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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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날리고 골탕 먹고 기가 막히고

교육정보화 7년 교단 고통만 키워 … 학생 인권 ‘나 몰라라’ 진행 ‘NEIS대란’ 촉발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6-19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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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날리고 골탕 먹고 기가 막히고

    NEIS로 갈까, 그냥 SA로 할까. 97년부터 줄곧 SA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온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NEIS 채택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1997년 생활기록부 전산화 프로그램(SA·Stand Alone)이 학교에 들어왔다. 쓸데없는 인력낭비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저장과 보관의 편리함 등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2년도 채 안 되어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Client Server)이 등장하면서 교사들은 누구를 위한 교육정보화인지 묻게 됐다. 교사의 잡무가 늘어난 것은 차치하고라도 전문가도 다루기 힘든 서버 운영과 한 달에 몇 차례씩 반복되는 프로그램 수정은 가뜩이나 힘든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심지어 데이터를 통째로 날려 처음부터 다시 입력하는 일도 있었다. 학교마다 담당자들 사이에서 때 아닌 눈치 전쟁이 벌어졌다. 다른 학교가 시행하는 것 봐서 잘 되면 따라 해야지.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느 정도 그 괴로움에 적응이 되어가던 2002년 여름, 또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엊그제까지 무차별 시행되던 CS시스템이 종말을 고한 것이다. 몇 달 전에야 CS 서버와 소프트웨어가 보급되어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학교도 있는데 말이다. 새롭게 등장한 괴물의 이름은 바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이었다.

    인천 B초등학교 구원모 교사는 2002년 여름 느닷없는 NEIS 시행통보를 받고 어리둥절했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해 기존 생활기록부 데이터를 모두 CD에 담아 교육청에 제출하라’, ‘여름방학 동안 연수를 받고 그 내용을 다른 교사들에게 전달하라’ 등 무차별로 날아드는 공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보담당 교사들 “분통 터진다”

    원래 2002년 9월 NEIS를 시행하기로 했던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도 정보유출 가능성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교육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본격 시행 시기를 2003년 3월로 늦추는 데 합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반대의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교육부가 ‘정보인권’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뒤로한 채 시스템 보완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각급 학교에 CS에서 NEIS로 바꿀 것을 지시, 3월 시행을 밀어붙이면서 파란이 일었다.

    전교조는 현재 NEIS를 거부하고 정보시스템 운영개선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기존 CS 또는 SA 수준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NEIS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고 CS에 대한 보안체계 강화를 권고했다. 사실상 CS로의 복귀 선언이었다. 그러자 각급 학교 정보담당 교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CS로의 복귀시 모든 업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년간 교육정보화로 인해 고통받은 교사들의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교육정보화의 출발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발표된 ‘5·31 교육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의 다양화·정보화가 제시됐고, 한결 복잡해진 대학입시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 학생들의 교과별 성취 수준 및 석차, 행동발달 사항 등을 입력할 수 있는 종합생활기록부 전산화가 요구됐다.

    하지만 97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해 급조된 생활기록부 전산화는 시행 첫해부터 오류 소동을 일으켰다. 첫해 실시된 전산화란 교육부가 배포한 생활기록부 프로그램에 고3 담임들이 성적 등을 입력해 디스켓에 담고, 교육부는 전국 70만명의 수험생 정보를 다시 CD에 담아 대학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CD와 학생부 사본을 대조한 결과 석차, 주민등록번호 등에서 오류가 발견돼 소동이 벌어졌다. 원인은 단순히 교사들의 입력 착오였으나 오로지 대학입학 전형자료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전산화를 시행한 교육부의 졸속행정도 불만의 표적이 됐다.

    “96년에 썼던 프로그램은 웬일인지 한 해만 사용했다. 이듬해 SA가 들어왔고 고3 담임들에게 PC가 한 대씩 지급됐다.”(서울 Y고 심재호 교사) 심교사는 97년 여름 SA가 도입되면서 학교에 교육정보부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고 말한다. 정보담당 교사들의 고달픈 삶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SA는 담임용 프로그램(SA는 담임용과 관리자용 프로그램을 각각의 PC에 설치하는 시스템이다)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어느 날은 저장이 안 되다가, 어느 날은 불러오기가 안 되고 하는 식이었다. 개발자인 한국정보공학 홈페이지 Q&A 게시판에는 날마다 수백건씩 오류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답변은 ‘기능을 보완중이다’ ‘패치파일을 만들었다’가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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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기록부 전산화 프로그램인 SA가 보급된 후 각 학교마다 교육정보부가 탄생했다

    정보담당 교사들이 SA와 씨름하고 있을 때 교육부에서는 이미 CS사업이 시작됐다. 사실 SA는 CS사업의 일환으로 보급된 임시 프로그램이었다. 교육부는 학교별 클라이언트 서버에 교사들의 PC를 연결하는 CS시스템 도입과정에서, 우선 생활기록부 전산화 보완프로그램인 SA를 보급했다. 한국정보공학은 96년 교육부의 CS사업과 SA사업권을 동시에 따냈다.

