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

대권후보 본심, 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정치언어학’으로 빅3 TV토론 어법 분석 … 표심 잡기 리더십 부각, 과장과 눈속임 전략 공존

  • 최윤선/ 영산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yunson@orgio.net

    입력2002-11-07 16: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권후보 본심, 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후보들의 TV토론이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대선후보들의 TV토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요구된다. 필자는 그 일환으로 정치언어학적 시각에서 TV토론을 분석했다. ‘정치언어학(Political Linguistics 혹은 정치담화분석)’이란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어휘와 문장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 그 속에 숨겨진 정치인들의 의도, 사상, 정치적 입장 등을 유추해내는 학문이다.

    현대는 언어가 세계를 움직이고 대중의 운명을 바꾸는 시대다. 유력 지도자가 내뱉는 말은 이내 매스컴을 통해 대중과 다른 정파, 해외에 전파되어 막대한 ‘유권적’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치인, 그중에서도 대통령후보가 선택한 단어, 어휘는 그 자체로 정치적 결단이며 동시에 유권자의 입장에선 검증 대상이 된다. 정치언어학적으로 대통령후보의 언어를 분석, 유의미한 경향성을 도출해내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하다.

    유권자들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이미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TV토론에서 후보들이 하는 말은 후보의 이미지 형성에 적지 않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TV토론에 대해선 정책 검증 방식의 접근뿐 아니라 정치언어학적인 이미지 분석법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번 분석 대상은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가칭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출연한 KBS 심야토론의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과 SBS 토론공방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 프로그램 등 6회분이었다. 한국은 프랑스와는 달리 정치인이 구사하는 언어를 계량적으로 분석해내는 수학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 데다, 대통령후보 TV합동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아 후보간 비교분석에 한계점도 있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이회창, ‘우리’ 단어 자주 사용 본인과 한나라당 동일시

    이회창 후보의 TV토론 화법에서 드러난 이미지는 결론적으로 ‘개성의 억제’, ‘연성화’다. ‘대쪽’으로 통하는 이후보의 강한 인상을 의도적으로 누르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였다. 대신 온건한 특징을 보이는 보수 계층 일반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미지와 ‘오버랩’시키는 어휘와 문장을 선택했다. 이후보는 ‘개인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범지지세력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연성화는 외면적 이미지에서 먼저 드러났다. 필자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후보는 이번 토론에서 1997년 대선 TV토론 때에 비해 회당 평균 웃는(미소) 횟수가 두 배 정도 많았다. 특히 KBS 토론보다 나중에 이뤄진 SBS 토론에서 웃는 횟수는 더 늘어났다. 97년 당시 그대로 드러났던 날카로운 윤곽의 얼굴 옆선은 이번엔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으로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었다.

    어휘에서도 연성화, 탈개인화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와 비교했을 때 이후보는 시청자에게 의무 분담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의 의무를 강조했고 자신보다는 소속 정당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면은 97년 대선후보 TV토론 때의 이후보와는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다음은 이후보의 97년 대선 당시 TV토론의 한 토막. “이제 우리는 재도약을 위해서 일대 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부실한 경제를 건실하고 활기찬 경제로 바꿔야 합니다. 또 국가 경영에 관한 정부 기능을 재정립해서 생산적이고 참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로 바꿔야 합니다. 또 안정된 질서와 쾌적한 환경을 보장해서 불안한 우리의 사회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로 탈바꿈시켜야 합니다.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민족통합을 이뤄내서 분단국가를 통일 한국으로 성취시켜야 합니다.”

    5개의 문장이 모두 ‘해야 합니다’라는 종결구로 끝났다. 이러한 어투는 자신이 국민을 이끌어서 그 일이 이뤄지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대쪽이라 불리는 이후보의 강성 리더십과 잘 결합됐다. 하지만 이는 시청자들에게 의무 분담을 강요함으로써 반감을 살 위험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의무의 주체가 된 최초 문장의 주어가 ‘우리’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국민 전체라는 집합적 차원의 의무 분담을 강조한 것으로, 97년 당시 이후보가 개인 리더십을 강조하는 전략적 기조를 채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5년 뒤인 올 대선전에서 이후보는 이러한 어휘 구사 전략을 전면 폐기했다. 지지율이 가장 높지만, 거부 세력도 가장 많다는 점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이후보의 10월19일 KBS 심야토론 발언 중 일부. “이제 저는 꿈을 이루고자 합니다. 법과 원칙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이런 터전 위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정부를 만들고자 합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거치면서 쌓은 경험으로 가장 유능한 정부를 만들고자 합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열심히 일하고자 합니다.”

