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계의 이색도시 ⑦ |프랑스 아를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 글·사진/ 아를=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빈센트 반 고흐 초상화. ‘론강의 별밤’(작은 사진 위부터)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 바람, 코발트 빛 하늘, 오래된 3층짜리 붉은 기와집들, 로마시대 원형경기장과 고대극장, 그리고 예술가들….

남프랑스의 휴양도시 아를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과 비제의 가곡 ‘아를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고흐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115년 전 고작 15개월에 불과했고 아를은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지만 지금은 고흐를 통해 이 도시가 더욱 빛나고 있다. 고흐 때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만 연간 수십만명에 이를 정도.

고흐가 아를을 찾은 이유는 태양 때문이었다. 고흐에게 아를의 햇볕은 자신의 영혼을 고무하고, 화풍에 생기를 불어넣을 유일한 횃불처럼 여겨졌다. 28살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화가를 꿈꾸기 시작한 고흐는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청산할 필요가 있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단도 필요했다.

1888년 2월20일 고흐는 아를에 도착했고 곧 이 한적한 도시에 동화돼 갔다. 봄이 오자 고흐는 들로 나갔다. 꽃이 만개한 과수원과 아름다운 아를의 여인들, 압생트를 마시는 쾌활한 사람들, 위험한 코뿔소를 닮은 사람들과 수비대의 알제리 사람들이 그를 즐겁게 했다. 고흐는 자신이 작품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동생 테오에게 자신감 넘치는 편지를 보냈다.



고흐 작품의 3분의 1 이상이 아를서 탄생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12세기에 건립된 성 트뢰핌 수도원 입구의 조각물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다. 여기서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고흐는 이곳에서 전 생애의 작품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300여점을 그렸다. 화풍도 이전의 어두운 분위기를 벗고 밝은 색채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를의 공원 입구’ ‘해바라기’ ‘밤의 카페’ ‘아를의 도개교’ ‘정신병원의 정원’ 같은 주요 작품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관광객들의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110년 전 고흐가 이젤을 놓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고흐가 작품에 담았던 풍경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 아를시는 그런 장소에 고흐의 그림을 새긴 돌비석을 세워놓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예컨대 고흐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은 지금 미디어센터로 바뀌었지만 정원은 ‘정신병원의 정원’ 그림을 토대로 복원돼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라는 이름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별이 빛나는 론 강변, 도개교, 밤의 카페, 투우경기장도 작품 속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거나 유지되고 있다.

관광객을 열광케 하는 또 하나는 고흐의 드라마틱한 일화다. 고흐는 이곳에서 자신의 귀를 자를 만큼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고, 그 대가로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했다. 그래서 아를 시내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에선가 고흐가 화구를 들고 툭 튀어나올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고흐 탄생 150주년을 맞아 아를시는 올해 말까지 다양한 고흐 관련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반 고흐 재단의 협조로 7월5일에서 10월12일까지 고흐 작품 원본 20여점이 아를 시내에 장기 전시될 예정이다.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아를 시내 전경. 원형경기장 주변을 지나가는 관광객. 시내 중심가에 있는 말라르트 노천 카페(위부터).

현대와 중세와 고대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아를은 면적 698km2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코뮌(자치단체)이다. 인구는 약 5만명. 이 가운데 3만2000명 정도가 도시 중심부에 산다. 주요 산업은 관광이며, 여기에 종사하는 인구는 전체의 30% 정도이고, 연간 관광객은 200만명 정도. 특히 부활절 기간(목~일요일)에 50만명이 몰려들어 이때는 모든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를 시내를 구경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작지만 단정한 아를역에서 내려 봉고차를 타고 시내 중심가인 불바르 드 리스의 관광안내센터(ⓘ 표시가 있다)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직원으로부터 볼거리와 주요 행사들을 전해 들은 다음 도시 지도를 얻어 들고 나온다. 안내센터 길 건너편 말라르트 노천 카페에 가면 아침부터 포도주 풍류에 빠진 이들이 제법 눈에 띌 것이다. 거기에 동참하는 것도 좋고, 맥주 한 잔(3유로)이나 오렌지 주스 한 잔(3유로)으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 길을 나서도 좋다. 어차피 아를은 ‘지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도시다. 볼거리들은 다 가까운 데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한나절이면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시골 아저씨처럼 생긴 에르베 시아베티 아를 시장은 이 도시의 매력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빛, 전통, 유적, 카마르그, 투우.

