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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04년 총선 경남 거제서 출마”

YS 차남 김현철씨 “아버지, 특정 대선후보 지지 않을 것 … 양김 경쟁은 숙명, 화해 불가능”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2004년 총선 경남 거제서 출마”

“2004년 총선 경남 거제서 출마”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현철씨가 가슴속에 간직했던 얘기들을 담은 ‘너무 늦지 않은 출발이기를’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정치에 대한 강한 집념을 담은 이 책에서 현철씨는 향후 정치 계획, 1997년 신한국당 경선과 한보사건, YS와 IMF 및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와의 악연 등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던 과거사를 잔잔하게 풀어놓았다.

현철씨는 10월12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서 가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총선 때 경남 거제에서 출마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철씨는 또 DJ(김대중 대통령)-YS 갈등과 관련 “양 김의 숙명”이라고 전제,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연말 대선에서의 YS 역할과 관련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내 정치에 초연해야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97년 이후 생각을 갖고 있다가 2000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좀 늦은 감이 있다.”

-상도동은 자주 찾나.



“추석 때도 가고…. 자주 찾지는 못 한다.”

-YS는 오래 전 ‘연말 대선에서 나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언급했는데.

“평생 정치를 한 분이니 생각이 왜 없겠나. 그렇지만 특정 인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 아버님은 이 달 말 일본 와세다대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국내 정치에 초연하시는 게 아버님으로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주소지를 옮기면서까지 의욕을 보였던 경남 마산 재선거를 포기한 배경은.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반대했기 때문에 계속 진행시킬 수 없었다.”

-YS가 반대한 이유는.

“아버님 뜻이라기보다 한나라당 인사들 중 상도동 출입하는 사람들의 장난이 개입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회유가 안 되니 상도동을 통해 나를 주저앉히려 했다. ‘결국 실패할 것이다’ 는 얘기가 상도동에 집중 전달됐고 핵심 선거운동원들의 손발도 묶어버렸다.”

-한나라당 공천설이 나돌았는데.

“지방선거 전 한나라당에서 ‘명시적으로’ 공천을 제안해왔다. ‘100% 공천하겠다’는 제의는 나뿐만 아니라 아버님에게도 전달됐다. 그렇지만 지방선거 압승 후 한나라당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공천을 약속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중간에 전달한 사람이 뜻을 잘못 전달했다’며 공천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04년 총선은.

“마산 선거 포기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상황에서 정말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첫출마는 제1의 고향인 거제에서 하기로 결심했다.”

-YS 또는 한나라당과 조율을 거친 결정인가.

“나의 선택일 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아버님에게는 나중에 말씀드릴 것이다.”

-실추된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면 고향인 마산이나 거제가 아닌 서울 출마가 명분상 맞지 않는가.

“일견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역구도나 지역정서에 새로운 변화의 흐름도 나타난다. 이번 대선만 해도 지역 출신이 아닌 후보들이 특정 지역의 지지를 받는 등 변형된 지역구도 흐름이 읽힌다. 지역구도는 깨질 수밖에 없다. 고향을 마다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정부(DJ 정부)가 임기말 레임덕 현상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데.

“현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가 권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사실을 현정권이 잊은 것 같다.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현정권은 국가권력을 남용했다. 현정권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소수정권임을 인정하고 당연히 우호세력과 손을 잡고 가는 포용과 타협의 정치를 지향했어야 했다. 소수정권으로(국정을) 끌고 가려 한 게 잘못이다.”

-포용과 타협의 대상은.

“집권 이후 1차적으로 동교동은 상도동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 87년 이후 흩어졌던 민주세력이 연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DJ-YS가 협력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40년 라이벌 의식 때문인가.

“두 분의 숙명적인 관계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권력을 잡는 것이 목적이다. 공유할 의사나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YS는 현정부 초기 “DJ 정부가 측근들 계좌를 뒤지는 등 탄압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는데.

“그런 점이 양 김의 협력을 방해한 면이 없지 않다. 현정권 출범 전, 그러니까 인수위 시절부터 DJ는 아버님과 나를 타깃으로 내사를 벌였다. 문민정부가 유야무야해버린 의혹 사건들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이를 찾아 ‘상도동을 무력화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님 주변 사람들 가운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국민화합 차원에서 양 김이 화해할 가능성은.

“글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어렵다,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 칼자루 쥔 사람이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 사람 다 죽여놓고 나서 손 내미는 것은 인간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자서전을 보면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데, 94년 국무총리 사퇴 때 YS와 특별한 갈등이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대통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요구했다. 인사권은 물론 안보에 관한, 총리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알려고 하는 등 용납이 안 되는 요구를 자주 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으로, 당대표로, 대통령후보로 발탁한 배경은.

“아버님은 감사원장에 이후보를 발탁한 후 성역 없는 감사를 강조하며 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큰 칼을 맡겨놓고 보니, 평생 법전을 통해 살아온 분이라 현실감각, 정치감각을 무리하게 요구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감사원장이 대통령 위에 있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96년 총선 때 다시 발탁한 것은 내 책임 하에 감사원장, 총리를 지냈는데 불명예스럽게 내보냈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다시 기회를 준다는 포용력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때 반대도 많았다. 재발탁(총선 때) 당시 이후보가 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되리라는 생각은 1%도 없었다.”

-1%의 가능성도 없던 분이 대통령후보가 됐다면 오히려 정치력이 뛰어난 것 아닌가.

“대통령후보로 나온 분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때 감사원장, 총리, 당대표 등 너무 짧은 시간에 압축된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거의 평생을 정치만 해온 아버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미흡해 보였던 것 같다.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고….”

96년 이후보의 신한국당 입당 문제로 몇 차례 만났는데, 그때 ‘아, 역시 이분은 정치를 오래한 분이 아니구나. 정치를 모르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야당 후보인데, (정치를) 모른다고 할 수 있겠나.”

-대선후보 빅3가 상도동에 구애의 눈길을 보냈는데,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한다면.

“세 명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특히 각자가 가진 핸디캡이 생각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노무현 후보는 DJ 후계자 이미지, 정몽준 의원은 재벌총수 출신 대통령후보라는 점, 이회창 후보는 현정권이 이렇게 부패하고 무능한데도 경쟁후보와 혼전(여론조사 결과)을 벌이는 점 등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대선 전까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것이다.”



주간동아 356호 (p44~4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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