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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누가 ‘택시기사’를 찔렀나

최모군 복역중 김모씨 진범 논란 가열 … 초동수사 잘못 아무도 처벌 못할 수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그날 새벽 누가 ‘택시기사’를 찔렀나

그날 새벽 누가 ‘택시기사’를 찔렀나

지난 2000년 8월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한 전북 익산시의 ‘약촌오거리’.

”살인범이 뒤바뀌었다고? 말도 안 되지. 사법부를 바보로 여기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 안 해.”(익산시 한 경찰)

한 해에만 수만 건의 형사사건이 일어나는 만큼 진범이 뒤바뀌는 일도 흔치는 않지만 가능한 일. 그러나 요즘 같은 때에 살인범 같은 중대한 범인이 뒤바뀐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피의자는 검찰과 경찰의 10여 차례에 가까운 조사와 심문 과정을 거치게 되고, 가족과 변호사, 종교인 등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재판장에서 1심과 2심을 통해 항변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고하여 자신의 무죄를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3년 전 전북 익산시에서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일이 일어났다.

2000년 8월10일 오전 2시30분경, 전북 익산시 영등동 한적한 주거지, 세칭 ‘약촌오거리’라 불리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택시기사 유모씨(42)가 얼굴과 오른쪽 어깨 주위에 10여 차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후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 유씨는 사건 직후 무전을 통해 “약촌오거리, 강도야!”라고 소리쳤다.

사건 초기 전형적인 택시강도 사건인 데다 늦은 시각에 발생해 목격자가 없어 험난한 수사가 예고됐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사건 발생 3일 만인 8월13일 경찰은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최모군(검거 당시 15세)을 범인으로 지목한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최군은 목격자로 경찰에 불려왔다. 그는 사건현장 주위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K다방의 커피 배달원이었던 최군이 택시 앞을 지나다 택시기사로부터 “똑바로 운전하라”는 욕설을 듣자 앙심을 품고 택시를 추격하여 멈추게 한 뒤 갖고 있던 칼로 운전기사 유씨를 찔러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에선 “말도 안 되는 일”



예상보다 사건이 빨리 해결됐지만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최군은 횡설수설하다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사건 한 달 뒤에는 순순히 형사반장에게 ‘거짓말로 힘들게 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편지까지 보냈기 때문. 최군은 1심에서 15년형을 언도받았다가, 죄를 뉘우친 점이 참작되어 2심에서는 10년으로 감형되어 현재 천안교도소에서 2년 10개월째 복역중이다.

범인의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빼곤 특별할 게 없는 이 사건은 그러나 3년 만인 올 6월3일 바로 이웃한 군산경찰서에 의해 반전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산경찰은 지난해 9월 이후 익산시 거주자로 추정되는 미해결 택시강도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력반 형사들이 접한 소문은 전혀 다른 종류의 택시강도 얘기였다. 2000년 여름의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진원지에는 살인을 했다는 김모씨(22)를 숨겨준 김씨의 중학교 동창 임모씨가 있었다. 경찰에 불려온 임씨는 날짜는 기억 못했지만 비교적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당시 집 앞에서 옷에 피가 묻은 채 땀에 젖어 있는 친구 김씨를 만났고 그의 가방 속에 피가 묻어 있는 칼이 들어 있는 것도 봤다. 당시 밖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를 10일간 내 방에서 지내게 했다.”

임씨는 2001년까지 이 사실을 비밀로 해왔으나 시간이 지나자 차츰 경계심이 사라져 조금씩 주위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자랑했고 결국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경찰은 진범으로 의심되는 김씨를 6월5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임씨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면서 김씨에게 자백을 권했다. 김씨는 체념한 듯 의외로 순순히 당시 사건 경위를 진술했다.

“2000년 반소매 옷을 입고 다닐 무렵, 본드와 부탄가스를 마시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친구 임씨 집 근처에서 미리 준비한 식칼을 택시기사 목에 들이대고 금품을 요구했다. 그러나 운전기사가 반항하며 뛰쳐나가는 바람에 뒤에서 몇 번 찌르고 임씨의 집으로 도망쳤다….”

사건현장에서 임씨의 집까지는 300m 정도.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 있다. 그러나 48시간이라는 긴급체포 시효 안에 사건 발생 후 3년이 흐른 사건의 증거를 찾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범행 당시 사용한 흉기와 착용했던 옷은 이미 사라졌고, 지문은 일치하지 않았다. 단지 김씨가 살던 집의 화단에서 그가 버린 칼을 봤다는 집주인의 진술만이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날 새벽 누가 ‘택시기사’를 찔렀나

동일 사건을 두고 행정구역상 이웃한 경찰서가 서로 다른 범인을 지목하고 나섰다. 과연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 불거지는 의혹들

사건 당시 최군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사건 직후 피해자가 “택시강도야!”라고 소리쳤던 것을 생각하면 운전 중 시비 끝에 벌어진 참극이라고 설명한 경찰의 결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상처 자국도 논란이 됐다. 시신의 오른쪽 부위에 칼자국이 생겼기 때문에 당연히 택시강도가 뒤에서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군이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찾아내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었다. 경찰이 찾아낸 칼은 혈흔이 나오지 않아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따라서 정황증거와 자백만이 유일한 범행 증거로 제시됐다.

2000년 9월 당시 최군은 경찰과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경찰에 보낸 편지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내용이었고, 이는 곧장 법정 증거물로 활용됐다. 증거 부족으로 고민하던 경찰로서는 호재였던 셈. 그러나 어머니에게 보낸 최군의 편지에는 “어머니,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제가 안 그랬어요”라고 절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게 상반된 내용의 편지가 왜 조사 대상이 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 익산경찰서 가혹행위 논란

결국 논란의 핵심은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최군은 “구 익산경찰서 지하 강력반 옆 숙직실에서 수갑을 찬 채 몽둥이로 맞았다”고 비교적 구체적인 상황을 밝히며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익산경찰서 형사들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살인범 할애비가 와도 이제는 못 때려요. 이런 조그마한 동네에서 폭력경찰이라고 소문나면 경찰 못해요….”

사건 당시 익산경찰서에 근무했던 한 경찰은 “범인이 뒤바뀔 수는 있겠지만 가혹행위로 범인을 만들어 사법부를 속일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사실 재판 기간 내내 순순히 죄를 인정한 최군의 행동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익산경찰이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는 논리는 따로 있다. 당시 최군을 조사할 때 최군의 몸에 멍자국이 있었다는 것. 경찰은 몸의 상처에 대해 물었고, 최군은 다방 주인에게 맞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곧장 다방 주인을 입건했다. 익산경찰서 강황수 수사과장은 “만일 경찰이 진짜 가혹행위를 했다면 그 다방 주인을 입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건의 향방

법조계 인사들은 이 사건이 소년범이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에 형량이 적어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지 않고 감내한 특이한 케이스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방기한 재판부와 형식적인 국선변호인 제도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군산경찰서는 진범으로 의심되는 김씨의 당시 행적을 뒤쫓는 등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만큼 사건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김씨는 집으로 돌려보내진 이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우선 확정판결을 받은 최군의 재심청구 수용 여부가 관건이다. 만일 당시 시신의 상태에 대해 명확한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물증이 없는 최군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석방될 가능성이 크다. 김씨 역시 당시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 진술을 부인한다면 무죄를 인정받을 가능성도 있다.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박순진 교수는 “이 사건은 경찰의 잘못된 초동수사로 인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인범인 줄 알면서도 아무도 처벌하지 못한 제2의 이태원 살인사건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주간동아 390호 (p50~51)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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