고흐를 우울에서 해방시킨 그 맑고 투명한 햇볕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를역 앞 카발레리 성곽 입구에서 중국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누엔 반 푸씨(57)도 햇볕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아내가 햇볕을 좋아해서 3년 전에 파리에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파리에서는 열심히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데 이곳에서는 천천히 일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채 봄이 오기도 전에 따뜻함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든다. 아를에는 연중 2800시간 정도 태양이 빛나고, 그 빛을 찾아 사진작가들도 앞 다투어 이곳을 찾는다. 해마다 7월 초면 국제사진축제가 열리는 것도 그런 연유다. 사진작가들을 유혹하는 것은 빛뿐만이 아니다. 수백, 수천년 된 아름다운 유적들과 자연의 풍광이 사진작가들의 시선을 단박에 그 시대로 이끈다. 아를에는 64곳의 국보급 역사 유적지가 있다. 1981년 이 유적들은 모두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아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6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곳을 전략도시로 선택하면서부터. 로마인들은 아를을 발견한 뒤 더 이상 북쪽으로 진출하기를 포기할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했다. 지금도 고대극장, 원형경기장 등 로마시대의 유적이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극장은 기원전 1세기에 지어진 로마시대의 반원형 극장이다. 지금은 기둥 2개와 토대, 관람석이 쇠잔해진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관람석과 무대를 만들어 지금도 여름이면 국제사진축제, 영화제, 민속축제 등 각종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고대극장에서 4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원형경기장(Arenes)은 기원전 90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 도시의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이다. 건물 외부는 60개의 2층 아치로 이뤄져 있으며, 1만20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다. 중세에는 이 경기장 안에 집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18세기에 경기장 안팎의 건물들이 정리되고 원형을 복원했다.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아를은 투우의 도시이기도 하다. 투우축제 기간에는 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원형경기장에서는 지금도 1년에 수차례 투우 경기가 열려 아를을 투우의 도시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를의 투우는 스페인의 투우와 달리 소를 죽이지 않고, 소의 뿔 사이에 달아놓은 장식을 잡아채는 방식이다. 아를의 투우축제는 1830년에 시작됐고, 지금도 해마다 4월 중순과 6월, 9월, 10월이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5만명 이상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투우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를은 유난히 스페인 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다. 투우 외에도 플라멩코 음악과 춤을 즐기는 이들이 많고, 쌀 야채 어패류 등을 함께 찐 스페인식 파엘라(paella)도 유명하다.

아를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소는 기독교인들의 공동묘지 알리스캉(Les Alyscamps)이 아닐까. 입구에서 1.5km 떨어진 교회까지 가는 큰 길가에는 플라타너스 등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나무들 사이로 석관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맑고 높은 소리의 카나리아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곤 하고,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독특한 장소인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고흐는 이곳에서 네 점의 작품을 그렸다.

잘 보존된 고대 유적·투우 경기로도 유명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적으로는 12세기에 건립된 성 트뢰핌 수도원 건물이 손꼽힌다. 3세기 무렵 아를에 기독교를 전파한 수호성이자 주교인 성 트뢰핌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성당 문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는데 조각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당 맞은편에 서 있는 클래시컬한 양식의 시청 건물은 1657년 건립돼 지금도 시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요즘 한창 외관을 보수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고흐의 예술혼’

아를 시내에는 고흐의 작품 속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밤의 카페’ ‘정신병원의 정원’ ‘알리스캉’의 사진(위)과 그림(왼쪽부터).

잠깐 눈요기만 하고 떠나는 관광객들이 아를의 전통적인 면모를 발견하기란 사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운 좋게 방문일정과 축제기간이 맞물리면 전통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주요 축제로는 부활절축제, 3년마다 5월 첫째날 아를의 여왕을 뽑는 가디언축제, 7월의 아를축제, 9월의 쌀수확축제가 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 라마르탱 광장과 토요일 아침 불바르 드 리스 거리에서 열리는 번개시장에서 전통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아를 시내에서 자동차로 30여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카마르그는 아를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비옥한 삼각주다. 면적 930km2의 거대한 습지인 이곳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어 지역공원으로 보호받고 있다. 카마르그에는 지중해에서 가장 긴 23km의 모래밭도 있다. 프란신 리우 아를시 관광청 소장은 “요즘 이 아름답고 신화적인 지역의 생태를 관광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아를의 밤거리를 지키는 노랗고 푸르스름한 가로등들이 켜져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고대 건물들 사이로 비추는 가로등이 만드는 정취는 일품이다. 이 느낌은 고흐의 ‘밤의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흐는 이곳에서 돈 많은 감식가의 마음만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예술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소박한 예술을 갈망했다.

그러나 고흐는 아를에서 행복한 생활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 전날 고흐는 발작증세를 일으켜 자신의 귀를 잘랐고 얼마 뒤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병원을 나와 파리로 갔다가 오베르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 1890년 7월30일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작품 하나하나에 불꽃 같은 정열을 담아 격렬한 필치와 눈부신 색채의 예술을 창조한 고독한 고흐의 말로는 그처럼 비참했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단 두 점밖에 팔지 못했던 이 비운의 화가는 100년 뒤인 지금은 전 세계인들의 추앙을 받는 위대한 화가로 거듭났다. 아를도 그 덕분에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요즘의 막대한 관광수익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아를은 철저하게 고흐의 유적을 복원해놓았고, 정부 차원의 지원도 계속됐다.

앙드레 말로는 문화부 장관 재직시 아를 시내에 집을 지을 경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도록 했다. 개인이 집을 지으려면 건설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고, 로마시대의 유산인 붉은색 기와지붕을 통일하도록 하는 등 아를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이 쌓여 지금의 아를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화가나 작가, 음악가의 도시가 있었던가, 예술의 도시로 뭇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가 있었던가, 새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간동아 390호 (p74~77)

글·사진/ 아를=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16

제 1316호

2021.11.26

“삼성전자 승부수는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합병”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