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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좁은 문 미국

‘비자 장벽’ 쌓는 미국, 갈 수 없는 나라?

8월1일부터 일부 제외 비자 신청시 인터뷰 의무화 … “미리 받아두자” 美 대사관 주변 북새통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비자 장벽’ 쌓는 미국, 갈 수 없는 나라?

‘비자 장벽’ 쌓는 미국, 갈 수 없는 나라?

발급 절차가 대폭 강화되는 8월 이전에 비자를 받으려는 신청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주한 미 대사관 비자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사진은 미 대사관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 영사과 내부.

여중생 사망 1주기 촛불집회로 광화문 미 대사관 주변이 온통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 6월13일 오후 3시경. 광화문 앞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주한 미 대사관 2층 영사과 사무실 직원들은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는 비자 신청 서류를 처리하느라 또 다른 ‘초긴장’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6월 들어 미국 비자 신청 건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예년 이맘때 하루 2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던 미국 비자 신청자는 올 6월 들어 최고 하루 3600명까지로 늘어났다. 비자 신청자가 80%까지 늘어난 것이다. 6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사관 비자 신청 및 접수 창구에는 비자 신청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비자 발급을 위한 인터뷰 창구 역시 100여석의 대기석에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루 최고 3600명 신청 … 인터뷰 일정 잡기도 어려워

4~5월 두 달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영향으로 실종돼버리다시피 했던 해외여행 수요가 되살아나고 있는 데다 방학을 맞아 미국 어학연수 및 유학 관련 비자 신청을 위해 미 대사관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 들어 미국 비자 신청자가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는 8월1일부터 미 국무부 방침에 따라 비자 신청 및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8월1일부터 전 세계 221개 국가 공관을 대상으로, 미국 비자 신청자들 중 16세 미만 청소년과 60세 이상 노인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터뷰를 거쳐야만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미 대사관에서 인터뷰 절차를 거치는 사람은 전체 신청자의 30% 정도에 불과했다. 업무상 출장이나 유학을 떠나는 나머지 대부분의 신청자는 미 대사관에 등록된 상장회사 추천 프로그램(BRP)이나 대학 추천 프로그램(URP)을 통해 인터뷰 없이 비자를 발급받아왔다.



‘비자 장벽’ 쌓는 미국, 갈 수 없는 나라?
그러나 미 국무부가 발표한 새로운 비자 발급 절차에 따르면 이러한 인터뷰 면제 조치들이 대부분 폐지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여행사가 비자 발급을 대행해오던 여행사 보증 프로그램(TARP)도 없어진다. 기업인들의 업무 출장에 적용돼오던 BRP가 없어질 경우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주한 미 대사관측은 워싱턴측에 ‘예외 인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상태다. 결국 인터뷰가 면제되는 것은 16세 미만과 60세 이상의 신청자 중 일부. 고령자들에 대한 인터뷰 면제 연령 또한 55세에서 60세로 대상자가 줄어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업계를 중심으로 “8월부터는 비자를 받기 위해 인터뷰 날짜를 잡는 데만도 3~4개월씩 걸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너도나도 미리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6월 들어 이미 비자 발급을 위한 인터뷰 날짜를 잡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소의 2~3일에서 일주일 정도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미 대사관 주변에 위치한 비자 전문업체인 새한상사 이한미 실장은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힘들어진 것뿐만 아니라 비자가 배달되는 기간도 길어졌다. 과거 같았으면 인터뷰를 마친 후 2~3일 만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1주일이 지나도 비자를 받지 못했다는 문의전화가 많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정은 대기업 주재원, 유학생들은 물론 단순 관광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 비자 발급 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는 세중여행사 관계자는 “8월 이후 비자 관련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 달 이상씩 기다리다 보면 출장 기일에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이전에 미국 비자를 받아놓으려는 신청자들이 6월 들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비자 수속 전문대행업체인 비자뱅크 이철 팀장도 “5월 말부터 비자 신청자들이 2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특히 가족 단위 신청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미국행 관문이 더 좁아지기 전에 5년 또는 10년짜리 비자를 받아놓으려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최근 이러한 광경은 사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 국무부의 비자 관련 인터뷰 의무화 조치는 미국 공관이 나가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한다. 9·11 테러 이후 외국인 입국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한 것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에 대한 ‘2차 저지선’을 강화한 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오는 8월부터는 미국 정부가 비자 발급 단계에서부터 ‘1차 저지선’을 치고 나서는 것이다.

‘비자 장벽’ 쌓는 미국, 갈 수 없는 나라?

미국 비자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미 대사관 인터뷰 창구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비자 발급 대행업체들은 6월 들어 비자 발급에 소요되는 기간이 평소에 비해 두 배 정도 길어졌다고 전한다. (위 부터)

최근 미국 정부는 전 세계 주요 항구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주요 화물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에 자국 세관요원을 직접 파견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학이나 출장뿐만 아니라 영주권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종업원 수 10~20명의 중소기업 종사자라고 하더라도 주재원 비자(L-1)를 받아 미국에 들어간 뒤 영주권을 신청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다국적기업 관리자’로 주재원에 대한 해석이 엄격해지면서 주재원 비자로 영주권을 신청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비자 기간 연장 요청이 거부되는 바람에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한인 밀집지역인 뉴저지주 이민 전문 최형준 변호사는 “과거에는 이민 당국이 영주권 신청 자격요건을 광의로 해석했다면 지난해 말부터는 문맥 그대로만 해석해서 엄격하게 적용하는 바람에 신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미국의 이민 문호가 좁아지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 의회 내에서 반(反)이민 분위기가 고조되고 반이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미국 사회 전체가 외국계 이민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족 초청을 통한 이민을 제외하고는 점점 미국 이민의 관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미이주공사 최재성 회장은 “현재 70개소나 되는 이주공사들 중 40군데는 최근 2년 반 동안 생겨났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영주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이주공사들이 머지않아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불법체류 등의 사유로 추방되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에서 추방당한 한국인 숫자는 2000년 259명, 2001년 263명 수준이었으나 9·11 테러 이후인 2002년 들어 7월에는 예년의 두 배 수준을 넘어선 52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외교부 전영욱 영사과장은 “9·11 이후 다소 멍한 상태에 있었던 미 의회와 영사 당국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인 입·출국에 대한 구체적 보완조치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한국인 추방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이후 자국의 빗장을 단단히 걸고 나오는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자 관련 인터뷰 의무화는 그래서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의 중간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10월부터는 아예 지문이나 눈동자 같은 생체인식정보를 담은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에 한해서만 입국을 허용한다는 법안이 이미 지난해 5월 미 의회를 통과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문은 이제 이민자들에게 점점 ‘좁은 문’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미국행 게이트에는 초록빛 비상구 불빛만이 희미하게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다.





주간동아 390호 (p10~12)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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