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2003.05.15

“으악~ 축구공만한 코끼리 똥 치우라고”

우리 청소·사료 관리 등 눈코 뜰 새 없는 하루 … “동전 던지거나 동물 놀리지 마세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5-07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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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악~  축구공만한 코끼리 똥 치우라고”

    서울대공원 사육사 일일체험에 뛰어든 송화선 기자가 서준원 사육사와 함께 물소 우리를 청소하고 있다.

    “고향이 어디예요?”

    “서울인데요.”

    “서울 사람들은 삽질을 그렇게 하나. 과천에서는 안 그래요. 자, 한 손으로 대를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는 손잡이를 움켜쥐어야지…. 그래, 그렇게. 다시 해봐요.”

    하늘은 끝없이 높았고 바람은 산들산들 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나는 서툰 삽질을 하고 있었다. 축구공만한 코끼리 똥을 옮기다 문득 바라본 하늘은 너무 맑아 가슴이 아렸다.

    동물원 사육사 일일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건 사실 충동적이었다. 바야흐로 봄 아닌가. 게다가 월초부터 휴일이 줄줄이 늘어선 5월이었다. TV에서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동물원 풍경을 보다 무릎을 쳤다. 저곳에 가보면 어떨까. 이 찬란한 봄날, 놀지도 못하고 일 속에 묻혀 지내는 이들. 동물원 사육사들을 만나 하루 동안 함께 일하며 그들의 일상과 고충을 스케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잘하면 덤으로 동물원 구경까지 실컷 할 수 있겠구나 싶자 그보다 더 좋은 취재거리는 없을 것 같았다.



    서울대공원 홍보팀의 강형욱 주임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라”며 “사육사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확실한 일정을 짜주겠다”고 장담했다. 청소는 코끼리사에서, 관람객 정리는 유인원관에서, 그리고 먹이 주기는 인공포육장에서 해보라는 것이다. D-day는 관람객이 몰리는 5월1일, 노동절이었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에게 “원숭이 밥 주러 간다” “코끼리 똥 치워본 적 있느냐”고 자랑을 해댔다.

    그러나 오전 8시, 코끼리사 앞에 서면서부터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감이 적중했음을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물원 구경 실컷 환상 … 수레 끌다 ‘똥밭’에 구를 뻔

    “그쪽이 기자예요? 혼자 왔어요? 이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육사들은 나를 한쪽에 세워둔 채 “오는 사람이 여자라는 얘기 들었느냐”고 수군거렸다. 기자가 사육사의 하루를 체험하러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들은 당연히 건장한 남자를 상상했던 것이다.

    “얼마나 일 잘하나 보려고 코끼리사 청소는 손도 안 댔는데 할 수 있겠어요?” 마침내 대동물관 사육사 중 가장 고참급인 임준오 사육사(50)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육사들은 매일 아침 6시 반에 출근해 동물원이 문을 여는 9시 전까지 우리를 청소한다. 관람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을 지키며 안전사고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청소할 짬을 낼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사육사들의 눈에는 ‘과연 저 친구가 제 시간에 일을 마칠 수 있을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식 키우는 노력과 정성 … 인공포육으로 야성 잃을까 걱정

    광활한 야외 우리에 널려 있는 코끼리의 배설물을 보자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불안해졌다. 그것들은 너무나 많았고, 엄청나게 무거웠다. 나는 일단 그 물체를 삽 위에 얹기 위해 끙끙거려야 했다.

    삽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초보 일꾼의 헛손질이 계속되자 결국은 사육사들이 함께 삽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똥이 가득 찬 일륜 수레를 끌고 가다 옆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깨끗이 치워놓은 우리는 다시 ‘똥밭’이 되어버렸다. 그 위에 뒹굴 뻔한 것보다 더 속상한 건 내가 오히려 일을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으악~  축구공만한 코끼리 똥 치우라고”

    태어난 지 28일 된 아기 재규어 재오가 한효동 사육사의 품에 안겨 우유를 먹고 있다(위). 경력 40년의 베테랑 이길웅 사육사가 다섯 살 난 오랑우탄 보배를 안고 간식을먹이고 있다. 보배에게 이 사육사는 친아버지나 다름없다.

    서준원 사육사(31)가 어깨가 축 처진 기자가 안쓰러웠던지 “나도 처음에는 여러 번 쏟았어요. 금방 요령이 생길 겁니다”라며 위로했지만 이미 ‘동물원 체험’의 들뜬 기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지만 사육사들의 애환을 취재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늘 위로 햇살이 퍼져가는 걸 느끼며 분주히 똥을 퍼담고 수레를 끌었다.

