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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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유적들 타향살이 끝!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0-30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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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유적들 타향살이 끝!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

    12번째 국립박물관인 국립춘천박물관이 ‘이제야’ 문을 연다는 소식은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뜻밖이다. 강원도는 지금껏 전국 9개 도(道) 중에서 유일하게 국립박물관이 없었던 도였다.

    강원도는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많은 유물이 묻혀 있는 땅이다. 그러나 국립춘천박물관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강릉 원주 삼척 세 곳에 소규모의 시립박물관이 있었을 뿐이다. 강원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각 대학 박물관, 그리고 김해·전주 등 다른 지역 박물관에 흩어져 수용되는 ‘수난’을 겪어왔다. 이 같은 유물 1만5000여점이 국립춘천박물관의 개관으로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개관일인 10월30일을 5일 앞둔 25일, 춘천 초입에 위치한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았다. 대지면적 1만4000여평에 연면적 3000여평, 산 중턱의 탁 트인 곳에 박물관 건물이 시원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몇 달째 개관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는 최응천 국립춘천박물관장을 만났다.

    “총 1만5000여점의 유물 중 현재까지 5800여점의 유물이 박물관으로 반입되었습니다. 이중에는 국보인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을 비롯해 보물 7점이 포함되어 있어요. 박물관에는 4곳의 상설 전시실과 2곳의 기획 전시실이 있는데 일단 1000여점이 먼저 전시됩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진경 산수를 주제로 한 개관 특별전 ‘우리 땅, 우리의 진경’이 한 달간 열립니다.”

    강원도에서는 경주, 부여 인근처럼 화려하거나 대규모의 유물은 찾기 어렵다. 대신 삼국시대 이래로 호족들의 세력이 강해 독특한 지방 문화가 형성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선불교 사찰인 ‘선문 9산’의 중심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또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 선사시대의 유적지들이 많은 것도 특징. 양양 오산리 유적지 같은 경우는 부산 동삼동 유적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꼽힌다.



    “같은 강원도라고 해도 태백산맥을 경계로 해 현저히 다른 영동과 영서 문화권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원주·춘천 등 영서권에서는 백제, 고구려의 유적이 출토되는 반면, 강릉 쪽은 신라 문화권입니다. 이후 고려시대의 불상 문화도 확연히 구별되지요. 영동 지역에서는 흰색 대리석으로 제작된 석조 불상이 주로 나오고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서권에는 철제 불상이 많습니다.” 최관장의 설명이다.

    국보·보물 포함 1만5000여점 전시

    강원도 유적들 타향살이 끝!

    선림원터에서 나온 동종 복제품(위), 이성계 발원사리구.

    국보 제124호인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은 국립춘천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 첫손 꼽힌다. 강릉에서 출토된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부처라기보다는 강원도의 아낙네라고 할 만큼 복스러운 얼굴이다. 작은 입술을 오므린 채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이 일품. 이 불상은 일찍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0년대에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과 함께 눈에 띄는 유물은 ‘이성계 발원사리구’다.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되는 이 사리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직전, 가족의 안녕과 장수를 기원하며 금강산 월출봉에 발원한 유물로, 사리를 담은 금속함과 이 금속함을 넣었던 백자 일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구의 방산 도요지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제작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어 우리 도자기 발달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이성계 발원사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가 90년에 국립전주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전주로 갔다. 이성계가 전주 이씨라는 인연 아닌 인연 때문. 이처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강원 지역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립춘천박물관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강원도 유적들 타향살이 끝!

    국립춘천박물관 전경.6개의 전시실에 1만 5000여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12번째 국립박물관이다.

    양양 선림원터에서 나온 통일신라 시대의 동종(銅鐘)도 국립춘천박물관 개관과 함께 빛을 본 문화재다. 서기 804년에 제작된 이 종은 상원사종, 성덕대왕 신종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종이다. 그러나 1948년 발굴 직후 국보로 지정되어 오대산 월정사로 옮겨진 이 종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월정사와 함께 불타버렸다. 반 이상 녹아버린 종의 잔해는 그 후 52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어왔다.

    국립춘천박물관측은 이 선림원 종을 청동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전시실 한쪽에 녹아내린 원종(原鐘)과 말끔하게 복원된 동종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종을 복원한 이는 인간문화재 명장인 원광식씨.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해서 전통적인 종 제작 방식인 밀랍주조기법으로 복제했다고 한다. 관람객이 복제 동종에 가까이 다가서면, 천장에 달린 센서가 작동하면서 종소리가 웅장하게 울린다.

    11월 한 달간 열리는 개관기념 특별전 ‘우리 땅, 우리의 진경’도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그전까지 중국의 산수를 그렸던 조선시대의 화가들은 ‘우리 산천을 그려야 한다’는 깨달음에 눈떴다. 이때부터 19세기까지 200년간은 ‘진경의 시대’로 불릴 만큼 진경 산수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화가들이 산수화를 그리기 위해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금강산, 관동팔경, 해금강 등 강원도의 빼어난 산천이었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등의 작품을 포함해 200점에 달하는 전시작 중 많은 작품들이 금강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강원도 유적들 타향살이 끝!

    최응천 초대 국립춘천박물관장

    이 같은 문화사적 의의 말고도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을 만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각 전시실마다 영상정보검색 시스템을 갖추었고 유물 조명에는 광섬유 조명을 사용했다. 광섬유 조명은 섬유 가닥에서 빛이 나와 유물에 일절 열을 가하지 않는 첨단 장비다. 제1전시실인 ‘선사의 강원’ 전시실에는 춘천 교동의 신석기 동굴을 영상에 그대로 재현한 ‘매직 비전’이 설치되었다. 총 예산 39억여원 중 10분의 1 가량이 영상정보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들어갔다고.

    또 박물관 전면의 가장 전망 좋은 위치에는 카페가 자리잡고 있고 천장에서는 자연 채광으로 햇빛이 들어와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박물관이라는 오래되고 무거운 이미지보다는 새로 문을 연 현대미술관 같다. 최관장은 “국립춘천박물관은 2005년 개관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시험대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시험해본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들은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에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제1전시실에서 제2전시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창이 하나 있다. 야외조각정원을 향해 난 창이다. 창 앞의 의자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야외에 전시된 철불 조각들과 함께 복원된 낙산사의 담장이 보인다.

    기자도 야외조각정원 앞에 잠시 앉아보았다. 낙산사 담장 위로 황금빛 가을 햇살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청명한 가을 빛이었다.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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