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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시민과 함께 하는 아트벤치’展

예술품에 엉덩이를 붙여볼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예술품에 엉덩이를 붙여볼까

  • 미술계에서는 꽤 잘나가는 조각가들이 만든 아트벤치가 ‘예술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의 피곤한 허리와 다리, 그리고 머리를 쉬게 해줄 의자로 보인다.
예술품에 엉덩이를 붙여볼까

안규철의 ‘흔들리는 벤치’.

복사열로 뜨거웠던 서울 여의도 광장이 공원으로 변한 지 꽤 됐다. 아직 나무 그늘은 빈약하지만 잠시 쉬어가기엔 충분하다. 그 공원 끝, ‘한국 전통의 숲’이라 이름 지어진 곳에서 7월4일까지 ‘시민과 함께 하는 아트벤치’전이 열리고 있다.

완만한 커브의 나무 등받이에 등을 누이듯 앉으면 하늘이 보이는 ‘흔들리는 벤치’는 안규철의 작품이다. 화분에 꽂혀 한쪽 다리만 길게 자라버린 의자 조각으로 유명한 안규철은 언어와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답게 말 그대로 고정되지 않은 벤치(!)를 만들었다.

무미건조하고 비개성적인 삶의 상징으로 빈 의자를 자주 선택해온 손진아는 빛을 반사하는 금속 소재에 매우 장식적인 디자인을 한 의자 4개를 잔디밭에 놓았다. 평범한 야외공원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그의 의자들은 돌아볼 때마다 누군가-아마도 나 자신-가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라리오 갤러리 사장이자 작가인 CI KIM은 반도체 칩을 확대한 벤치를 설치하여 오피스 빌딩이 많은 여의도의 공간적 특성을 보여준다.

예술품에 엉덩이를 붙여볼까

CI KIM의 ‘드림 컴퓨터칩 벤치’. 구본주의 ‘대박벤치’. 손진아의 ‘Face-space’.(위 부터)

또 유머러스한 작업을 해온 구본주는 예의 금속으로 된 돼지 모양 벤치 ‘로또돼지’를 전시한다. 밥공기 두 개를 엎어 만든 돼지의 웃는 눈을 보며 잠시 눈을 붙이면 돼지꿈이라도 꿀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 이재효, 한진섭, 최기석을 포함하여 모두 13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한 벤치들을 설치해놓았다.

특별히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원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공원 잔디밭과 길가에 13개의 벤치가 놓여 있을 뿐이므로. 이 전시의 미덕은 바로 이런 점이다. 미술계에서는 꽤 잘나가는 조각가들이 만든 아트벤치가 ‘예술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의 피곤한 허리와 다리, 그리고 머리를 쉬게 해줄 의자로 보인다. 이 벤치들은 공원에 설치되어 의자로서 기능하면서 사람들의 미감을 자극하고 의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미학적 오브제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아트사이드의 큐레이터 신지현씨는 “예술이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원 안의 여러 가지 물건 중 사람과 물체가 대화하고, 직접 관람자의 몸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자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환경조형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도시의 빌딩 앞에 뜬금없이 대형 청동 모자상을 세우는 것 같은 행위가 얼마나 반문화적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좋은’ 환경조형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다.

획기적 발상의 디자인 ‘감탄 절로’

‘아트벤치’전을 포함하여 최근 전시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환경 전시들은 ‘좋은’ 환경조형물에 대한 실천이자 실험인 셈이다. ‘아트벤치’전은 환경조형물을 논의할 때 우선 논의돼야 할 것은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이지 조형물의 형태적 가치나 계몽적인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전시가 열리는 ‘한국 전통의 숲’ 한가운데에는 기존의 환경조형물, 즉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이 세종대왕상은 공원 면적이나 주변 나무의 키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억지스러워서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큐레이터 신씨는 전시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벤치가 놓여질 공원을 섭외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예술작품’임을 아는 공원관리소측으로서는 야외에 값비싼 물품이 있다는 게 영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관리상의 이유 때문이겠지만 전혀 다른 컨셉트를 가진 13개의 벤치가 너무 좁은 구역 안에 모여 있고, 그래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주간동아 390호 (p80~8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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