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1

2002.11.28

가는 길 달라도 목표는 ‘뮤지컬 버전 업!’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1-21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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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초 뮤지컬 프로듀서 설도윤과 제작사 제미로가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의 내용은 내년 1월29일부터 3월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뮤지컬 ‘캐츠’가 공연된다는 것. 공연 시작이 석 달이나 남은 시점인 만큼 큰 뉴스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간담회장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공연계에서 ‘설도윤’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파워를 새삼 실감케 해주는 장면이었다.

    뮤지컬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연극의 한 부분에 불과했던 뮤지컬은 이제 음악, 무용, 연극 등 모든 공연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뮤지컬 시장의 이런 급성장에는 세 사람의 ‘실력자’들이 버티고 있다. 윤호진 에이콤 대표, 설도윤 전 제미로 대표, 송승환 PMC 프로덕션 대표가 그 주인공들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을 부쩍 성장시킨 장본인이라는 데에서 이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뮤지컬에 접근하는 세 사람의 방식은 판이하다.

    가는 길 달라도 목표는 ‘뮤지컬 버전 업!’

    설도윤이 수입해 내년 상반기에 공연하는 ‘캐츠’

    우선 설도윤의 경우를 보자. 7개월에 걸친 ‘오페라의 유령’ 공연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델라 구아다’ ‘캐츠’ 등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검증된 최고 수준의 뮤지컬을 연달아 국내에 수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신작 뮤지컬 ‘라 보엠’에 제작자 겸 투자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에 대한 비판도 없는 게 아니다. 몇 백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본고장 뮤지컬을 수입함으로써 한국의 창작 뮤지컬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그런 비판 가운데 하나. 대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 때문에 한국 영화가 고사하고 있다는 영화계의 주장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동안 뉴욕, 런던 등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오페라의 유령’ ‘캐츠’ 등을 서울에서 보게 된 관객들은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주역들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큰 작품이 자꾸 들어와야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시장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은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설도윤의 설명이다.



    설도윤이 완성도 높은 해외 뮤지컬을 한국에 소개하는 방식을 택한 반면, 11월15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신작 뮤지컬 ‘몽유도원도’를 공연하는 윤호진은 창작 뮤지컬을 고수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창작 뮤지컬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적 소재와 한국 음악을 담은 ‘메이드 인 코리아’ 뮤지컬을 가지고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신념으로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며 뮤지컬 ‘명성황후’의 뉴욕, 런던 공연을 강행했다.

    윤호진은 ‘몽유도원도’로 다시금 해외 무대를 노크할 예정이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장 눈앞에 있는 손익만을 생각한다면 (‘몽유도원도’ 같은 작품 제작은) 손해다. 남들은 ‘저 혼자 예술 하느냐’고 하지만 길게 보면 창작이야말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작업이다”라며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

    가는 길 달라도 목표는 ‘뮤지컬 버전 업!’

    윤호진이 연출한 신작 뮤지컬 ‘몽유도원도’

    한국 뮤지컬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윤호진의 도전은 어찌 보면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도전을 통해 윤호진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 ‘한국도 창작 뮤지컬을 제작할 만한 역량이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또 역사적 사실을 다룬 ‘명성황후’에 비해 남녀의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몽유도원도’의 경우는 해외시장 진출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제작사인 에이콤은 이번 초연에 캐나다와 일본의 공연기획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해외 진출을 타진할 예정이다.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윤호진의 반대편에는 송승환 PMC 프로덕션 대표가 있다. 송대표의 행보는 이들에 비해 보다 진보적이고 기발하다. 1997년 퍼포먼스극 ‘난타’를 제작한 그는 9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난타’를 ‘팔았다’. 축제이자 아트 마켓이기도 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온 각국의 공연기획자들에게 ‘난타’를 수출한 것. 국내의 어떤 공연기획자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이 방식은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여개국에 수출된 ‘난타’의 지난해 매출은 72억원, 이중 28억원이 순수익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00억원선.

    최근 ‘난타’는 대망의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했다. 브로드웨이의 뉴 빅토리 극장과 2003년 하반기중 5주간 ‘난타’를 공연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 송승환은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을 검증받으면 주당 6, 7만 달러 선이던 ‘난타’의 개런티가 10만 달러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승환은 한국의 ‘난타’ 공연에서도 아예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2000년 ‘난타’ 전용관이 서울에 문을 열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 여행사들을 방문해 “서울 관광 코스에 ‘난타’ 관람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현재 서울에 있는 두 곳의 ‘난타’ 전용관을 찾는 관객의 80%는 해외 관광객들이다.

    “한 작품을 상시 공연하는 체제로 가려면 내국인 관객만 가지고는 역부족이다. 서울 인구가 1000만이라고 해도 그중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은 소수다. 하지만 한국을 찾는 연간 550만명의 관광객은 어차피 한국에서 무언가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송승환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보는 관객도 대부분 관광객”이라고 설명했다.

    가는 길 달라도 목표는 ‘뮤지컬 버전 업!’

    내년 브로드웨이 진출이 확정된 송승환의 ‘난타’

    세 사람의 방식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답할 수 없다. 경제적 이득을 기준으로 한다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제작해 수출한 송승환의 손을 들어줄 수 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브로드웨이에 필적하는 수준의 무대를 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설도윤을, 그리고 한국의 창작 뮤지컬을 해외 무대에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윤호진을 높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화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성숙한다는 점이다. 윤호진 설도윤 송승환 이 세 사람은 한국 뮤지컬 무대에 바로 그 다양성을 제공했다. 이들이야말로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의 뮤지컬 시장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이자 한국 뮤지컬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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