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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말기 위암 … 내 삶과 일을 방해하지는 못해요”

환경부 지구환경과장 정금희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말기 위암 … 내 삶과 일을 방해하지는 못해요”

“말기 위암 … 내 삶과 일을 방해하지는 못해요”

정금희 과장이 환경부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뜰에서 밝게 웃고 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에게는 암도 ‘만성질환의 하나일 뿐’이다.

환경부 정금희(40) 지구환경과장은 중앙부처 과장이라는 이미지와는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화사한 화장에 세련된 옷맵시, 거기에 더해 상대방을 절로 편안하게 해주는 푸근한 미소까지.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에서는 전문가다운 인상이 물씬 풍긴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과장은 환경부가 이례적으로 특채한 ‘민간전문가’. 삼성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를 거쳐 일본 고베에 있는 프록터 앤 갬블 동아시아 지역본부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지난 1월 환경부 국제환경담당관(4급) 공채에서 여섯 명의 남성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구환경과장으로 채용되었다. 당시 과천 관가에서는 다국적기업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던 연구원의 ‘박봉의’ 공무원으로의 변신이 잔잔한 화제가 됐다. 일부 언론은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던 박사학위 소지자가 정부 조직에 적응할 수 있을지 살짝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정과장은 정부 부처에 대한 자신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그동안 10차례가 넘는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도 잘 마무리 지었다. 각국의 환경전문가, 각료들 중에는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진 사람도 많다. “공무원 조직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딱딱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어떤 직장에나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문제일 뿐이죠. 환경은 황사, 지구온난화 등 워낙 국제적인 협력관계가 많이 필요한 분야라서 외교와도 비슷해요. 현재 한국은 221개의 국제환경협약 중 44개에 가입되어 있어요. 요즘은 기후변화협약이 환경분야의 큰 이슈죠.”

연구원에서 관료로 변신한 지금, 정금희 과장은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생사를 건 도전, ‘암과의 싸움’이다. 그의 혈색 좋은 얼굴과 화사한 외모 속에 암세포가 도사리고 있다면 누가 믿을까. 그는 현재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위암 4기 환자다.

“7월에 모스크바로 출장갔을 때였어요. 목 언저리에 콩알만한 단단한 멍울이 잡히는 걸 느꼈어요. 피곤해서 임파선이 부었나 해서 귀국해 병원에 갔더니 암세포가 위와 기관지를 거쳐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전혀 자각증세가 없는 상태에서 받은 말기 위암 진단. 여느 사람 같으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거나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부터 잘 놀라지 않기로 유명했던 정과장은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자’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앞날의 계획이었다.

“주변의 의사 친구들에게 상의도 하고 제 자신도 차트를 보면서 곰곰 생각해보았어요. 미국으로 가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위암은 발병 케이스가 많은 한국에서 치료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항암 치료중 해외출장 계속 … “더 소중하게 살아야죠”

암이 몸속 곳곳에 전이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약물치료. 링거를 통해 약물을 몸속에 주입해 림프선 기관지 등에 있는 암세포를 죽인 후, 수술로 위의 암세포를 제거해보자는 것이 병원측의 의견이었다. 그는 암 진단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대개 암환자는 ‘이 병원은 못 믿겠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대체의학 등의 방법을 찾아보며 선뜻 치료 결심을 하지 못하게 마련인데 그가 단번에 결정을 하자 그가 입원해 있던 아주대 병원에서 더 놀랐다고 한다.

“저는 원래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암선고라는 말도 싫어해요. 암도 하나의 만성질환일 뿐이니까요. 병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미혼의 그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두 분 모두 평정을 찾으시고 저를 위해 채소와 과일, 물, 차 등 건강식단을 열심히 준비해주시죠.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고 몸에 좋다는 것을 골고루 먹고 병원 치료 열심히 받는 게 제 치료법의 전부예요. 약물치료를 받으면 살이 빠진다는데, 저는 부모님이 워낙 잘 챙겨주시는 덕분에 그전보다 살이 더 쪘어요.”

“말기 위암 … 내 삶과 일을 방해하지는 못해요”

환경부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정금희 과장. 환경 분야의 국제협약 전문가인 그는 격주로 해외출장을 갈 만큼 바쁘게 산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2주일 만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렸다. 보통 암환자들은 머리카락이 빠지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저는 이미 약물의 성분과 부작용에 대해 다 숙지하고 있었어요. 구토 식욕부진 탈모 등이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았죠. 어머니와 함께 예쁜 가발을 맞추러 갔어요.”

가발을 쓰고 출근한 첫날, 한 여직원이 “과장님, 헤어스타일이 멋있는데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하고 물어서 난감했단다.

항암치료 와중에도 정과장은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별다른 자각증세가 없는 데다 살기 위해서 치료를 받는 거지, 치료를 받기 위해 살기는 싫었어요.”

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후에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도 갔다. 비행 시간만 20시간이 넘는 장거리 출장이었다. “김명자 장관님을 수행해서 가는 출장이었는데 그때는 부 내에서도 제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거든요. 예정대로 출장을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장관님이 한동안 말씀을 못 하시다가 ‘네 마음이 그렇다면 같이 가자’고 하시더군요.”

긴 비행에 대비해서 약을 꼼꼼히 챙기고 의사소견서도 준비했다. 다행히 그는 아무런 탈 없이 성공적으로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요하네스버그에 머무르는 동안, 신기할 정도로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일까.

현재 정과장은 한 달에 한 번씩, 3박4일간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받고 격주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약물치료 후에는 면역력이 약해지고 입맛이 떨어지는 등 좀 힘이 들지만 그 외에는 발병 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다행히 복부와 목에 자리잡고 있는 암세포의 크기가 줄어드는 등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에요.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교통사고 등으로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병에 갇힌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아픈 것을 알았으니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앞으로의 삶을 더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 당일도 정과장은 그 다음날로 예정된 중국 베이징 출장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베이징에서 돌아와서는 바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출장이나 여행이 체질화되다 보니 이젠 시차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 웃음만큼이나, 그의 모습은 건강해 보였다.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68~69)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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