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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무대학이 필요하다”

‘21세기 전문 세무인력 양성’ 토론회 … “합리적 稅政 첫걸음 국가 경쟁력도 제고”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새로운 세무대학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무대학이 필요하다”

경기 수원시 파장동 국세공무원교육원 전경(구 세무대학). 세무대학 졸업생들이 세운 상징탑(오른쪽)엔 졸업생들의 세무대학 재건 의지를 담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정부 공식통계를 기준으로 130조원을 넘어섰다. 2002년 말 현재 국가채무는 2001년 말보다 11조5470억원이 늘어난 133조6130억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말(65조6000억원)보다 103.7%나 증가한 수치다.

정부가 앞으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침체 가계부실 고령화 등에 대응하는 데 나랏빚은 적잖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국가채무 관련 정부 통계에 허점이 있다”며 “재정 악화가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채무가 급증하면서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세금과 조세행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복지를 늘리는 데 사용될 재정지출이 위축되지 않기 위해선 재정수입의 원활한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세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문 세무인력의 양성 또한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6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한국조세연구포럼 창립 3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도 △국가 재정수입의 안정성 확보의 중요성 △조세행정의 적정화·선진화 △국가 주도의 전문 세무인력 양성의 필요성 등이 핵심 이슈로 제기됐다. 세미나에서 한나라당 나오연 의원(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은 “국가 재정이 원활하게 확충돼야 하며 조세행정을 바로잡기 위해선 전문 세무인력을 양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무 정예요원 양성기관 전무



조세전문가들은 “행정의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세제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 조세행정의 개혁을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전문화한 세무인력이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21세기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국가 차원의 효율적인 인적자원 관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무행정에 필요한 납세자 조력인의 양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

“재정과 조세행정 인력 양성은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다. 따라서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해 세무인력을 양성하고, 필요할 때 적시에 채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진국 수준의 실무 정예요원 양성이 필요하다.”(국세청 남우진 조사관)

이처럼 전문교육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2000년 조세인력 공급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국립세무대학(이하 세무대학)이 폐교된 이후로 재정과 조세를 연구하고 납세자를 위한 조력인을 양성할 고등교육 기관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1980년 4월 전문 세무공무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세무대학은 2000년 8월 폐교가 결정되기 전까지 19회에 걸쳐 51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세무대학이 전문 세무인력을 교육하고 공급하는 요람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무대학이 필요하다”

6월 14일 열린 한국조세연구포럼 창립3주년 기념 세미나 장면.

세무대학엔 입학성적 기준으로 서울대 고려대 등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이 지원했다. 학비가 면제되고 졸업 후 바로 8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특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폐교 직전인 99년엔 전국 상위 1.4%(수능 성적 378점) 안에 드는 학생들이 입학했다. 세무대학 졸업생들은 2년 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후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관세청 국세청 등에 들어가 대부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세무대학은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돼 존폐가 논의되는 상황에 처한다. 당시 국세청은 “졸업생 전원이 특채로 임용됨으로써 인사적체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세무대학 폐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2000년 8월 세무대학설치법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세무대학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일반대학에서도 세무전문학과가 설치돼 있는 상황에서 학비면제와 특채가 다른 대학 출신들의 공직 기회 진출을 제한한다는 게 폐지의 논거였다. 그러나 세무대학이 재경부와 국세청 1급 공무원들의 밥그릇 싸움에 희생됐다는 지적도 많다.

세무대학 졸업생들은 그동안 세무대학재건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헌법재판소에 세무대학법률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는 등 세무대학 재건운동을 벌여왔다. 박옥만 세무사(세무대 1기·전 세무대학 동문회장)는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폐교된 곳이 세무대학과 간호사관학교인데 간호사관학교는 2001년 다시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면서 “세무대학 폐교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경희대 최명근 교수도 “20년간 축적된 세무인력 양성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세무대학을 폐교한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국가 주도로 ‘새로운 형태의 세무대학’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대학교육 시스템으로는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21세기 행정수요에 부응할 조세전문 인력을 확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획일적 잣대로 선발해 성적 순으로 각 부서에 배치하는 현행 고시제도 하에서는 사명감 있는 세무공무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성신여대 최창렬 교수는 “언제부턴가 관료들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전진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혹평까지 듣고 있다”면서 “현행 고시제도는 공무원 사회를 기수와 연공에 의해 철저히 구별 짓고 외부인의 진입을 차단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엘리트 집단의 하나인 공무원 집단을 가장 폐쇄적인 조직으로 전락시켰다”고 꼬집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재경부에 제출한 ‘비전 2011년 최종 보고서’에서 “현행 공무원 채용방식(고시)은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행정 수요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으나 정책수요가 선진국 수준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현행 고등고시제도를 없애고 정부 부처의 수요에 따라 고급 공무원을 상시 채용하는 개방형 임용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6월14일 한국조세연구포럼 세미나에서도 고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전문 세무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선 “국가가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의 4년제 세무대학이 세워져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21세기 행정수요에 부응하는 전문 세무인력 양성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전문 세무인력 양성을 위해선 새로운 세무대학을 만드는 방식으로 소수 정예의 4년제 국립대학을 세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과거의 세무대학보다 입학생 숫자를 줄이더라도 세무교육기관은 다시 세워져야 하며 전문 분야별로 학과를 개설해 세계적인 조세교육 요람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창렬 교수는 세미나에서 “과거의 세무대학과 달리 수업료는 교육소비자가 지불하는 형태의 대학 모델이 바람직하다. 과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100% 특채제도를 없애고 졸업생들의 20%만 공직에 진출시키면 부작용도 없을 것이다. 현재로선 학부가 되든, 대학원 중심 대학이 되든 새로운 세무대학을 세우는 형식이 조세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국세청 남우진 조사관도 논문 발표를 통해 “새로운 체제의 세무대학이 설립되면 조세행정인력의 원활한 공급이 가능할 뿐더러 외국의 주요 세무대학과의 상호교류 등을 통한 조세 관련 학문의 발전도 가능하고, 합리적 세정이 이뤄져 국가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97년 재경부는 중견 세무공무원을 양성하고 세무회계 전문인력을 산업계에 배출하기 위해 세무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승격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세무대학 설치법 개정안’을 마련했었다. 당시에도 △4년제 대학으로의 개편 추진 △학비의 유료화 △공직임용 추천 제한 등의 방안이 논의됐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무대학의 설립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있다. 세무대학의 폐교 논리가 아직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는 것. 세무공무원 출신인 고광복 용인송담대 교수는 “일반 대학에서 충분히 세무 관련 지식을 가르칠 수 있고 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온 사람도 재교육해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버팀목은 자유와 재산이다. 자유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이고 신체의 자유를 가장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경찰이다. 세금은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근간인 사유재산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국가 운영 수단이다. 최근 폐지 논의가 나온 경찰대학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세무대학. 아마도 이 두 대학의 존폐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자유와 재산의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390호 (p40~4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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