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친환경 新문화 ‘녹색 결혼’ 뜬다

재생용지 청첩장·숲속 식장 등 아이디어 만발 … 혼수·예단도 대폭 간소화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2-11-08 12: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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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新문화 ‘녹색 결혼’ 뜬다
    ‘때는 4월5일 식목일. 결혼식 장소는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서울 인근의 야산. 하객들의 준비물은 나무 한 그루. 식은 신랑 신부가 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된다.’

    딜로이트 컨설팅 전산실에 근무하는 연제헌씨(29)가 생각하고 있는 결혼식 풍경이다. 서울 YMCA 간사인 김지영씨(28)와 내년 봄 결혼할 계획인 연씨는 식을 이처럼 친환경적인 행사로 치르기로 김씨와 합의했다. 청첩장은 재생용지로 만들고, 신혼여행은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우포늪으로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YMCA ‘녹색 가게’에서 자원 재활용 업무를 담당해온 김씨는 평소 낭비적인 결혼문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터라 “환경친화적이고 생산적인 결혼문화 조성에 앞장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 연인이 내놓은 ‘녹색 결혼식’을 위한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환경 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를 위한 부부 서약하기 △결혼식을 기념하는 나무 심기 △결혼식장에서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식사 준비 △재생용지로 청첩장 만들기 △환경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곳으로 신혼여행 가기 △혼수의 경우 재사용, 비용절감, 재활용의 3R(Reuse, Reduce, Recycle) 원칙 지키기 등이다.

    “지난해 말 녹색 결혼 문화 만들기라는 인터넷 사이트(club.dreamwiz.com/greenwed)를 만들어 ‘녹색 결혼’을 준비해왔습니다. 결혼은 나와 미래의 배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과 집안 간의 문제여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환경친화적인 결혼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연제헌씨)

    ‘녹색 결혼 만들기’는 지난해 초 환경단체인 지구를 위한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에서 낭비와 허례허식으로 물든 결혼문화를 개혁해 환경친화적이고 자원절약적인 결혼문화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시민행동’이 지난해부터 캠페인

    시민행동에서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나무학교에서 6월22일부터 10월12일까지 10개 강좌를 개설해 2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강좌 내용은 환경친화적인 결혼문화의 제반 사항에 대한 것으로 건전한 데이트에서부터 합리적인 혼수, 건전한 결혼식 이후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위한 요리 육아 교육 등까지 다채로웠다. 10월30일에는 그동안의 강좌를 정리하는 세미나를 열어 녹색 결혼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녹색 결혼을 치르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10월3일 결혼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간사인 최우성씨(29)는 혼수품을 구입할 때 철저하게 3R 원칙을 지켰다. 4평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린 최씨 부부는 장롱 그릇 침대 VTR 등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결혼 이전에 사용하던 제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야외 사진촬영도 하지 않아 이들이 결혼식과 준비과정에 들인 비용은 모두 1000만원 정도.

    2000년 6월 아들을 혼인시킨 손봉호 서울대 교수는 혼수와 예단을 생략했고, 축의금을 받지 않았으며, 사촌 이내의 친지들만 초청하는 간소한 결혼식을 치렀다. 손교수는 “혼인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혼인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면서 “결혼식 후에야 혼인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위의 두 사례 모두 결행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새 가정을 꾸리는 데 헌 제품으로 집 안을 채우고, 아들이 결혼하는 데 남에게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 것은 요즘의 결혼문화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新문화 ‘녹색 결혼’ 뜬다

    내년 봄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녹색 결혼’을 할 계획인 연제헌-김지영 커플.

    대개의 경우는 이런 특수한 경우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10월 생활개혁실천협의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 국민의 77%가 우리의 결혼문화를 호화,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나마 이런 평가는 IMF 직전인 1997년의 88.6%에 비해서는 개선된 것이지만 99년 조사 결과인 76.1%와는 큰 차이가 없는 상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97년 국내에서 결혼식에 들어가는 연간 총비용은 25조원에 달하며 이는 우리나라 국민총생산(GNP)의 6.4% 수준이라고 밝혔다. 혼례 1회당 평균 소요 비용은 7539만원으로 도시 가계 월 평균소득의 35배를 넘는다. 이는 미국의 4.8배, 일본의 3.3배, 영국의 3.2배, 대만의 3.7배나 되는 것으로, 한국의 결혼문화가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 사회관행임을 보여줬다. 이후 이와 관련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수치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혼식의 내용 자체도 천편일률적이어서 하객들은 식 자체는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축의금 내고 서둘러 음식을 먹고 식장을 빠져 나오는 식이다. 식에 주인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철저한 들러리 노릇만 하고 마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황정선 책임연구원은 결혼식 참석자의 60%는 혼주와 인사하고 축의금만 내고 가거나, 시장판 같은 피로연장에서 식사만 하고 가는 ‘거품 하객’이라고 지적했다.

    “오죽했으면 정부에서 오후 3~5시 사이의 결혼식 피로연의 음식 접대를 법으로 금지하려 했겠습니까. 식량자급률이 쌀을 제외하고는 8%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까지 단지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음식을 접대합니다. 끼니 때가 지난 시간에 음식이 제대로 소비될 리 없고, 그것은 고스란히 버려져 한 해 15조원이나 되는 음식물 쓰레기에 큰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

    국민 대다수도 황씨의 말에 공감하고 이런 결혼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녹색 결혼’이란 말이 국내에서 생겨난 것도 그만큼 국내의 결혼문화가 낭비적이고 환경친화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비·비환경적 결혼문화에 반기

    ‘지구를 위한 시민행동’ 한국본부 김경희 본부장은 “현재의 결혼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며 “그래서 더욱 누군가가 새로운 결혼문화를 개척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 결혼’의 등장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찬호 교수는 “환경 위기의 시대에 친환경적 생활문화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가정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녹색화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문화부터 녹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결혼식은 단지 신랑 신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과 가족에 대해 새삼 성찰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며 “결혼식이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돼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행동측에서는 앞으로 예비부부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결혼 관련 회사들이 ‘녹색 결혼’을 대안적 결혼 모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할 예정이다. 낭비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대만 갖고 시작하는 결혼보다는 시작부터 부부가 함께 미래 세대의 환경까지 고려하는 ‘녹색 결혼’이 확산된다면 이혼율 세계 3위라는 오명을 벗는 데도 큰 몫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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