    청소를 마친 후에는 사료를 광에 쌓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열흘에 한 번씩 있는 사료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사육사들은 전천후다. 우리 청소와 사료 관리, 관람객 안전 보호까지 동물원에서 해야 하는 거의 모든 일이 이들의 손을 거쳐간다. 25kg짜리 사료를 수차례 번쩍 번쩍 들어올린 후에는 코끼리들에게 건초를 주어야 했다. 너무 지친 때문일까. 단단히 다져진 건초다발은 사료보다 더 무거운 것 같았다. 스무 다발의 건초를 창 밖으로 던지는 게 코끼리사에서의 마지막 임무였다. 건초를 끌어안고 한참 씨름하고 있는데 한 사육사가 “점심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5월1일은 서울대공원 창립기념일. 대공원에서는 매년 이날 지난 1년간 죽어간 모든 동물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지낸다. 사육사들은 낮 12시에 열리는 위령제에 함께 가자고 했다.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닭, 토끼와 다른 이유로 죽어간 동물들을 기리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모여든 사육사들과 함께 제를 지내고 음복을 했다.

    점심시간이 왔다는 건 이제 코끼리 사육장 체험이 끝났다는 걸 뜻했다. 오후에는 유인원관과 인공포육장을 갈 참이었다. 서울대공원 유인원관의 이길웅 사육사(61)는 40년 이상 유인원만 키워온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육사. 그는 다섯 살 난 오랑우탄 ‘보배’의 간식시간에 기자를 데리고 들어가주었다. 보배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키워준 이 사육사의 품에 안겨 요구르트를 먹으며 살짝살짝 기자를 돌아봤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처럼 수줍은 모습. 사실 ‘오랑우탄’은 말레이시아말로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에서 나갈 때 보배는 어느새 기자에게 익숙해졌는지 털이 없는 손바닥을 살짝 내밀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의 손은 서늘하고 부드러웠다.

    오후에 다시 유인원관으로 오기로 하고 먹이를 주기 위해 이번에는 인공포육장으로 향했다. 인공포육장은 아직 관람객들에게 공개하지 못하는 갓난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 이곳 사육사들은 짐승에게 젖을 먹이고, 닦아주며 키우는 ‘엄마’다. 한효동 사육사(39)가 작은 방의 문을 열자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이제 태어난 지 28일째 된 재규어 ‘재오’와 아기 캥거루 루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육사는 재오에게 우유를 먹인 후 조심스레 그 녀석을 기자에게 건넸다.

    “배를 쓸어서 트림시키고 성기를 톡톡 두드려 이 수건에 소변을 보게 해요.”

    그러나 재오는 손에 감은 수건을 제쳐둔 채 서툰 사육사의 바지 위에 오줌을 갈겨버렸다.

    “아이고, 이 녀석들은 저항력이 약해서 깨끗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 옷 코끼리사에서 똥 치울 때도 입었던 거 아니에요? 저런, 그 위에서 재오가 뒹굴고 있네.”

    바로 핀잔이 날아왔다. 나는 먼지를 깨끗이 털고 손은 비누질까지 해서 닦았다고 말했지만 사육사들은 재규어의 오줌을 맞은 나보다 더러운 바지 위에 앉아 있는 재오를 더 걱정하는 듯했다. 맞다. 이 녀석은 사육사들의 아들이고, 나는 고작 일일 자원봉사자가 아닌가. 서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재오의 온몸을 마사지해준 다음 발톱을 깎는 사육사를 위해 재오를 움켜잡았다. 발톱을 바싹 깎다가 상처가 나 피가 흐르자 재규어는 채 돋지 않은 작은 이를 드러내며 사육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손등을 물려고 달려들기도 한다. 아직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생명 안에도 맹수의 본능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녀석이, 사람의 손에서 우유를 받아 먹으며 자란 재오가 과연 강하고 멋진 재규어가 될 수 있을까. 김권식 사육사(32)는 인공포육장의 동물들을 돌보며 가장 걱정하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사람의 손을 탄 동물들의 야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바람은, 지금은 보호가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이 녀석들이 건강하게 자라나 언젠가는 자신에게 달려들 수 있는 진짜 동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애가 어릴 때는 똥을 싸든, 아프든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이 녀석들이 설사병에 걸리면 곁을 떠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게 사육사예요. 이 녀석들은 정말 내 새끼죠.”

