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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중독

영혼이냐 몸이냐…사랑의 미로

  •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영혼이냐 몸이냐…사랑의 미로

영혼이냐 몸이냐…사랑의 미로
이미연과 이병헌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영화 한편이 나왔다. ‘내 마음의 풍금’에서 서로에 대한 남모르는 연정을 간직했던 사이였던 두 사람이 4년 후 뜨거운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만남이 예사롭지가 않다.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사랑이 꽃피기 때문이다.

형수와 시동생의 사랑이라? 어떻게 보면 이는 불륜을 넘어 인륜까지 거스르는 치명적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륜이니 인륜이니 하는 거창한 윤리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참으로 몸과 마음을 다한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영화에서라면 물론 가능하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신예 박영훈 감독은 데뷔작 ‘중독’ 을 통해 죽음마저도 초월한 절대사랑을 펼쳐 보인다. 이름하여 중독된 사랑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의좋아 보이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즐겁게 공놀이를 하는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두 남자는 형제지간이고 여자는 형의 아내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은 이내 깨지게 되어 있다. 내러티브의 공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형 호식(이얼)은 가구예술가이고 그의 아내 은수(이미연)는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커리어우먼이다. 그리고 동생 대식(이병헌)은 행복에 젖어 사는 이들을 한발 뒤에서 지켜보면서 오직 카레이스에만 몰두한다. 그런 대식에게는 죽자 사자 따라다니는 예주(박선영)가 있지만 그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형수와 시동생이 미묘한 사이로 빠져들리란 예감을 하게 된다.

대식의 카레이스가 있던 날 응원하러 가려던 형 호식은 작업에 몰두하다가 그만 경기 시간을 놓쳐 ‘총알택시’를 탄다. 한편 레이스중인 대식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선두권에서 멀어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과욕을 부리다 그만 사고를 낸다. 같은 시각 운명처럼 형이 탄 택시도 충돌사고를 당한다.



형은 죽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동생은 영혼이 바뀌어 있는 불가사의한 빙의(憑依·귀신들림) 현상을 겪게 된다. 사실 우리는 이 영화가 빙의라는 화두 혹은 맥거핀(극적 반전을 위해 동원한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여기까지는 미리 정해진 코스대로 따라온 셈이 된다.

그런데 이 빙의를 모티브로 한 일본영화 ‘비밀’이 한발 앞서 개봉중이므로 여유가 있다면 두 편을 다 보고 그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영화감상 체험이 될 것이다. ‘중독’에서는 시동생의 몸과 형의 마음(영혼)으로 형수를 사랑하는 반면, ‘비밀’에서는 딸의 몸과 아내의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한다. 두 편의 설정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외엔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 전자는 불륜을 다룬 멜로드라마로 분류될 수는 있을지언정, 근친상간의 함의는 애당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후자는 휴먼 코미디물에 가깝다.

영혼이냐 몸이냐…사랑의 미로
그래서 겉모습만 딸인 아내와 사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기이한 부부관계를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지만, 외관상 남편과 사별하고 ‘무늬만’ 시동생인 사랑하는 임과 함께 살아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쯤은 미친 사랑의 열병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능히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랑을 쟁취하려고 할 것이 아니겠는가. 박영훈 감독이 ‘중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감독의 의도 내지는 작품의 주제적 측면을 이해했다는 것과 그 작품을 수작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중독된 사랑에 걸맞은 강도 높은 정사신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중독’이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출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말이다. 플롯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중독될 만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지 못하고 교통사고라는 우연적 사건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긴다는 설정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반전을 통해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하려는 강박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 하겠다.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91~91)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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