    CS가 시행되면서 각급 학교에 대당 1300만원 하는 서버와 400만원짜리 소프트웨어가 보급됐다. 그러나 교사들의 업무부담과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같은 회사가 개발한 CS도 오류가 적지 않았기 때문. SA에서 CS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없어지고, 한 달에 몇 번씩 나오는 패치파일을 받는 도중에 데이터가 사라지는 등 지난 5년 내내 교사들을 ‘미치게’ 했다. 심지어 2001년 8월 CS시스템 종료 순간까지도 CS가 작동하지 않아 결국 1300만원짜리 서버를 컴퓨터실에 모셔놓은 채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SA만 사용해온 학교도 있을 정도였다.

    개발업체와 교육부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CS로 단련된 교사들이 직접 ‘버그 잡기’에 나섰다. 충남 장항고 정보문 교사도 그중 한 사람으로 CS 관련 상담 개인 홈페이지(tsdb.co.kr)를 개설하고 ‘이곳은 마지막에 들르는 곳입니다’라는 문패를 달았다.

    “교육부에서 내려보내는 프로그램의 버그는 끝이 없고, 심지어 CS 2.7패치의 경우 개발자조차 손을 들 만큼 악명이 높았다. 그런 2.7패치를 깔지 못해 도와달라며 울고불고하는 대전의 한 중학교 선생님, 초보운전자이면서도 서버를 들고 안개 낀 밤길을 달려와 패치를 해간 선생님. 그 난리를 치르고 2001년 6월 교육부 차원에서 2.7패치 지원단이 구성됐다. 그러나 개발업체에서 버그가 그대로인 2.7패치를 가지고 와서 연수를 하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업체에서는 교사들이 서버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왜 교사가 드라이버를 들고 엉망인 프로그램을 고치면서 무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

    한마디로 SA나 CS나 영원한 미완성이었다. 검증이 안 된 시스템이 학교에 보급된 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식 수정을 거듭했고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퇴출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니 SA나 CS로의 복귀설이 돌자 교사들이 죽어도 못한다며 버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한국정보공학의 교육정보화 사업 독점에 의혹을 제기했다. 96년 당시 CS사업 제안서 평가위원은 모두 9명(교육부와 개발원 직원 4명, 교수·교사 4명, 민간대표 1명)이었으며 한국전산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이 민간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사업권을 따기 위해 15개 기업이 경쟁을 벌였으나 신생 벤처기업인 한국정보공학이 삼성, LG, 쌍용 등을 제치고 사업권자로 선정됐다. 문제는 그 후. 한국전산산업협동조합이 수의계약으로 SA사업권을 따내고, 이 사업권을 다시 한국정보공학에 재수탁하면서 ‘업체간 결탁’ 의혹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정보공학은 SA개발과 SA 보완·확장, CS 개발 및 보급 등 96년 말부터 2001년까지 교육부 정보화 관련 사업을 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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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교장단 모임인 `전국 국·공·사립초·중·고등학교 교장회장협의회의 이상진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5월29일 오전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사태와 관련해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01년 8월까지 무려 146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CS사업도 김대중 정부가 천명한 ‘전자정부’ 구현에 따라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게 자리를 내준다. 사업주체도 한국정보공학에서 삼성SDS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2001년 5월까지만 해도 기왕에 구축된 CS체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의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를 온라인으로 연결한다는 내용으로 대통령 보고까지 마쳤으나 2개월 후 돌연 ‘CS 중단, NEIS 채택’으로 변경된 것. 더욱 기가 막힌 것은 CS 폐기를 결정하는 순간까지도 각급 학교에 CS시스템이 계속 보급되고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새로운 NEIS사업을 위해 500여억원의 예산이 새롭게 책정됐다는 사실이다. 이미 확보된 예산이라 할지라도 단 몇 개월을 위해 시스템을 보급한 것은 혈세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또 무리한 일정으로 추진된 NEIS도 뚜껑을 열어보니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여름 교육부 추진팀, 삼성SDS 개발팀과 함께 NEIS시스템을 점검한 한 정보담당 교사는 “이 시스템을 이대로 학교 현장에 보급하면 기술적 결함 때문에 말 그대로 ‘NEIS대란’이 온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전교조, 교총 등의 반대가 이어지자 교육부팀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기분으로 NEIS 시행을 6개월 뒤로 연기했다.

    정보문 교사는 교육정보화가 지금처럼 누더기가 된 가장 큰 원인은 사업주체의 독점에 있다고 말한다. “CS가 그랬던 것처럼 NEIS도 특정 업체가 독점하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차라리 현재 정보담당 교사들 중에서 NEIS코딩의 버그와 불합리한 점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고 교사들이 정보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NEIS사업은 투명성 확보 외에도 ‘정보인권’이라는 큰 벽에 부딪힌 상태다. 심재호 교사는 교단선진화, 교육정보화를 외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인권이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NEIS에 집적된 정보뿐만 아니라 96년 이후 CD에 담겨 각 대학에 뿌려진 학생들의 정보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또 1981년 이후 교육부는 초·중·고 졸업생의 졸업대장과 2000여만명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신상정보를 입력해왔다. 과연 누구의 동의 아래 이런 정보를 축적했는가. 어지러운 교육정보화 7년이 남긴 의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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