식간에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릴 만하다.



    앨버리는 1985년 동료들과 함께 ‘사회변화창안연구소’를 만들고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새롭고 상상력 풍부한 아이디어를 찾아 나섰다. 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독립센터, 지역위원회, 전문가 네트워크, 전국 경진대회 등 다양한 기구와 통로를 통해 그것을 실현해왔다. 이 연구소의 성공은 바로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뒤 인간적인 규모로, 이웃 공동체 같은 작은 단위에서 솜씨 있게 문제의 해법을 실행해나갔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최근 몇 년간 이 연구소가 실천해온 이러한 아이디어 가운데 중요한 것을 엄선해 담았다.

    공동체를 위한 아이디어 가운데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많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1977년 무하마드 유누스라는 이가 세웠다. 동료그룹을 이용한 대출방식을 도입해 성공한 이 은행의 제도는 극빈자들을 위한 ‘최고의’ 아이디어가 됐다. 브라질의 도시 포르투알레그레의 행정 당국은 원인불명의 극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집행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켰다. 그 결과 부패와 불필요한 자금 집행이 줄어 6만5000여 가구가 수돗물을 공급받게 됐으며, 교육받을 수 있는 학생 수도 두 배나 늘어났다.

    ‘사회변화창안연구소’는 ‘과학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어 초급 과학자들에게 의사들처럼 자기 일생의 업을 시작하기 전 윤리적 원칙을 선서하도록 했다. ‘나는 오직 인류와 지구와 모든 생명의 복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경우에만 내 기술을 적용하고자 애쓰겠노라.’ 저명한 과학자들이 여기에 서명했으며, 이중 노벨상 수상자도 18명이나 된다. 이 연구소의 지지자인 경제학자 커크패트릭 세일은 “원자폭탄을 만든 이가 이런 선서를 했다면 지금의 세계는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묻는다. 물론 여기에 나온 아이디어들이 ‘세계 최고’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이웃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아이디어임은 분명하다.

    니콜라스 앨버리 외 펴냄/ 이한중 옮김/ 북키앙 펴냄/ 524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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