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1

2002.11.28

조상묘 盧, 생가터는 李 ‘한 수 위’

김두규 교수 현장답사 등 통해 분석 … 무속인 출신 황후스님 “천기는 정후보 가장 앞서”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2-11-20 15: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1월2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부친 이홍규 옹의 하관식이 치러진 충남 예산군 예산읍 선영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인파로 붐볐다. 이후보의 유족과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지관들 때문에 기자들이 묘소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정도. 지관들은 유력 대통령후보의 부친이 어떤 땅에 안장돼 앞으로 그 자손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궁금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하관식이 치러지기에 앞서 이홍규 옹이 묻힐 자리를 놓고서도 지관들 사이에는 이미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이날 하관식장을 찾은 예산의 한 지관은 “마치 전국 지관들의 전당대회라도 벌어진 것처럼 온갖 풍수이론들이 난무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자신만의 비밀 명당 터에서 채취한 혈토(血土)를 포대에 담아와 이옹의 묘소에 그것을 넣어야 발음(發蔭)이 된다고 주장하는 지관이 있는가 하면, 수맥측정기를 들고 와서는 현재 잡은 자리는 수맥이 흘러 적당치 않다고 주장하는 수맥전문가들도 있었고, 패철을 보면서 어느 좌향(坐向)이 옳은지 논쟁을 벌이는 풍수가들도 보였다.

    조상묘 盧, 생가터는 李 ‘한 수 위’

    이회창 후보의 부친 이홍규 옹의 묘를 쓴 후 풍수 답사차 예산 선영을 찾은 지관들(왼쪽). 좌청룡의 지맥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철조망(오른쪽).

    이후보 선영은 별로 … 그렇다면 지금까지 생가 터 덕?

    지관들은 또 자신의 주장이 잘 먹혀들지 않자 각종 연줄을 동원하는 촌극도 벌였다. 한 지관팀이 몇 해 전 이홍규 옹의 가묘(假墓)를 잡아준 인연을 ‘무기’로 내세우자, 수맥전문가 팀은 이후보의 부인인 한인옥 여사가 자신들의 뒷배경이라고 맞받았고, 다른 지관팀은 이후보가 직접 보냈다며 ‘최우선권’을 주장했다. 결국 이후보의 8촌뻘인 이회운 예산군의회 의장이 ‘교통정리’해, 이후보측에서 보냈다는 조모 교수팀의 의견을 좇아 현재의 묏자리가 정해졌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예산의 지관은 “이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풍수계에서는 이 묘소 자리를 주관한 지관이 스스로 왕사(王師)가 된다는 욕심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비꼬았다.



    이후보 부친의 장례식이 있은 후 풍수계에서는 또다시 대권 풍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후보의 예산 선영은 장례가 치러진 이후에도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바람에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정도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경남 진영 선영 역시 사람들의 발에 치여 잔디가 윤이 날 정도로 반질반질해졌다. 다만 또 다른 유력 후보인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선친(정주영)과 조부모가 모셔진 경기 하남 선영의 경우 일반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어 고인들이 조용하게 잠들어 있는 편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둔 현재 유력 대선후보 3인의 선영과 생가 터는 풍수적으로 어떠할까. 풍수에서는 조상의 묘 및 자신이 태어난 생가 터가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역대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들의 권력욕과 풍수 명당론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권력과 풍수’(장락 출판사)의 저자 김두규 교수(우석대 풍수지리학)와 함께 후보들의 선영과 생가를 둘러보았다.

    먼저 이회창 후보의 가족 묘로 조성된 선영은 100여평 규모에 선대 조상들이 띄엄띄엄 묻혀 있는 형태다. 이 묘터의 주산은 차령산맥 줄기인 금오산으로 풍수상 금오탁시(金烏啄屍)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금오산에서 선영으로 이어지는 지맥을 도로가 끊어버려 명당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게 김두규 교수의 평.

