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장쩌민을 알면 중국이 보인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1-07 1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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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쩌민을 알면 중국이 보인다
    향년 76세,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을 맡은 지 13년째인 장쩌민은 과연 은퇴를 선언할 것인가. 11월8일로 예정돼 있는 제16기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장 총서기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까지는 장이 은퇴하고 후진타오, 원자바오, 쩡칭홍 등 50~60대 차세대 주자들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은퇴가 곧 권력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전 한 번도 당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의 1인자로 군림했던 덩샤오핑처럼 장쩌민 역시 직위는 물려줘도 권력은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최고 권력에 오르기까지 ‘밑바닥에서 보낸 23년’과 지난 몇 년간의 정치행보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은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장쩌민이 누군데!”

    경제전문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홍콩 특파원인 브루스 질리 기자가 쓴 ‘장쩌민(원제 Tiger on the Brink)’은 알다가도 모를 이 인물의 성장과정과 권력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한 책이다. 1989년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발탁됐을 때만 해도 장쩌민은 ‘임시’ 꼬리를 떼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13년 동안 굳건히 권좌를 지키며 중국을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강대국으로 키워놓았다(뒤에 소개할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쓴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을 보라). 이것이 우리가 장쩌민이라는 인물에 대해 샅샅이 해부해봐야 하는 이유다.

    평전 형식의 이 책은 1926년부터 1998년까지 장쩌민의 생애를 5기로 나누어 조망했다. 1926년 10월20일 양쯔강 하류지역 양저우에서 지식인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장은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과 무난한 청년기를 보낸다. 그러나 한창 일할 시기인 40대에 문화혁명과 맞닥뜨리며 정직을 당하는 등 수모를 겪은 후 그는 달라졌다. 순종적이고 겸손하며 정치에 무관심한 혁명 일꾼에서, 비판에 민감하고 세심하게 정치적 연줄을 맺어나가는 영리한 일꾼으로 변했다.

    1976년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뚱의 사망은 장에게 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 아래서 그는 승승장구했다. 덩은 ‘개혁 개방’을 부르짖으며 당의 목표를 경제발전으로 잡았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장은 그 첫 수혜자가 됐다. ‘국가 대외투자 통제위원회’와 ‘국가 수출입통제위원회’ 등 중국의 대외무역과 투자를 책임지는 중요한 두 위원회를 맡게 된 장은, 1980년대 경제특구 설립을 주도하면서 덩의 경제개혁 전선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엔지니어 출신인 장은 이어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신설된 ‘전자공업부’의 부부장으로 발탁됐다.



    장은 이 시기의 자신을 “미스터 호랑이 기름(중국에서 호랑이 기름은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이라고 했다. 호랑이 기름은 “무엇이든 잘하지만 특별하게 잘하는 것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문제해결과 방향제시 능력을 갖춤으로써 그는 고위 관료 수업을 착실히 했다. 1989년 텐안먼 사건과 함께 그는 드디어 덩샤오핑의 ‘부름’을 받고 총서기가 됐다.

    장은 마오나 덩과는 다른 통치방식을 보여주었다. 사실 마오와 덩의 흉내를 내려 해도 그에게는 그만한 권력이나 카리스마가 없었다. 대신 뛰어난 대중연설과 피아노 앞에 앉아 ‘황허’를 노래하며 연주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권위 대신 ‘합의’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장의 저력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90년대 중반 이미 장은 덩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덩의 개혁개방 정책을 이어받아 정치적인 통제와 경제적, 사회적 자유를 절묘하게 결합한 중국의 새로운 국가상을 제시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오늘의 중국이 탄생한 것이다.

    장쩌민이 이룩한 성과는 박번순의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저자는 21세기 동아시아 경제 전망을 일본의 침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두 가지 현상으로 설명했다. 또한 저자는 동아시아는 1960년대 이래 일본이 주도한 세계화 과정에서 성장했지만 선진국의 성숙, 미국과 유럽의 지역화 경향, 일본의 혁신 능력 쇠퇴 등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일본을 대신할 수 있을까? 중국과 아시아는 경쟁관계인가, 보완관계인가? 이 책은 부제에서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는 경제주도권’이라고 못박았듯이 중국의 급부상을 실체로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철저히 실리를 취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장쩌민을 알면 오늘의 중국이 보이고, 중국을 이해하면 동아시아의 미래가 보인다.

    장쩌민/ 브루스 질리 지음/ 형선호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392쪽/ 1만5000원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 박번순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33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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