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5

2002.10.17

조세개혁에 딴지거는 사람들

  • 윤종훈 / 공인회계사

    입력2002-10-14 12: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세개혁에 딴지거는 사람들
    가까운 친척 중에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 있다. 특정 지역과 노동조합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감, 자학적인 민족관과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 강남지역 거주자와 서울대 출신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 등을 자주 입에 올리는 그다.

    그런 그가 최근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생 월급쟁이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그의 유일한 낙은 여행인데, 지난 몇 년 동안 아프리카 오지와 남극 및 북극을 빼놓고는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을 가장 잘사는 나라로 여겼던 그가 북유럽을 갔다 온 후, ‘얄미울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고 살기 좋은 나라’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이다.

    정치권·재벌·학자들은 탈세 옹호론자?

    그 말을 듣고 “참 이상하네요? 그 ‘빨갱이 나라’가 살기 좋다뇨?”라고 반문했다. 진보정당은 물론 약간의 개혁적인 성향을 보이는 현직 국회의원까지 빨갱이로 보는 그의 시각에 빗대어 도발적인 질문을 한 것이다. “…?” 의아해하는 그에게 스웨덴의 경우 오랫동안 노동당이 의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온 좌파 정권의 나라라는 점, 그 나라의 기본정책은 부유층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복지 및 교육 분야 등에 많은 재정지출을 한다는 점,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이 교육이나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점, 세금은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골고루 잘살게 만드는 중요한 나눔의 수단이라는 점 등을 설명했다. 이 설명에 그는 대부분 동의하는 눈치였다. 한두 번의 여행과 몇 마디의 설명에 그의 가치관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최근 언론에 부유층의 탈세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분노를 표시하는 그의 모습은 전에 볼 수 없었던 태도다. ‘대통령선거 때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최근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필자는 조세개혁에 대해 약간의 희망적인 전망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매우 높아졌음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해도 국민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면 며칠씩 언론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심지어 TV 토론까지 벌이기도 한다.



    반면 일부 재벌이나 정치권 인사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이 보이는 모습은 필자의 희망이 그렇게 만만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2000년 4월 총선 입후보자 중 3분의 1 가량이 연봉 2000만원의 4인 가족 근로자보다 세금을 적게 낸 사실을 확인하고 국민은 경악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세 명의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 명 모두 탈세 의혹에 시달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요 시민단체에서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와 재벌의 변칙 증여를 막기 위한 세법 개정 운동을 벌여왔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부유층에 대한 마녀사냥식 분노의 표현이라며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1998년까지 미국 공화당을 이끌던 깅그리치는 93년 조지아주 케니소 주립대학에 자신의 강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탈세한 혐의를 받고 하원 윤리위원회에서 찬성7 반대1로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선거공약에 따라 상속세법을 폐지하려 하자 오히려 미국의 부유층이 반대하고 나섰다. 국가에 많은 세금을 냄으로써 자부심을 느낄 기회를 박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세금문제에 대하여 떳떳하지 못하면서 탈세문제를 정략적으로만 이용하려는 정치권, 자신의 힘으로 한푼도 벌어본 적이 없는 자식에게 수조원의 재산을 물려주면서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는 우리나라의 재벌, 이들을 교묘한 논리로 보호하는 일부 학자 및 전문가들을 보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미국 사회조차 천국으로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