    “이후보의 가족 묘는 금오산 기운이 차단됐을 뿐더러 지형상 금오산의 줄기에 포근히 안긴 형태가 아니라 그 등 쪽에 들어선 형국이다. 이런 위치는 풍수론에서 자신이 배반하거나 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사실 이후보 가족에게 발복을 가능케 한 선대의 묘도 이곳이 아니었다. 따라서 만약 이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 묘 터가 발음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이후보가 있게 된 것은 그가 태어난 황해도 서흥 생가 터 덕분이 아닌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교수는 이후보의 선영을 휘 둘러보면서 그의 생가 터를 확인해볼 수 없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 사이 10여명의 사람들이 떼 지어 이후보 선영에 나타났다. 풍수 답사차 온 팀들이었다. 이 팀의 리더 강환웅씨(현대풍수지리학회 회장)는 ‘풍수 제자’들에게 “이 터는 좌청룡 우백호 등 명당의 격국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만, 도로가 금오산의 기운을 차단해버려 기가 통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더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면서 10분도 채 안 돼 다음 답사지로 떠나버렸다.

    조상묘 盧, 생가터는 李 ‘한 수 위’

    평탄하게 펼쳐진 논밭을 내려다보고 있는 노무현 후보의 선영(왼쪽). 봉하산 아래 자리잡은 노후보의 생가는 기가 매우 강하다(오른쪽).

    이어 승합차를 몰고 온 또 다른 풍수팀이 이후보 선영 앞에 멈춰 섰다. 그중 한 명은 김교수의 저서 ‘권력과 풍수’에서 언급한 대목을 눈으로 확인해보는 듯했다. 좌청룡의 지맥이 훼손당할 것을 우려해 일제시대 때부터 난 도로를 철책으로 차단시켰다는 ‘비보(裨補)풍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후보의 선영을 뒤로하고 경남 진영의 노무현 후보 선영을 찾았다. 진영 명물 단감나무들이 가득한 산등성이의 양지바른 곳에 노후보의 부모 묘가 있다. 김교수는 노후보의 선영은 언뜻 보면 평범한 듯하지만 부모 묘 뒤로 이어지는 암괴(바위 덩어리)가 일품이라고 평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바위 덩어리들이 묘소 뒤를 호위하듯 둘러쳐져 있는 명당을 흔히 괴혈(怪穴)이라고 한다. 이렇게 묘소 가까이에 있는 바위는 후손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실제 노후보의 인생 역정을 보면 괴혈에 아버지(1980년 작고)와 어머니(1990년 작고)의 묘를 쓴 후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통령후보 등 화려한 정치 역정을 밟았다.”

    그러나 무덤을 중심으로 우백호가 유장한 반면 좌청룡이 짧은 게 흠. 이는 방계의 지원세력은 대단하나 실제로 자신을 직접 지원해줄 직계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무덤의 기운이 너무 강해 노후보에게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함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의 조상 묘 못지않게 태어난 생가도 강기(剛氣)와 살기(殺氣)를 띠고 있다. 김교수는 이 집터의 강한 기운 때문에 노후보의 맏형이 교통사고를 당한 대신, 기가 센 노후보는 그 기운을 받아 누렸다고 해석했다. 한편으로 생가를 보호해주는 봉하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김해, 창녕, 창원, 마산이 내려다보이는 영산(靈山)으로 꼽힌다.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장기표, 김병곤 같은 쟁쟁한 민주투사들이 배출됐다고 한다. 이곳 묘와 생가 터에 대한 김교수의 총평.

    조상묘 盧, 생가터는 李 ‘한 수 위’

    재벌가 묘소치고는 매우 평범한 정몽준 후보의 경기 하남 선영(왼쪽). 정후보가 태어났다는 부산 범일동 생가 터. 현재 카센터가 들어서 있다(오른쪽).

