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2조원대 원전 ‘특혜’ 냄새 솔솔

산자부 ‘특정업체 봐주기’ 오해 살 공문 파문… “쌍둥이 원전 분할 발주 이해 못 할 일”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2-11-08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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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조원대 원전 ‘특혜’ 냄새 솔솔

    1998년 9월 11일 울진 5·6호기 기공식에 참가한 김대중 대통령(가운데).울진 5·6호기는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동아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수주했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산하 공기업에 보낸 공문이 건설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총 2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주설비 공사 발주를 앞두고 업체간 치열한 물밑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자칫 ‘특정업체 봐주기’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산자부가 정권 말기에 왜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문제의 공문은 10월17일 산자부가 원전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에게 보낸 ‘원전 사업 당면 현안 과제에 대한 의견 통보’라는 제목의 A4 용지 3장짜리 문서. 산자부 원자력산업과에서 장관 결재를 받아 한수원에 보낸 이 문서 가운데 문제의 대목은 신규 원전(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발주와 관련한 입찰제도 보완지침을 담고 있는 부분.

    산자부의 지침은 총 4개 항. 먼저 능력 있는 업체가 함께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입찰 자격 심사시) 과거 시공 경험뿐만 아니라 현재 시공중인 실적도 평가 점수에 포함하도록 평가 기준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4기를 동시에 발주하되 3개사 이내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찰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호기별 책임 시공 및 부지 내 호기간 경쟁 유도를 지시했다.

    2조원대 원전 ‘특혜’ 냄새 솔솔

    산자부가 한국수력원자력(주)에 보낸 문제의 공문

    이 가운데 건설업계에서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은 첫번째와 마지막 항목. 특정업체를 봐주기 위한 조치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해도 과거 관례와 기준대로만 발주하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산자부가 굳이 이 시점에서 새 지침을 들고 나와 ‘오해’를 자초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이용두 원자력산업과장은 “원전 시공기술의 저변을 확대시켜 경쟁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원전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대림산업 동아건설 등 원전 공사 완공 경험이 있는 5개 업체 가운데 동아건설이 청산 절차를 밟고 있으며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중인 점을 고려하면, 시공업체 확대가 필요하다는 산자부 논리가 전혀 근거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산자부의 논리에 큰 모순이 있다고 반박한다. 가령 첫번째 항목만 해도 그렇다. 현재의 관련 법이나 규정으로도 ‘시공중인 실적’은 이미 ‘유사(類似) 실적’으로 평가 점수에 반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평가 기준을 보완하라고 한 것은 ‘완공 실적’과 ‘시공중인 실적’을 똑같은 비중으로 평가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 지침이 왜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는 현재 건설업계의 원전 공사 실적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원전 완공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는 앞에서 언급한 5개 업체. 그리고 ‘시공중인 실적’이 있는 업체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삼성은 현재 울진 원전 5·6호기를 두산중공업과 함께 건설중이다.

    이번 수주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는 10여개. 이 가운데 최다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건설을 비롯해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이 ‘선발 3강’으로 평가된다. 그 바로 뒤에서 대림산업이 이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자부의 이번 지침대로 된다면 삼성은 대림산업뿐 아니라 ‘선발 3강’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수주전에는 이들 업체 외에 10만kw급 이상의 화력발전소 건설 경험이 있는 SK건설 LG건설 삼부토건 삼환기업 대아건설 등이 뛰어든 상태다.

    이번 발주 물량은 국내 대형 건설사의 올 수주 순위를 좌우하는 승부처이기도 해서 일찍부터 불꽃 튀는 수주전이 예상돼왔다. 특히 이번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면 앞으로 몇 년간 원전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건설회사들은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현재 울진 5·6호기를 건설중인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 외에 다른 건설사들은 개점 휴업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은 산자부의 네 번째 지침. 호기별 분할 발주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신고리 1·2호기나 신월성 1·2호기의 경우 동일 부지에 동일 설계대로 건설되는 쌍둥이 원전인데 호기별로 발주할 경우 공사비 인상은 물론 공정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원전 건설에서 분할 발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두 기씩 통합 발주를 해왔다.

    2조원대 원전 ‘특혜’ 냄새 솔솔

    울진 3호기의 원자로내부(왼쪽).울진 3호기 중앙통제실(오른쪽).한국인 체형에 맞게 각종 계기판을 콤팩트하게 만들었다.

    건설업계에서는 통합 발주 대신 분할 발주를 한다고 해도 산자부의 의도를 만족시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발주 물량이 2건에서 4건으로 확대된다고 해도 한 컨소시엄이 4건 모두에 응찰할 수 있기 때문에 산자부 의도대로 여러 회사가 골고루 수주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얘기다.

    한수원도 건설업계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아파트 두 동을 건설할 때 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두 동을 동시에 짓는 게 ‘원칙’이다. 산자부 지침은 한 동을 먼저 짓고 나중에 다른 한 동을 따로 지으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수원은 그동안 호기별 분할 발주를 ‘요구’한 산자부의 구두 지침을 무시하고 발주 자체를 미뤄왔다.

    그러나 산자부가 전격적으로 공문을 보내자 한수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수원 주변에서는 “산자부 의지대로 될 수는 없을 것” 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감사원 감사 등을 받는 한수원 입장에서 과거 규정과 관행 등을 무시하고 새로운 발주 요건을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 현재 한수원은 구체적인 발주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산자부 이용두 원자력산업과장은 “11월 말에서 12월 초 사이에는 발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산자부와 한수원의 이런 물밑 기싸움으로 발주 시기가 늦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혜택을 받은 업체가 생겨났다는 점. 현행법에 따르면 원전 수주를 위한 입찰 자격 심사(PQ) 때 1년 이내 덤핑 수주 경험이 있는 업체에 대한 감점 규정이 있는데, 두산중공업의 경우 11월1일까지는 감점이 -4점이었으나 11월2일부터 감점이 -1점으로 낮아졌다.

    건설업계에서 삼성과 두산을 산자부 지침의 ‘배후’로 지목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두 업체는 현재 건설중인 울진 5·6호기 공사를 통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신국환 산자부장관이 과거 한때 삼성물산 고문으로 재직했다는 점도 뒷말을 낳게 하는 대목. 그러나 산자부측은“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삼성측도 “업계에서 떠도는 얘기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로비설을 부인했다.

    두산측도 “감점이 있다 해도 PQ 통과는 문제없는데 ‘지연 작전’을 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수원 주변에서는 “한국중공업 인수 이후 중공업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두산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이번 원전 수주전을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발주 자체를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산자부 지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수원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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