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5

..

“아이가 꾸준히 하면 그것이 재능”

신동 피아니스트 임동혁 형제 교육기 … “건강 챙기고 책 사준 것이 뒷바라지 전부”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0-11 16: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이가 꾸준히 하면 그것이 재능”

    임동혁은 지난해 12월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피아니스트다. 9월 초에 열린 그의 첫 내한 독주회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젊은 피아니스트 임동혁(18)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9월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적잖은 수의 팬들이 표를 구하지 못해 공연장 바깥에서 CC TV로 연주를 지켜보았는가 하면, 9월 초 EMI에서 발매된 첫 독집 음반은 발매 한 달 만에 1만여장 가까이 판매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daum’에 조직된 임동혁의 팬클럽 회원 수는 2500명 선, 클래식 음악가 팬클럽으로는 조수미 다음가는 규모다.

    현재 모스크바음악원 4학년에 재학중인 임동혁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난해 12월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불과 1년 만에 놀라운 인기를 얻은 셈이다. 임동혁의 형 동민군(22) 역시 올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한 유망주다. 임동민 동혁 형제를 모두 피아니스트로 키워낸 부모는 음악과는 무관한 사람들. 아버지인 임홍택 삼성물산 모스크바 지사장은 물론이고 어머니인 박현옥씨도 러시아로 이주하기 전까지 중학교 가정 교사였다.

    부모는 구체적 관심 가져야

    “저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잘 치는지 못 치는지도 잘 몰랐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머니 박현옥씨의 말이다. 아버지인 임홍택씨 역시 “부모가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 써준 것과 책 사준 것이 뒷바라지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으니 저희는 조기교육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다만 두 아이 모두 음악을 듣고 그대로 피아노로 옮기는 청음 실력이 뛰어났어요. 동혁이는 어릴 때부터 연주를 듣고 ‘악보상에는 샤프(#)가 있는데 연주자는 그냥 쳤어’ 하고 정확히 지적할 정도였어요.”



    동혁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6세 때 기독교방송이 주관한 영재학교에서 ‘최상위 0.001% 안에 드는 수재’라는 판정을 받고 1년간 영재교육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0세에 러시아로 건너가 러시아 초등학교 과정 1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동혁은 월반에 월반을 거듭해 15세에 대학 과정인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했다. 형 동민도 2년을 월반해 현재 동혁과 같은 4학년 과정에 다니고 있다.

    모스크바로 이주하면서 교직을 그만둔 박씨는 그때부터 아이들 교육에 전념했다. 박씨의 교육방법은 음악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박씨의 교육방침은 크게 세 가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킨다, 잠을 충분히 재운다, 아이에게 구체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등이 그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운동을 하면 목표에 끝까지 매달리는 근성도 배울 수 있죠. 제가 요즘도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에요. 특히 피아노 연주는 육체적으로도 많은 힘을 필요로 하거든요.”

    동민과 동혁은 엄청난 연습벌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에 평균 7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한다. 그처럼 오랜 시간 피아노에 매달리고도 음악 아닌 다른 길에 눈을 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분야든 아이가 꾸준히 한다면 곧 재능이 있는 것”이라는 박씨는 “아이들이 피아노에 싫증내지 않는 것을 보고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언젠가 동혁이한테 ‘네가 생물 같은 과목을 잘하니 의사가 되면 어떻겠니?’ 하고 권유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자 동혁이가 ‘지금껏 피아노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는 못한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후부터는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꾸준히 하면 그것이 재능”

    아버지 임홍택씨(맨 왼쪽)와 함께 한 임동혁(가운데). 임씨 부부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아들 둘을 모두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워냈다.

    러시아식 음악 교육이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매니지먼트나 음반사의 눈에 띄기는 미국이 더 쉬웠을 거예요. 하지만 교육의 질만 따져보면 러시아에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음악적 수준이 세계 최고다 보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같은 권위 있는 콩쿠르에 입상한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교수의 수준도 무척 높고요.”

    아이들의 레슨에 항상 동행하는 박씨는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레슨할 때 세세한 테크닉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는 반면, 러시아 선생님들은 곡의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음악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특히 러시아의 음악교사들은 학생이 처음 접하는 곡을 연주할 때 으레 ‘2악장을 연주해보라’고 말한다고 한다. “느린 악장인 2악장에서 학생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음악’을 이끌어내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죠.”

    박씨는 ‘단순한 관심이 아닌, 구체적인 관심을 통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부모가 아이들을 확실하게 알아야 거기에 걸맞은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이들의 스타일에 대해 이처럼 객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동민이 경우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다 보니 서정적인 곡을 연주하는 데에 능하고 동혁이는 외향적이고 스케일이 큰 곡의 연주가 어울려요.”

    주위에서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박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간신히 성년이 된 아이들이고 음악가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하는 단계라고 봐요. ‘성공의 비결을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문득 두렵기도 해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뛰어난 피아니스트 못지않게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랄 뿐이죠.”





    댓글 0
    닫기