    정후보 선영 재벌가 묘소치고는 평범

    “세 후보 가운데 선영으로 본다면 노무현 후보가 가장 좋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너무 강한 기운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노후보에게 필요할 것 같다. 그의 운명은 이번 대선에 실패한다 해도 다음에 기회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의 생가 역시 역대 대통령의 생가 터와 매우 유사해 산자락 끝 집이면서 좌청룡 끝 집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경기 하남시 창우동에 모셔진 정몽준 후보의 선영은 재벌가의 묘소치고는 평범한 편. 선영이 주산인 검단산의 정기를 받고 있다고 일부 지관들은 얘기하지만, 이 묏자리를 잡아준 지관 S씨 역시 “조상들이 모셔진 선산이기 때문에 풍수에 관계없이 정주영씨가 이곳에 묻혔다”고 밝힌 바 있다. 명당 터이긴 하나 지맥이 제대로 뭉쳐 있는 곳에 묘지가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최근 정후보는 자신이 태어난 부산 동구 범일동 옛 집터도 찾았다고 밝혔다. 자신이 ‘부산 사람’임을 내세워 영남의 표심을 얻기 위한 행보로 해석되지만, 풍수적으로는 과연 어떠한지 현장을 둘러보았다. 정후보의 생가 터는 영화 ‘친구’의 촬영 현장 부근으로 현재 카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정후보는 1951년 이곳 8평짜리 철로변 기와집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 살았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풍수학을 연구하는 허찬구씨(전직 교사)의 말.

    조상묘 盧, 생가터는 李 ‘한 수 위’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서 열렸다. 추모객들이 구상 시인이 쓴 시비 제막을 마친 후 분향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또 철도와 나란히 간선도로가 나는 바람에 자연 지형이 이미 사라져버린 곳이라, 풍수적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만 1950년대에 이곳은 밤낮으로 차량과 사람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 때문에 “시끄러웠다는 기억만 있다”는 정후보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씨가 피난 정부 시절 이곳 교통부 벙커 귀퉁이에 살면서 자동차, 선박, 건설 등의 사업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가족들의 추진력과 근면성도 이곳에서 길러졌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해석에 따른다면 정후보의 경우 선영이나 생가의 기운을 제대로 누렸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그가 국민통합21의 대선후보로 나서기까지는 어떠한 영향을 받았을까. 기자는 “이번 대선은 지기(地氣)가 아니라 천기(天氣)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스님을 만나보았다. 일산에서 황룡사라는 사찰을 운영하고 있는 황후스님(속명 정정희)의 말.

    “정주영 일가가 묻힌 검단산은 풍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고, 이번 대선은 8대 명산에 깃든 산신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하늘 세계에서는 국운을 융성시킬 수 있는 인물 쪽으로 기운이 모이고 있고 그 대세는 꺾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천기 혹은 신기(神氣)를 논하는 황후스님은 원래 명성황후를 모신 무속인 출신. 그러다 200일간의 무문관(無門關)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후 불가에 귀의해 비구니가 됐다. 현재도 질병 치유력과 예언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불교 신자들이 그를 찾고 있는데, 3000배 수행을 해야 스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게 황룡사 관계자의 귀띔이다.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대표는 그의 부모 신위를 이 절에 안치시킬 정도로 황후스님과 인연을 맺고 있고,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과 기업인들도 황후스님과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주영씨가 사망한 후 그의 혼령을 위로하는 49재를 주관한 인물도 바로 황후스님이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정주영씨를 위해 49재를 지내는 동안 여러 번 그의 혼령이 나타나 정후보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해왔다. 지금 정주영씨는 자식을 위해 여러 명산의 산신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자식은 그런 걸 아는지나 모르겠다. 천기는 나라에 공을 세운 정씨 부자에게 와 있으나 그것을 누리고 못 누리고는 본인에 달려 있다.”

    황후스님은 정주영씨의 영혼과 대화한 내용을 시로 기록해 자신의 시집(‘신이 따로 없다’)에 싣기도 했다. 한편으로 황후스님은 8대 명산의 산신이란 그 산의 신령일 수도 있고, 그 산의 정기를 받은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말문을 닫아버렸다. 이를테면 정후보가 노후보를 비롯해 자민련 김종필 총재, 미래연합 박근혜 대표 등 ‘산 신선’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듯했다.

    대선을 한 달여 남겨놓고 있는 세 후보의 운명을 틀어쥔 열쇠는 무엇일까. 음택의 기운으로 보자면 노무현 후보가 가장 강하고, 생가 터로 보자면 여론조사상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로 기울 것이고, 천기로 따지자면 정몽준 후보가 가장 앞설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은 천기와 지기의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