    5년 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후보는 주어로 ‘우리’ 대신 ‘저’를 택했다. 또한 종결 문장 네 가지를 모두 ‘하고자 합니다’로 끝냈다. 이는 5년 전의 리더형 종결 문장을 의무 본인 전담형 종결 문장으로 전면 대체한 것이다.

    이후보는 최근의 토론회에서 ‘우리’라는 단어도 특이하게 사용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성과 정당성을 넓혀나가기 위해 즐겨 이용하는 단어가 바로 우리다. 우리는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연대감이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대권후보 본심, 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 참여하는 대선후보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타 후보들을 상대로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한다.

    10월19일 KBS 심야토론에서 이후보는 총 37번 대명사 ‘우리’(예: 정권교체를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정도로 간다는 것입니다), 총 13번 관형어 ‘우리’(예: 우리 당, 우리 정치)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때 이후보가 사용한 ‘우리’의 지시 대상은 대부분 한나라당이었다. ‘우리=국민’ 또는 ‘우리=국가’로 수렴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타났다. 소속 정당을 지시하기 위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례는 노무현, 정몽준 후보에게서는 거의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이후보만의 독특한 용어 선택이었다. 97년 대선 당시 TV토론 때 이후보는 소속 정당을 지칭하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 및 부채와 연관해 의도적으로 언어와 문장을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7년 이후보의 소속 정당인 신한국당(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당명 변경)의 인기는 밑바닥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이후보는 개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리더형 어휘를 택한 듯하다. 그러나 이후보 개인의 인기보다는 소속 정당의 인기가 더 높은 상황이 되자 이후보는 본인의 이미지는 ‘톤 다운’시키면서 한나라당과 자신을 ‘우리’라는 어휘로 동일시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지지율도 높지만 거부감도 높은 후보라는 약점, ‘반창 연대’라는 위협, ‘제왕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연성화된 어휘’를 자주 사용하는 듯하다. 동일 정치인의 언어 전략도 주변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극에서 극을 오갈 수 있음을 실증하는 셈이다. 이는 반드시 부정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이 감안해야 할 대목이다.

    노무현 후보는 2위권 후보답게 도전적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회창 후보의 연성화 전략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예, 아니오가 명확하고 단호하다. 노후보 화법은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짧게 끊어지는 그의 문장에서는 산만함을 찾기 힘들다. 듣는 사람에게 명료하다는 인상을 준다. 프랑스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소쎄즈(Saussez)는 “연설이 효과적이려면, 간단히 말하되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 후보 중 노후보는 이러한 기준에 가장 근접했다. 그의 이러한 특징은 10월12일 KBS 심야토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숨기지 않겠습니다. 은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겠습니다.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대통령도 자기 아들마저 구속시키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그런 밝은 사회입니다. 저도 그 점에서는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의미를 전하면서 이회창 후보는 “부정부패를 없애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아주 대통합적 인사로 국민의 대통합과 화해를 이뤄갈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라는 다소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짧은 문장을 선호한다. 이런 점에서 노후보의 어휘는 자신의 지지기반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노후보는 문장의 종결어미가 단호하다. KBS 심야토론 기조연설에서 4차례에 걸쳐 리더형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실천을 얘기해야 합니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이런 정치는 이제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 지역 구도는 정책 구도에서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몇몇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당인들이 주도해가는 정당으로 바꿔야 합니다. 참여정치를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확실히 뿌리 뽑겠습니다.” 97년 대선 당시의 이회창 후보를 연상시킨다. 정당의 상품성보다는 개인의 상품성을 강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개인의 개혁 의지를 강조해야 하며, 이 때문에 리더형 표현을 자주 사용해야 하는 논리 구조인 것이다. 의무 본인 전담형 표현에서도 이후보는 ‘하고자 합니다’를 사용했지만, 노후보는 ‘하겠습니다’를 택했다. 이후보는 겸손함(연성화)을 강조하기 위해 실천 의지의 강도를 낮출 수밖에 없었지만 노후보는 반대의 경우를 택한 것이다.

