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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우리 풍수 | 포항시 송라면 중산1리 마을

뱀혈 터에 세운 ‘돼지 한 쌍’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뱀혈 터에 세운 ‘돼지 한 쌍’

뱀혈 터에 세운  ‘돼지 한 쌍’

마을회관 입구에 세워진 돼지 석상

경북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상행하다 보면 고찰 보경사(寶鏡寺)라는 팻말이 눈에 띄는데, 이 팻말을 쫓아 보경사 입구로 한참 들어가면 송라면 중산1리 마을을 만난다. 이곳 마을회관 앞에는 작은 돼지, 큰 돼지가 일렬로 늘어서 마을 뒷산을 쏘아보고 있어 흥미를 끈다. 물론 살아 있는 돼지가 아니라 석상이다. 1990년 초에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세웠는데 그것만으로는 기세가 약할 듯해 6년 후인 96년 8월23일 마을 부녀회에서 그보다 큰 돼지 한 마리를 다시 세웠다 한다.

왜 세웠을까? “사람들에게 운이 있어 흥망이 교차하듯 마을에도 운이 있다.” 중산1리 이원기 이장(56)의 말이다.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의 다른 표현인데, 이어지는 이장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마을 운이 사나웠던지 80년대 중반에 젊은이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게다가 마을 기운도 갈수록 쇠했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동네 터가 뱀혈[巳穴]이라서 뱀이 동네를 해롭게 하고 있으니, 뱀이 질색하는 돼지 석상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세웠는데 그다지 효험이 없는 것 같아 나중에 더 큰 돼지 한 마리를 세웠다. 그렇게 돼지 두 마리를 세우고 나서 마을이 안정이 되었다.”

뱀혈 터에 세운  ‘돼지 한 쌍’
화기(火氣)인 뱀을 제압할 수 있는 짐승은 수기(水氣)인 돼지라는 점은 창원 성주사 풍수 편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마을 역시 성주사 터처럼 불기운이 강해서 그러한 화를 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세를 살펴보면 작은 돼지, 큰 돼지가 일렬로 서서 바라보는 곳이 건주봉으로 이 동네의 주산, 즉 진산(眞山)이다.



건주봉의 산능선은 뱀의 굵은 몸통처럼 이어져 내려와 동네를 감싸고 있다. 풍수상 마을 형세는 소쿠리 명당, 즉 ‘와혈(窩穴)’이다. 따라서 마을의 진혈처는 소쿠리 안이 된다. 전통적으로 소쿠리 안에 해당되는 곳에는 부잣집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이 마을 터를 뱀혈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소쿠리의 굵은 테두리를 특징화한 것이다. 소쿠리의 테두리는 마을의 경계선이자, 와혈일 경우 현릉사(弦稜砂)에 해당된다. 이 마을의 현릉사는 마을 터의 오른쪽 테두리선인데, 오른쪽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돼지 석상 건립을 주관한 것이 마을 부녀회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중산1리의 또 다른 특징은 현릉사와 개천을 경계로 삼아 평행하게 이어지는 우백호가 비교적 약하다는 점. 이런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중산1리의 200년 역사에 버금가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우백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이른바 비보수(秘保樹)로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마을은 왜 80년대 중반에 불운을 겪어야 했을까.

이 마을은 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새마을운동 때문에 공간을 재구성하게 됐다. 삼륜 트럭과 경운기, 콤바인 등 대형 농기구의 도입으로 인해 80년대에 동네 고샅길을 넓혀야 했고, 소득증대 사업의 하나로 적게는 대여섯 마리에서 많게는 수십 마리에 이르는 가축들을 키우게 되면서 집터를 확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과정에서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까지 건드림으로써 마을에 흉운을 불러들였다. 즉 소쿠리 명당의 진혈을 훼손시킴으로써 마을의 기운이 쇠하고, 동네 젊은이들의 흉사까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마을이 쇠락하게 됐던 것은 결코 땅의 재앙만은 아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격히 몰락하는 농촌사회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맛보아야 했던 세대가 바로 농촌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경제적 고난과 절망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중산1리 마을의 부녀회에서 돼지석상 건립을 주관했다는 사실에서, 남편과 자식들의 좌절과 절망 그리고 죽음을 위로해주고자 했던 여인들의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돼지 석상을 세우고 나서 이 마을에 재앙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간동아 355호 (p98~98)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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