    한 사육사가 캥거루 루루를 안고 말했다. 루루는 인공포육장에 왔을 때 고작 1.18g, 말 그대로 손톱만했단다. 젖이 나오지 않는 어미의 배주머니 안에서 죽어가고 있던 녀석은 이곳에 온 후에도 한참 동안 앓아 사육사들의 속을 태웠다. 그러나 지금 루루는 어느새 2360g. 태어날 때보다 2000배나 커졌다.

    인공포육장의 사육사는 한 사육사와 김 사육사 둘뿐이다. 하루에 여섯 번씩 밥을 먹는 아기 동물들의 식사를 챙기고, 젖병을 삶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둘 다 집과 인공포육장만 오간 세월이 어느새 6개월째.

    “밖에 나갈 일이 없어요. 꽃이 피었는지 비가 오는지 잘 몰라요. 관람객이 많으면 아, 오늘이 일요일인가 보다 하죠.”

    “으악~  축구공만한 코끼리 똥 치우라고”

    서울대공원에서는 매년 5월1일 죽어간 동물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

    김 사육사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유인원관으로 갔다. 이번에는 사육사들이 청소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해야 하는 관람객 통제를 위해서다. 요즘 동물원에는 4월5일 벌어진 물소떼의 어린이 공격 사고 여파로 비상이 걸려 있다. 사육사들은 안전사고를 방지하느라 초긴장 상태. 하지만 73만여평, 3400여 마리의 동물이 사는 서울대공원을 지키는 사육사는 75명뿐이다. 이들은 사료를 챙기고, 축사 청소를 하는 사이사이 관람객들을 지켜봐야 하는 업무 부담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유인원관 입구에 섰다. 아까 만났던 보배와 같은 오랑우탄들이 유인원관에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바깥 우리에 있는 동물들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멍한 눈을 한 채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을 뿐이다.

    한 떼의 여고생들이 들어와 멍하니 앉은 오랑우탄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은박이 붙은 풍선을 흔들어댄다. 드디어 오랑우탄이 흥분했다. 자기와 관람객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판을 거세게 내리친다. 잠시 ‘꺄악~’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던 학생들이 이제야 재밌다는 듯 다시 다가선다. 반응을 보이는 오랑우탄이 살아 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학생들은 더 열심히 풍선을 흔들고 동물을 놀린다. 이길웅 사육사에게 꼭 안겨 자꾸 뺨을 비벼대던 수줍은 보배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내방송 무시 오랑우탄 살아 있는 장난감 취급

    “오랑우탄 앞에서 풍선 흔들지 마세요. 동물들이 놀랍니다. 거기 가까이 다가선 학생들 물러서세요. 패널 두드리지 마세요. 뒤로 물러서요!”

    결국 학생들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느냐”고 항의하며 우루루 유인원관을 떠나버렸다. 그들에게는 동물원의 안내방송이 시끄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어차피 내 돈 내고 들어온 동물원인데 “다가서지 마라, 과자 던지지 마라, 일일이 제지하며 제대로 못 보게 하는 건 뭐냐”고 속으로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보배가 다시는 인도네시아의 열대림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다시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해도 보배에게는 자신을 ‘갖고 노는’ 인간들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정도의 권리는 있는 게 아닐까.

    위령제에서 만난 한 사육사의 말이 떠올랐다. “2001년 12월 죽은 잔점박이 물범을 잊을 수 없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부검을 해보니 뱃속에서 동전이 126개나 나왔거든요. 동전 무게가 560g이나 됐어요. 그것들이 위에 부담을 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은 거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동물에게 동전을 던지지 말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사람들은 재미로 동전을 던져 넣는다. 특히 항상 입을 벌린 채 있는 악어는 이런 관람객들의 주된 표적이 된단다. 한 사육사는 악어사 앞에서 10분을 지키고 서 있는 동안 악어 입 안에 동전을 넣으려고 던지는 사람을 12명이나 봤다고 말했다. “차라리 ‘와, 들어갔다!’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나아요. 동전을 던져 넣은 후 소원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어요. 악어 입이 무슨 우물이나 불상 같은가 보죠. 그런 이들을 보면 내가 사람이라는 게 슬퍼질 때가 있어요. 속상하죠.”

    오후 7시, 유인원관의 개방이 끝났다. 사람들은 우루루 빠져나가고, 이제 나의 일일체험도 끝이 났다. 오늘 처음으로 바라보는 봄꽃 앞에서 비로소 뻐근한 어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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