    노후보는 현재의 대선 판도에 변화를 주려는 의도에서 안정감보다는 변화에 대한 주의 환기를 택했다. 이는 잦은 반어법의 구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음은 노후보의 마지막 발언.

    “제가 대답한 것 중에 뭔가 미흡하고 또 물어보고 싶어도 그냥 넘어가셨을 겁니다. 이래 가지고 검증이 되겠습니까?”

    정몽준 의원이 TV토론에서 구사하는 화법은 이후보나 노후보와 달리 그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종의 ‘무정형’의 이미지다. 정의원은 제시되는 사안에 대해 단정적인 표현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의원은 토론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전폭적인 사용으로 봐도 좋을 정도로 빈도가 높았다. 이회창 후보가 50회, 노무현 후보가 55회인 데 반해 정몽준 의원은 122번이나 사용했다(KBS 심야토론). ‘우리’라는 단어가 대명사로 쓰인 경우가 34회였고, 관형적으로 쓰인 경우가 88회였다. 지시 대상은 ‘우리=국민’, ‘우리=국가’가 대부분이었다. 국민통합의 이미지를 잦은 ‘우리’의 사용으로 강조하려 한 듯하다. 여러 주의, 주장에 걸쳐 있는 ‘우리’라는 표현은 일관성 결여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어떠한 형태의 정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이미지도 갖는다.

    두 토론회에서 나타난 정의원의 어휘 구사 특징은 ‘특징 없음’이다. 이는 정의원이 유력 대권주자로 갑자기 부상했다는 현실과도 맥을 같이한다. 대선 전략의 명확한 타깃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어 전략에서도 비개성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여 일단은 선택의 폭을 넓혀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권후보 본심, 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SBS 대선후보 초청 TV토론회에 출연한 이회창(왼쪽), 노무현 후보.

    언어전략상 무정형의 이미지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내 실망감으로 이어진다.무정형의 이미지는 본 게임을 앞둔 일종의 긴장감이며, 따라서 이른 시일 내 분명하고 임팩트가 강한 언어전략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원은 이미지 형성에 관한 한 다른 두 후보에 비해 더 유연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정의원이 대중에게 내놓은 어휘 자체가 양적으로 빈약했기 때문에 뚜렷이 규정지을 만한 정의원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정의원은 앞으로 특징적인 언어전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가 훨씬 수월한 입장인 것이다.

    정의원의 또 다른 특징은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 제대로 종결 처리되지 않는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정의원은 당선 후 친인척 관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네, 뭐… 복잡하지는 않고, 저희들이 대가족이죠. 대가족인데, 하여간에 부패방지위원회에다가 특별히 부탁을 하든지 해서, 글쎄 그... 하여간에 잘 관리 감독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정의원도 일반적으로 답변 문장을 ‘습니다’ 형태로 끝내는데, 이 경우엔 4~5개의 연속된 문장 중 ‘습니다’ 형태로 끝난 문장이 1회에 그쳤다. 단어의 반복도 잦았다.

    이회창 후보 역시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할 것 별로 없어요. 그 정도로 해두세요. 허허허”라고 답했다. 이후보도 ‘습니다’로 종결짓는 평균적 답변과 달리 두 문장을 ‘요’로 끝냈다.

    같은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노후보의 답변은 이와 대비된다. 다음은 청와대 배후지원설에 대한 노후보 답변. “우리가 흥미 위주의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정치의 장래라는 건 이런 얘기 하고 별 관계 없이 전개되는 것이고 노무현이 정치개혁 어떻게 할 거냐, 정몽준 후보와 무엇이 다르냐, 이회창 후보와 무엇이 다르냐, 이것이 검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후보는 4문장을 모두 완결된 형태로 종결시켰다. ‘떳떳한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노후보 입장에선 이런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곤란한 질문을 받더라도 말끝을 흐리는 어휘를 사용하거나, 답변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토론에 임한 것 같은 인상이다.

    각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높이고, 부채를 감추려는 방식으로 어휘를 구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 모으려 한다. 여기엔 긍정적인 정치적 리더십이 일정 부분 녹아 있다. 반면 과장과 눈속임도 있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제 정치언어학적으로도 대통령후보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이 후보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주체적 판단에 의해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