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2002.12.19

치과의사들의 아름다운 실험

장애인 치료 위한 ‘스마일 복지재단’ 창립 추진 … 2개월 만에 100여명 참여, 기금 1억 마련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2-12-12 1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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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의사들의 아름다운 실험

    ‘장애인에게 환한 웃음을!’ 스마일 복지재단은 치아질환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린 장애인에게 웃음을 되찾아주자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의사 기금 단체다.

    12월4일 늦은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 앞. 한 정신지체 장애인을 휠체어에 태우고 온 40대 여성이 건물 2층의 치과의원 간판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어금니와 잇몸이 모두 썩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장애인 아들의 치료를 위해 어렵사리 치과를 찾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아들을 2층까지 데려갈 힘이 없었기 때문. 다행히 주위의 도움으로 2층까지 올라가긴 했는데 치과에선 “여기선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부터 쳤다. 이 치과엔 정신지체 장애인의 치아 치료를 위한 전신마취 시설이 없었다. 치과 원장은 대학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지만 그럴 경우 치료비와 마취비를 합해 수백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에겐 간단한 치과치료가 장애인에겐 이렇듯 험난하다. 대부분의 치과가 2층 이상에 있는 데다, 일반 치과의원의 경우 장애인용 특수 치료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특히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엔 전신마취 시설이 필수다. 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조금만 움직이면 예리한 치과기구에 혀를 잘릴 수도 있다. 전국 각 치과대학병원에는 장애인용 특수 치료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워낙 치료비가 많이 들어 이곳을 찾는 장애인은 극히 한정된 상황이다.

    개업의 참여 확산 … 내년 30억 목표

    치과의사들의 아름다운 실험

    구강 검진과 치료를 받고 있는 장애인

    때문에 장애인은 이가 썩어도, 잇몸이 상해도 치료받을 엄두도 못 낸다. 장애도 서러운데 먹는 즐거움까지 잃은 그들의 얼굴은 항상 일그러져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한 움직임이 치과의사 사회에서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이 움직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는 내년 1월 창립 예정인 ‘스마일 복지재단’(이하 스마일 재단). 일단의 치과의사들이 시작한 장애인 무료 치료 활동이 수천명의 의사가 참여하는 ‘장애인 복지운동’으로 성장했다. 이 재단에는 치과 학계는 물론 그동안 장애인 치료를 하고 싶어도 장비가 없어 하지 못했던 개업의들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다.



    스마일 재단은 기존의 무료 치료 활동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의사들이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해 장애인과 구강안면 기형아동의 치과진료를 지원키로 한 것. 그동안 무료 봉사활동에 나선 개인이나 소모임들은 많았지만 의사들이 직접 기금을 출연해 조직적인 장애인 복지재단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애인에 대한 치료비 지원도 대부분 일반인들의 몫이었지 의사들이 직접 돈을 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재단에는 기금 모금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이미 100여명의 치과의사가 참여해 1억원의 기금이 마련됐고(12월 현재), 내년까지 30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해 30억원의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마일 재단에 대한 치과의사들의 ‘참여 열기’는 참여단체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와 서울시 치과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열린치과의사회 등 치과 관련 모든 단체와 함께 전국 11개 치과대학병원이 모두 동참키로 했다. 대부분의 병원장들도 이 재단의 자문위원단으로 등록했다.

    스마일 재단의 시작도 작은 곳에서 비롯됐다. 지난 4월 장애인과 노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치료 활동에 나섰던 사랑나누기 치과의사회의 회원들이 ‘뜻은 있는데 길이 없어’ 고민하던 개업의들을 어떻게 하면 장애인 복지운동에 동참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복지재단’ 설립을 생각해낸 것. 이후 이들의 은사인 서울대 치대 임창윤 교수가 재단 추진위원장을 맡고, 경희대 이긍호 교수, 서울시 치과의사협회장인 이수구 회장 등이 추진위원으로 나서면서 많은 치과의사들이 복지재단에 참여했다.

    치과의사들의 아름다운 실험

    11월22일 스마일 재단 추진 계획안을 발표하기 위해 모인 치과 관련 단체 관계자들.

    임창윤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 치아질환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몇몇 의사의 무료봉사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재단 설립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구성된 스마일 재단 추진위원회는 먼저 장애인의 구강상태와 치료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과 경기지역 치과공보의 19명이 9월24일부터 10월7일까지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의 총 38개 특수학교 학생 959명을 대상으로 구강검사를 실시한 결과 충치를 앓고 있는 학생이 일반 학생들보다 60%나 많았으나 치료를 받은 학생은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특수학교의 장애인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장애인 시설이나 비인가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경우는 80% 이상이 실제 치과치료를 필요로 하지만 치료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는 각 시설에 치과치료를 위한 재정지원이 전혀 없는 데다 장애인용 특수 치료시설을 갖춘 치과는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 시설에는 충치 때문에 이가 다 빠지고 잇몸이 썩어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자폐증 환자 등 정신지체 장애인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치과치료 못 받는 장애인 수두룩

    스마일 재단은 내년 1월 창립총회를 열고 장애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전신마취 치료가 필요한 장애인 100명에게 우선 100만~200만원의 치료비를 보조하고, 악안면기형장애 아동이나 구강암 수술비로 5000만원, 장애인 단체 공동사업에 5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내년 지원금 규모로 5억원을 배정했다. 장애인들은 재단의 후원단체인 대학병원의 장애인 전문 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예정.

    스마일 재단의 목표는 장애인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장애인 구강보건 진료센터를 짓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진료센터를 마련해주면 운영비와 진료비 일체를 재단이 책임질 방침. 서울시 치과의사협회 이수구 회장은 “서울시가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며 만약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기업의 후원이나 재단 자체 비용으로 보건진료센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치과의사들의 아름다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스마일 재단의 시도가 시도에만 그치지 않기를 장애인들은 바라고 있다. (문의: 스마일 복지재단 02-461-7528, www.smilefund.org (12월24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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